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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辭]박만용(朴萬龍)회장님의 서거(逝去)를 애도(哀悼)하며
[弔辭]박만용(朴萬龍)회장님의 서거(逝去)를 애도(哀悼)하며
  • 의사신문
  • 승인 2013.10.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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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통재(嗚呼痛哉)라!

회장님께선 왜 이렇게 바삐 가셨단 말 입니까?

바로 며칠 전에 식사하시기가 힘들다며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빨리 퇴원하여 환자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환자들을 두고, 그 환자들은 어떻하라고 그리 빨리 가셨단 말 입니까?

80이 넘으셨어도 꾸준히 환자곁을 지키시던 그 열정(熱情)을 어떻게 쉽게 버리셨단 말입니까?

당신을 바라보는 우리 후배들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회장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않고 그저 허무(虛無)를 느낄 뿐이옵니다.

회장님께서는 일찍이 Golf계에 입문(入門)하셔 의사의 신분으로서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역사를 일구어 내셨습니다.

한국의 명문골프장이라는 `한양컨트리클럽'의 챔피언을 무려 4번씩이나 거머쥐셨고, `오산컨트리클럽' 챔피언 1회, 또한 `한국시니어(아마)챔피언'을 3회나 차지했었습니다. 한국 골프협회 규칙분과 위원장을 역임하시고 오산컨트리 클럽 1회 한양컨트리 클럽 4회의 챔피언을 하셔서 의료계 뿐만 아니라 골프계의 독보적 존재로 의사들의 자존심과 위상을 높이셨습니다. 80년대 초부터 한원컨트리 클럽에서 매달 월례회를 개최하여 후배들의 골프 실력 향상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또한 본인의 마지막 소원으로 후배들이 챔피언을 해야 한다며 소위 `박만용 군단'을 만들어 하드트레이닝을 시킨 결과, 14년 만에 홍영재(98년도 용평컨트리 클럽), 장원의(99년도 한양 컨트리클럽) 챔피언을 배출시키셨습니다. 더 이상 대를 잊지 못하고 세월만 가는 것을 마냥 아쉬워하셨습니다. 다음은 저희들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아가 미국 콜로라도주 브로드모어골프장에서 열리는 `세계시니어 골프대회'에 한국대표선수로 출전하여 3회나 국가우승을 이끌기도 하셨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회갑기념으로 영국 St.Andrew.C.C old course를 round한 것이 벌써 20여년이 지났군요. “골프를 한다면 한번쯤은 골프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하시며 1년 전부터 예약을 하고 그해 11월 쌀쌀한 날씨에 7명의 후배들을 커플로 데리고 round를 하셨었죠. 그런데 8명증 4명이 70대 스코어를 기록하고 행운의 Eagle score를 기록한 후배가 있어 회장님께선 너무도 기분이 좋아 모든 캐디들을 데리고 19홀(?)에서 성대한 만찬을 즐기셨습니다.

회장님께선 의료계의 발전을 위하여 종로구의사회 회장을 3번이나 연임하시면서 2000년대 의쟁투 투쟁에 앞장서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개원의들의 미용외과에 대한 열망을 받아들여, 일본미용외과학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지역의 미용외과학회를 공동으로 개최케 하는 초석을 다지시어 오늘날 활발한 미용외과의 발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이미 30여년 전 부터 의료계의 미래를 예견하시고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계의 어려움과 생활환경의 발전에 따른 미용의 욕구가 커질 것으로 선견지명을 갖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일본미용외과학회에 후배들을 이끌고 참석하여 미용외과에 대한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일본학회에서도 연자로 발표도 하시고, 일본말을 잘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호텔에 들어와 새벽 3∼4시까지 학회에서 발표된 연제들을 갖고 토의도 하고 설명도 하여 주셨습니다.

모처럼 일본 나들이를 한 우리들은 학회 핑계대고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하고 싶은데, 공부 외에는 외출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일본 미용외과병원들을 찾아가 수련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회장님의 그 학구열(學究熱)은 정말 그칠줄 몰랐습니다.

우리 의사들은 배울 것들이 나날이 많아지고 있으니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하시며, 70세가 넘어서 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안과, 산부인과 전문의 후배들을 모아 `만학회(晩學會)'를 만들어 매월 공부하는 모임이 80이 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선 실력 밖에 없다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채찍질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미쳐 그 큰 뜻에 따르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선배님의 유지를 잊지 말고 계속 이어가자고 영정 앞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이번 10월 월례회가 10월16일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왜 참석을 않으시려 하시는 것 입니까?

회장님은 재경 전남의대 동창회장을 연임하시면서 동창회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주시고 회원들과의 친목을 더욱 공고히 하여 경인지역 1500여 동창회원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시었습니다. 회장님이 몸이 불편하시어 처음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금년도 재경 동창회장배 골프대회도 130여 회원이 참석하여 성대한 축제로 치뤄졌습니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지요. 시상식에 선배님의 빈자리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또한 회장님께선 재경 전주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사회각계층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동창회의 발전에 큰 힘을 보태시었습니다.

회장님께선 그동안 너무도 하신 일이 많지만, 앞으로 해야 할 더 많은 일들은 어떻하라고 그렇게 먼저 훌쩍 가버리셨습니까?

미천한 후배들은 회장님께서 못다 이룬 일 들을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 짓고 다시 만나 선배님을 모시고 옛날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부디 편안한 길을 가시기 바라옵니다.

후배 김익수 호곡(號哭). 2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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