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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립 라모 〈클라브생 모음집〉
장-필립 라모 〈클라브생 모음집〉
  • 의사신문
  • 승인 2013.08.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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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31〉

라모는 평생 65곡의 클라브생 작품을 세 시기의 작품집으로 작곡하였다. 1706년 제1집이 발표된 후 1724년 출판된 제2집 〈클라브생 모음집〉에는 〈새들의 모임〉, 〈탕부랭〉, 〈시골처녀〉 등의 걸작이 들어있고 1731년에 발표된 제3집인 〈신 클라브생 모음집〉에는 〈암탉〉, 〈엔하모닉〉 등의 작품이 들어 있다.

그의 작풍은 쿠프랭의 로코코 풍의 화사한 클라브생 곡에 비해 보다 바로크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강조한 것이었다. 사라반드 같은 옛 무곡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구성보다는 인물, 풍경 등 자유스러운 모음곡의 형식을 취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각 곡 마다 사랑스럽고 기지가 풍부한 표제가 붙어 있다. 〈신 클라브생 모음집〉의 제2모음곡에 수록된 〈암탉〉이라는 곡은 “꼬 꼬 꼬꼬”라는 닭의 울음소리를 묘사적으로 다룬 것으로 그다지 음악적 내용을 가진 작품은 아니지만, 그것이 단순하고 피상적인 표제 음악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적인 시정과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프랑스 음악의 역사적 작곡가 라모는 250여 곡의 방대한 클라브생 작품을 남긴 프랑스와 쿠프랭과 비교된다. 작품 수는 적지만 질적인 면에서 그만의 고유성과 혁신을 겸비하고 있어 쿠프랭과는 충분히 비견될 만하다. 이들에 대해 음악학자 플라세는 “쿠프랭은 부드러움과 아이러니를 세련되게 다루는 섬세한 감각의 시인이며, 반면 라모는 엄격함, 강건함, 고귀함, 그리고 진지함이 균형 잡힌 고전적 정신의 소유자이다.”라고 평하였다.

라모와 쿠프랭 등의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은 후대 드뷔시나 라벨 등의 피아노 음악의 기초가 되어 생상스는 그를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 평가했고, 드뷔시는 〈라모 찬미〉,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여 18세기의 대 선배들에게 찬사와 경의를 표했다.

오페라에서도 라모는 전통적인 고상한 스타일에서 탈피하여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오페라를 만들 정도로 대중의 의중을 잘 아는 작곡가였다. 바로크시대 프랑스 궁정의 마지막 작곡가였던 라모는 한편 노트르담의 오르간을 담당하는 훌륭한 연주자였는데 그의 오르간 음악의 화성은 대단하였다. 그는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화성이다.”라고 밝힐 정도로 기능적 화성법은 그의 엄청난 장점이었다.

중년을 훨씬 넘어선 50세에 첫 비극적 리릭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였는데 리듬의 유연성이 가미되면서 화성과 함께 표현에 있어서도 감정을 불어 넣도록 했다. 그야말로 오페라에 대한 반응은 흥분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륄리의 오페라에 흥미를 잃고 있었던 관중들에게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음악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륄리의 음악이 태양왕 루이 14세가 용맹스러운 행동을 한 시기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면 라모의 음악은 루이 15세의 우아하고 세련된 궁정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라모는 어릴 때부터 전문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지에게서 음악교육을 받은 후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기법을 배워 그만의 작곡에 새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음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것과 저음의 하모니에 대한 이론이 음악계의 관심을 끌게 되고 19세에 아비뇽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후 지식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사상가 볼테르와는 특별히 친하게 지냈다.

자기의 음악이론만 주장했기 때문에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흠모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위대한 음악 이론가이었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건조하고 딱딱하며 무감각하다고 평했고, 냉정한 수학자이자, 머리밖에 없는 과학자처럼 여겼다. 그는 내성적이며 과묵한 인물이었고, 극도로 검소한 생활 속에서 그의 모든 힘과 열정은 그가 사랑했던 음악으로만 향해 있었다.

그는 철학적 이상을 자신의 음악 속에 구체화 시킬 줄 알았던 것이다. 라모의 예술은 고전주의 정신의 순수한 현현으로서 빛과 내면적 평화의 예술이다. 그의 예술에서는 쿠프랭과 같은 관능이나 내밀함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바흐를 연상케 하는 그의 가장 숭고한 표현들 속에는 도도하고 강압적인 억양을 끌어넣었고, 그 엄청난 집중력은 쉬운 접근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그의 감미로운 춤곡들의 긴 연속은 더 편안한 접근을 허용하게 하며, 너무나 찬란한 광채에 눈이 부시게 한다.

■들을만한 음반: 크리스토프 루세(클라브생)(L'oiseau Lyre, 1990); 안제라 휴이트(피아노)(Hyperion, 2007); 구스타프 레온하르트(클라브생)(Deutsche Harmonia Mundi, 198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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