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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2] 지역 의사회의 역할과 전망 _최주현 정책이사
[칼럼 22] 지역 의사회의 역할과 전망 _최주현 정책이사
  • 의사신문
  • 승인 2013.10.1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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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현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한국 의사들은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 학생들이 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의 의사들은 자신의 사회적 입지에 불만을 토로한다. 관리 의료가 보편화 되어 정부의 각종 규제에 의사의 자율성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 진입 후 의료비 지출에 대한 정부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 보험 보장성 강화 및 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의료비 지출 억제 요구가 거세졌다. 반면 사회 전반의 서비스 경쟁 속에서 개원가 의사들은 더 많은 비용을 의료 외적인 인테리어, 홍보, 고객 관리에 쏟고 있다. 무엇보다 의사들의 전문가로서의 권위는 대내외적으로 하락 추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역 의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왔고 또 어떤 과제를 수행해 나가야 할까.

중세 유럽 동업 조합인 길드와 마찬가지로 한국 지역 의사회는 의사들의 자발적인 모임에서 출발했다. 구한말 근대적 의학 교육이 시작되고 일제 치하 조선인 의사들이 1915년 한성 의사회를 조직했으며,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이후 1945년 해방 공간에서 서울시 의사회가 새롭게 창립되었다. 한국 전쟁을 거치며 의원과 병원이 속속 개설되고 이에 발맞춰 각 구 의사회가 설립, 발전되었다.

의료 행위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의료법 개정 등에 맞서 지역 의사회는 지역 의사들의 총의를 모아 때로는 궐기하고 때로는 협의하며 지역 의료계의 총의를 대행해 왔으며, 지난 2000년 의사 파업 시기 본 회 한광수 회장이 올바른 분업 쟁취 투쟁 중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의업에 지친 회원들의 고충을 나누고 위로하는 사랑방 역할을 해왔으며, 지역 주민과 국민에 대한 봉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지역 건강의 길잡이가 되어 왔다.

지역 의사 협의체로, 지역 건강의 등대로 이바지해 온 지역 의사회 역할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전세계적 경제 위기와 더불어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국내 현실과 노령화되는 인구 구조, 정보화 시대의 각종 지식의 범람, 의사 수 증가에 따른 개원가의 극심한 경쟁과 이로 인한 동료 의식의 약화 등 의료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 따른 회원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지역 의사회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내부 민주주의적 기틀의 수립이다. 본 회 회칙 10조에 회장, 부회장, 감사 및 이사는 대의원총회에서 선출하며 14조에 대의원은 각 분회에서 직접, 비밀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행 회장 선출 방식을 중앙회인 대한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직선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간선제 선출 방식 또한 민주주의의 한 방식이겠으나 서울시의사회의 전통과 위상에 걸맞는 민의의 수렴과 대표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점차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직선제를 통해 각 분회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할 수 있으며 각 분회의 대표성 또한 강화되는 방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둘째, 점차 거세지는 정부와 거대 기업들의 공세에 대응하여 회원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세계 의사회의 발전은 전문가 집단이 외부의 영향에 조응하여 의사 전문성을 고취해나가는 역사였다. 중요한 것은 회원들의 교육과 개원 전후 상담이다. 국내 의사 졸업 후 교육은 주로 의학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지역 의사회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나, 보다 진일보하여 의사들이 실제적으로 필요로 하는 개원가 서비스 교육, 세무 상담, 공동 물품 구매 상담 등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점차 다양화, 계층화되는 회원들의 전문 직업성을 고취시키고 `의사'로서 통합될 수 있는 윤리 직업 보수 교육도 요구된다. 지역 의사회 회무에 교육 기회를 주는 전회원 순환 참여제도 필요하다.

셋째, 회원 민의를 수렴하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의사 사회화는 전문 직업성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이다. 지역 의사회는 같은 지역 회원들의 사회적 도구이자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를 국민과 소통할 수 있게 승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근대 의학 교육 및 의사 배출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전문직 발전이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의료 보험 도입 이후 전국민 건강 보험 실시 과정에서 건강 보험법상 요양 급여 계약 당사자가 의사가 아닌 의료 기관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의사의 임상적 자율성은 우리 사회에서 담보되기 어려운 가치였다. 온전한 의사로서의 요구를 청취하고 그 가치를 가꿔가는 것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의사회가 유일하게 할 수 있어 보인다.

의사로서의 가치가 성숙되기도 전에 의사 사회가 과별, 기관별, 직역별, 세대별, 지역별로 분열되고 있다.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고 의업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의사가 권력이나 사적 이해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지역 의사회는 회원들을 통합하는 민주적 대표성을 확보하고 회원들을 위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발전해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의사들은 스스로 하나의 의사로서의 통합된 가치를 재발견하고 국가와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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