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8:56 (목)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 의사신문
  • 승인 2013.08.19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 〈232〉

1913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가 되어 로마에 머무르게 된 레스피기는 로마의 유적과 풍물의 찬란함에 매료된다. 볼로냐 출생인 그는 로마에 강한 영감을 받아 로마에 있는 4개의 분수를 주제로 한 〈로마의 분수〉를 37세 때인 1916년에 완성하고 이듬해인 1917년 3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첫선을 보였다. 로마의 많은 분수들 중에서 대표적인 4개의 분수를 선택하여 각각 여명, 아침, 낮, 황혼을 배경으로 한 자연의 인상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고풍스런 음향과 황홀한 관현악 색채로 로마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곡을 작곡하기 전에도 몇 편의 기악곡을 썼지만 비로소 이 작품으로써 레스피기의 진가를 선보이게 된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과 인상주의적인 면도 찾아 볼 수 있지만, 구상과 관현악법에 있어서 그의 독특한 시적인 정서와 미묘한 감각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초연 당시 〈로마의 분수〉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아 실의에 빠진 레스피기는 한동안 이 작품을 잊고 지냈다. 1년 후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레스피기에게 연주할 만한 새로운 작품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때 레스피기는 잊고 있었던 〈로마의 분수〉를 떠올려 그에게 보냈고 1918년 2월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레스피기의 〈로마의 분수〉가 다시 연주되었다.

그때 재연된 〈로마의 분수〉가 대단한 호평을 받자 레스피기는 그 후 로마시리즈로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를 구상하게 된다. 그가 〈로마의 분수〉에서 선택한 로마의 4개 분수를 묘사한 음악은 각각 그 성격이 다르지만 이어서 연주되어 하나의 곡처럼 느껴진다. 레스피기는 〈로마의 분수〉를 출판하면서 각 곡마다 덧붙인 서문에서 마치 인상파 그림처럼 시간에 따라 4개의 분수가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과 그 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제1곡 동틀 무렵 줄리아 계곡의 분수(La fontana di Valle Giulia all'alba). `발레 줄리아'는 로마의 북쪽에 있는 계곡이다. 옛날 로마 교황의 별장으로 지금은 미술관과 바로크 풍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데 이 계곡의 새벽 풍경을 목가적으로 표현하였다. 레스피기는 서문에 “양떼의 무리가 지나가고 로마의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적었다. 제1바이올린의 투명한 하모닉스 음색과 약음기를 낀 제2바이올린에 의해 새벽안개의 신비로움을 표현하고 오보에가 목가적인 선율을 연주하여 줄리아 골짜기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제2곡 아침의 트리톤 분수(La Fontana del Triton al mattino). 이 분수는 바르베리니 광장에 있는 아름다운 인어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트리톤(반인반어의 해신)이 아침 햇빛을 받아 희롱하며 춤추는 환상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호른이 갑자기 큰 소리로 팡파르 풍의 리듬을 선보이면 트리톤 분수의 화려한 모습이 펼쳐진다. 피아노가 가세하면서 아침 햇빛을 반사하는 분수의 빛나는 물줄기를 찬란하게 묘사한다. 레스피기는 서문에 “그것은 분출하는 물줄기 속에서 나이야드(물의 요정)와 트리톤을 부르는 기쁨에 넘치는 소리와 같다.”고 표현했다.

△제3곡 한 낮의 트레비 분수(La Fontana di Trevi al meriggio). 로마에 있는 가장 호화롭고 우아한 분수로 바다의 신과 그들 무리의 행렬의 군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금관악기의 화려한 팡파르가 돋보이는 음악으로 장중한 테마에 목관악기에서 금관악기로 옮겨 가며 옛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표현한다. 레스피기는 서문에 “빛나는 수면 위에 넵튠(바다의 신)의 마차가 바다의 말에 끌려 인어와 트리톤의 행렬을 거느리고 지나간다. 멀리서 다시 울리는 트럼펫의 연주가 약해지면서 행렬은 점차 멀어진다.”라고 묘사했다.

△제4곡 황혼의 메디치 가의 분수(La Fontana di villa Medici al tramonto). 로마의 동북쪽 핀치오 언덕 위에 있는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아름다운 궁전 정원에 있는 분수이다. 전 곡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시정이 넘쳐흐른다. 첼레스타의 맑은 울림과 함께 아련히 들려오는 목관과 현악의 선율이 향수를 자극한다. 레스피기는 “석양의 향수에 젖은 한때다. 종소리,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 넘실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드럽게 조용한 밤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묘사한다. 메디치 빌라의 분수에 어둠이 깔리면서 평화롭고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들을만한 음반: 리카르도 무티(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EMI, 1984);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지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RCA, 1949); 유진 오만디(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RCA, 1973)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