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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2] `법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_조선규 법제이사
[칼럼 12] `법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_조선규 법제이사
  • 의사신문
  • 승인 2013.07.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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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규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동인 변호사>

조선규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금요일 아침 6시30분, 상임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새벽시간대 운전이 그러하듯 4∼5초 남아있는 파란신호등을 무시하고 자동차 엑셀을 밟는다(도로교통법 제5조 위반). 오전 11시30분,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2차례의 매매계약이 동시이행으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민법 제568조 매매). 오후 4시, 김 회장님이 빌려 준 돈 회수문제로 고민하다가 소송을 의뢰하러 왔다(민법 제680조 위임).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많은 법률행위들이 인식할 겨를도 없이 발생했다가 사라지고 있다. 대개는 별탈없이 지나간다.

여러 인연으로 의사회에 몸담은 지난 1년여를 돌아볼 때, `의사'만큼 법과 밀접하게 연관된 직업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료계의 매 이슈마다 직·간접적으로 법이 관여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건강보험제도' 및 `의료수가'로 인해 필연적으로 행정청 및 환자들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 때문이라 생각된다. 의사들에게는 이외에도 사회인으로서 당연히 겪어야하는 법률분쟁도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의료인들이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하는, 법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상식적인 내용들을 4가지 정도로 요약해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법의 이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내게 법과 관련된 불상사가 벌어졌을 때, 의외로 정답은 다수가 공감하는 상식과 원칙에 있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 법제도의 기본뼈대는 `시민법'에 연원하고 있다1). 즉, 봉건영주, 절대왕정에 맞서 “나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유인이다”라고 주장하던 시민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법이 2013년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의 기본 도구로 사용되는 바로 그 법이다. 핵심내용은 “개개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니까 자유롭게 법률행위를 하라, 대신 네가 행한 결과는 네가 책임져라(계약자유의 원칙, 자기책임의 원칙)”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합리성이 아닌 감정적·정서적으로 접근한다거나, 자기만의 주관적이거나 고유한 주장 또는 치우친 논리로 접근할 경우, 법적으로는 대개 불리한 위치에 처해질 가능성이 많다. 실무에서 적용되는 법은 `이성'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둘째, “증거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의료사고든,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이든, 아니면 병원 임대차나 매매계약이든,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엄습한다면,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모으거나 진술서를 확보하거나 녹취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확보해 놓아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돈이 있는 사람들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들을 충분히 확보하거나 있는 증거들을 바탕으로 유리한 법적 상황을 만들어 낸 사람이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소송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법리 중 하나는 `입증책임'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주장이 아닌 증거로서 뒷받침하라는 말이다. 즉, 입증을 못하면 패소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실체적으로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법률적으로 패소하는 억울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셋째, `비교형량'하여 때로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가벼운 의료사고나 환자들과의 언쟁, 기타 병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들의 상당수는 법률적으로 `소액'인 경우가 많다. 통상 2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에서는, 행정처분 등이 연계된다든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비경제적일 때가 많다.

때문에, 분쟁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진료에 매진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환자 등 분쟁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고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후, 대화나 타협 또는 단호함 등을 적절히 조합하여 융통성 있게 상황을 헤쳐 나갈 필요가 있다. 경험적으로는, 공익 기타 사유로 인해 도저히 양보할 상황이 아니라면, 대화나 타협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조언을 해 줄 법조인을 1∼2명 정도는 옆에 두라는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학교 친구들 중에 법조인이 된 사람이 한두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인연이 된 사람이나 친인척 중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병이 났을 때 의지하는 사람이 의사이듯, 법률사고 발생시 우선 필요한 사람이 변호사이다. 갑자기 구체적인 법률 분쟁에 부딪쳤을 때 법률전문가가 아닌 한 혼자서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치소 접견을 가보면서 느끼는 건데, 수감자들 상당수는 어디서 전수받았는지 법률전문가로 변모해 있고, 심지어는 선고도 되지 않은 형량까지 예측하는 예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맞을 때도 있지만,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서 나온 숙성된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때문에 적절한 법적 판단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법조인을 옆에 두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참고로, 나는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을 20명 이상이나 알고 있어 무척 든든하고 행복하다.

조선규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동인 변호사>

각주) 1) 최근 사회법 원리가 대두되어 경제법, 노동법, 사회보장법 등이 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재판부의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은 개인주의·합리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시민법적 사고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다만, 의료관련 법률들에는 “공익”을 고려하는 조문들이 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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