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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바흐를 만나다 - 송인정 첼로 연주회를 다녀와서
<문화가 산책> 바흐를 만나다 - 송인정 첼로 연주회를 다녀와서
  • 의사신문
  • 승인 2013.07.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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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마포·임선영산부인과의원장>

연주회를 마치고 성당 제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임선영 원장
가녀린 천사의 몸짓에서 나오는 장중한 선율에 감동

한여름 밤 도심 한가운데서 바흐를 만났다. 송인정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가 있는 서울 명동 대성당에서였다. 아주 오랜만에 걸어서 명동성당으로 오르는 길은 다소 낯설기까지 했다.

올해 37세인 송인정은 12세에 오디션에 우승하여 서울 시향과의 협연을 통해 공식 무대에 데뷔했다. 그녀는 예원, 서울예고 수석입학 및 수석졸업, 서울음대 졸업 후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거장 로렌스 레써를 사사하며 장학생으로 석사과정을, 보스턴대에서도 과르네리 콰르텟의 데이비드 소이어를 사사하며 장학생으로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알링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콩쿠르 명예상,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뉴욕데뷔 오디션 우승, 노스캐롤라이나 뮤직아카데미 콩쿠르 1위 외 다수 국내, 국제 권위의 대회들을 석권한바 있으며 2008년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연주는 연주회 수익금 전액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재능기부, 사회공헌 형식을 띤 연주회이기도 했다.

대성당 맨 앞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일반 신자 석이 객석이 되었다. 미색 드레스차림의 그녀가 첼로를 들고 쓰윽 나타나 자리에 앉는다. 그야말로 무반주로 홀로 하는 연주다. 그녀는 아이를 끌어안듯 첼로를 껴안는다. 활을 대자마자 오디오가 켜지듯 장중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몸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과 귀를 열고 그녀가 만드는 선율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베이스 성부의 음역을 지녔다는 첼로, 70cm의 악기 몸통과 네 줄의 현 위를 아래위로 오가며 양손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그만 넋이 나간다. 가녀린 팔에 힘이 들어간다. 지그시 눈을 감고 바흐 속으로 들어가는 표정이 읽힌다. 흰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는다. 그 수건으로 자신의 분신인양 아이 얼굴 닦듯 악기의 현과 활을 닦는다. 자신의 일부가 된 악기, 어쩌면 원래 그녀의 일부였는지도 모르겠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cello suites)은 총 6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suites는 무곡들의 모음곡이란 뜻이다. 바로크 시대에 유명한 오르간연주자이기도 했던 바흐(1685∼1750)는 그의 전성기였던 궁전 악장 시절에 능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위해 많은 실내악곡을 만들었는데 그중 잊을 수 없는 것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바흐 사후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의 악보도 제대로 보관되지 못했다.

명동대성당 내부 모습.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살스(1876∼1973)가 13세 때, 풀사이즈 첼로를 처음 갖게 된 날 바르셀로나의 한 고 악보 서점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하였다. 카살스는 이 악보 발견을 하늘의 계시로 여겼다. 악보 발견 후 12년간 바흐 모음곡에 관한 피나는 연구와 연습 끝에 25세 때 공개무대에 올린 카살스는 바흐 모음곡을 불후의 명곡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나이가 들어 서거하기 직전까지 바흐 모음곡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렇듯이 바흐의 `6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모든 첼리스트에게 도전해야 할 알파요 오메가가 되었다.

전곡연주가 장장 3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다. 듣기만 하는 청중도 힘든데 연주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가볍게 걷듯 경쾌한 발자국을 옮기듯 애잔하고 장중하게 계속되는 첼로 선율은 성당 안을 가득 채운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 틈에 큰 성당 안은 청중으로 가득했다. 낮이 가장 긴 하지를 갓 지난 저녁 하늘은 오랫동안 성당 제대 위 스테인드글라스에 밝은 빛을 선사했다.

그녀의 연주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하느님께 올리는 한 편의 경건한 기도가 되었다. 현존하는 하느님 대전에서 그 기도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죄의 사함을 받는 듯했다. 천사의 몸짓으로 현을 타는 듯한 순결한 모습은 프랑스 프라드의 한 가톨릭 수도원에서 연주하는 77세 카살스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종교적 신념하에 음악으로서 신에게 봉사하는데 일생을 바친 바흐가 살아 걸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주자 송인정은 음악의 마라톤인 독주회를 끝낸 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청중들과 이렇게 교감을 나눴다.

“신성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청중과 만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바흐의 곡을 연습하는데 육체적 피곤함 때문에 연습을 쉰 적은 있었지만 지루해서 그만둔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연습해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바흐를 만나게 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저의 길을 갈 겁니다.”

한 떨기 백합 같은 가녀린 몸매의 그녀에게서 음악의 향기, 삶의 향기가 은은하게 전해져 왔다. 밤이 이슥해지는 것도 모르고 첼로의 선율에 바흐에 깊이 빠졌었나 보다. 늘 그 자리에 굳건하게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 명동성당이 예술의 전당이 되어 음악적 영감을 안겨준 멋진 밤이었다.

“선생님의 연주는 이미 완벽한데, 왜 힘들게 계속 연습을 하시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만년의 파블로 카살스는 이렇게 답했다.

“연습하고 나면 제 실력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걸 느끼니까요.”

이미 경지에 오른 첼리스트 송인정이 객석의 청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로도 들렸다.

임선영 <마포·임선영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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