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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스키 피아노삼중주 제1번 d단조 작품번호 32
아렌스키 피아노삼중주 제1번 d단조 작품번호 32
  • 의사신문
  • 승인 2013.07.1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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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8〉

아렌스키는 당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차이코프스키와 쇼팽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절충주의의 대표적 음악가이다. 그는 3개의 오페라, 2곡의 교향곡,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인 성악곡들, 피아노협주곡, 발레곡, 그리고 실내악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도 피아노삼중주 제1번 d단조는 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아렌스키의 아버지는 의사이면서도 뛰어난 첼리스트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부모들의 배경 속에서 9살 때 이미 작곡을 했다고 알려졌다. 18살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가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사사했는데,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오페라 〈눈 아가씨〉를 작곡할 때 보컬 파트를 공동으로 작업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그는 입학한 지 3년 만에 졸업과 동시에 음악원의 화성 및 작곡법 교수로 임명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때부터 차이코프스키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정을 받아 작곡가로서 성장의 계기를 잡게 된다. 교수로서는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미 이 시절 아렌스키는 과도한 폭음으로 스스로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차이코프스키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병적으로 신경이 예민하고 심지도 굳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894년 발라키레프는 자신이 맡고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 음악감독 자리를 아렌스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아렌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를 사임하고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1901년에는 그 자리도 떠나 남은 생애를 작곡에 몰두하였다. 당시 그는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많은 갈채가 쏟아졌다. 그러나 만성적인 알코올중독으로 그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불과 45세의 나이로 결핵에 걸려 만년에는 핀란드의 한 요양원에서 삶을 마치게 된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영향을 받아 서정적 소품이 많다. 예를 들어 〈차이코프스키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곡이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 비올라, 2대의 첼로라는 특이한 악기편성이었는데, 이 작품의 제2악장에서 채용한 주제는 차이코프스키의 〈아이들의 노래〉 중 제1번 `전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어린아이였다네'이다. 주제가 아주 간단하게 소개된 후 서정, 동경, 우울 등 모두 차이코프스키 음악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그런 이미지의 6개 변주들이 연주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느낌이 강한 제7변주 후 주제가 다시 나오고 피치카토로 끝을 맺는다.

이 곡은 그가 남긴 250여 곡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 화성과 음색이 유연하고 우수에 찬 서정적 선율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제1악장의 제1주제와 제3악장은 흐리고 쓸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만추의 하늘을 느끼게 하는 허전함이 베어져 있다. 특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한 제3악장 엘레지 때문에 더 유명한 이 작품은 러시아의 저명한 첼리스트이자 아렌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친구로도 널리 알려있는 카를 다비도프를 추억하며 작곡한 것이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다른 작곡가들의 트리오와 비교해보면 첼로의 역할이 월등하게 두드러진 모습이 발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삼중주와 함께 러시아 로맨티시즘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을 만큼 작품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짙은 서정미가 빼어나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첼로에 의해 연주되는 주제는 어딘지 아련한 느낌과 동시에 왠지 절박하면서도 터지는 열정을 지긋이 억제하는 그런 복합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피아노는 자신을 들어내는 일 없이 첼로와 바이올린의 대화를 충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제2악장 scherzo: allegro molto `아렌스키의 왈츠'라고 불리는 세련되고 기품 있는 악장이다. △제3악장 elegia, adagio 약음기를 낀 첼로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비가의 주제는 아렌스키가 얼마나 뛰어난 아름다운 선율의 작곡가인가를 들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다. △제4악장 allegro non troppo 깊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 강인한 의지로 열정과 환희로 가득 차 있다.

■들을만한 음반 : 보로딘 트리오(Chandos, 1986); 보자르 트리오(Philips, 1994); 야사 하이페츠(바이올린), 그레고리 피아타코르스키(첼로), 레오나르도 페나리오(피아노)(RCA, 1963)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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