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45 (목)
장 밥티스트 륄리〈그랑 모테트〉
장 밥티스트 륄리〈그랑 모테트〉
  • 의사신문
  • 승인 2013.07.19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229〉

“나만이 왕을 춤추게 할 수 있어.” 17세기 프랑스. 당시 열네 살의 어린 왕 루이14세는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 륄리가 만든 무곡에 맞춰 춤을 춘다. 당시 실질적인 권력은 어린 루이가 아닌 그의 어머니 재상 마자랭이었고 루이에겐 단지 춤과 음악뿐이었다.

이때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음악을 작곡하고 자신의 춤을 돋보이게 해주는 륄리의 음악에 매료된다. 8년 후 어머니가 사망하자 직접 통치에 나선 루이는 왕실악단 감독 륄리와 극작가 몰리에르가 만든 음악과 연극을 배경으로 태양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륄리와 루이14세와의 갈등을 그린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영화 〈왕의 춤〉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왕의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왕을 대변한 륄리와 몰리에르는 지나치게 신랄한 풍자로 인해 귀족과 성직자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마침내 루이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륄리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루이 14세는 성인이 된 후 왕실 예배당의 일과기도에 매일 참석하였다. 이때부터 그동안 여러 주요 성당의 성가대들이 중심으로 이룩해 나갔던 프랑스 종교음악의 흐름은 왕실로 옮겨지게 된다. 자연히 신앙심보다는 왕을 위한 축전음악으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주로 시편을 가사로 한 대규모 종교음악인 `그랑 모테트'라는 장르를 낳게 된다. 원래 `모테트'는 르네상스 시대 비전례용 가사로 작곡된 다성의 종교성악곡 장르로 1640년대 그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 작곡가들은 종교음악의 형식은 이탈리아식을 따랐지만 가사는 프랑스식을 간직했다. `모테트'도 프랑스식으로 나눠 소규모의 `프티 모테트'와 대규모의 `그랑 모테트'로 불리게 되었는데 많은 시도 후 `그랑 모테트'는 마침내 륄리에 의해 화려하게 재탄생하게 된다. 관현악 반주에 서로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 내는 `그랑 모테트'는 대담한 화성과 자유롭고 섬세한 선율로 신을 찬미하는 것을 넘어 프랑스 절대왕정의 이미지를 더 강화시켰고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 프랑스 교회음악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륄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요리사 보조원으로 일하다가 프랑스로 간다. 당시 프롱드 내란의 실패 후, 루이14세의 사촌누이인 몽팡시에 공주가 추방이 되었을 때 륄리는 공주의 시중을 들면서 춤을 추던 광대였는데 어린 루이14세의 마음에 들어 1652년 궁정으로 들어가 궁정기악 작곡가에 임명되고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다음해 왕실 현악합주단을 맡은 후 1661년 마침내 왕실음악 총감독이 된다. 그 이듬해 스승인 미셸 랑베르의 딸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감추기 위해 이탈리아 이름 Lulli는 Lully로, Giovanni도 Jean으로 이름을 바꿔 프랑스로 귀화하게 된다.

그 후 극작가 몰리에르와 친교를 맺고 고전희극과 궁정발레를 결합시킨 〈강제결혼〉 등 코믹발레를 작곡하였고,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였으며 〈아마디스〉 등 많은 오페라와 〈미제레레〉, 〈테데움〉 등 많은 종교음악도 남기게 된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기초로 하면서도 프랑스어의 특성을 살린 형식을 채택하였고 이전과 달리 관현악을 중시하고 발레와 합창을 중용하는 등 새로운 프랑스오페라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1687년 루이 14세의 수술 후 쾌유를 축하하는 〈테 데움〉을 연주하는 도중 륄리의 창모양의 날카로운 지휘봉이 그의 발가락을 찌르게 되어 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당시에는 오페라의 막간에만 발레를 공연하도록 했으나 오페라보다 발레를 더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은 막간 공연만 가지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막이 시작되기 전후 발레 넣기를 좋아했다. 이때 륄리는 그의 뛰어난 무용 실력과 무용 음악을 이용하여 서정비극 오페라를 만들게 된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서정비극 오페라는 시인인 퀴노와 함께 만든 본격적인 무대음악으로 그동안 인용하지 않던 그리스신화를 내용으로 대본을 쓰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강하게 대비시켜 극의 성격을 확실히 표현했다. 음악도 흥미를 더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와 성악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했다. 륄리는 프랑스 특유의 노래성격이 강한 `레시타티브'를 이용하여 보다 더 선율적이고, 극적인 억양으로 표현했다. 결국 그는 종교음악, 서정비극 오페라 등 그의 모든 작품들을 화려하고 장대하게 연출하여 루이 14세의 권력과 영화를 찬양하였던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필립 헤레베헤(지휘), 라 샤펠 로얄(Harmonia mundi, 2002);에르베 니케(지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Naxos, 1999); 조르디 사발(지휘), 르 공세르 데 나시옹(Allavox, 199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