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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확장제 등 비상약 준비·심폐소생술 숙지해야
혈관확장제 등 비상약 준비·심폐소생술 숙지해야
  • 의사신문
  • 승인 2013.07.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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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권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

의사신문-서울시의사산악회 공동기획
 `의사 산악인들이 들려주는 건강한 산행의 모든 것' 〈3〉

 

■ 글/싣/는/순/서

1. `건강한 산행'을 연재하며 - 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2. 고산에서의 소화기 기능의 변화 - 김진민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3. 산에서의 돌연사 - 박병권 서울시의사산악회장(박병권내과원장)

4. 대사증후군치료는 등산으로
- 이관우 서울시의사산악회 자문위원(이관우내과의원장)

5. 등산과 하지정맥류 - 박영준 내과의원장

6. 야외활동으로 인한 감염병 - 조해석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이사

7. 산에서의 이비인후과 질환 - 유승훈 이비인후과 원장

8. 산에서의 골절예방 - 이용배 성모외과 원장

9. 저산소증 - 이재일 대한의사산악회장

10. 설맹의 예방 - 박석준 오세오 안과 원장

11. 노년기의 등산 - 노민관 가정의학과 원장

12. 동상,동창,저체온증 - 박홍구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13. 등산시 탈수와 탈진 - 박영준 서울시의사산악회 학술이사

 

박병권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
“작은 오빠가 오늘 설악산에서…!”

4년전 9월 초순,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던진 아내의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작은 처남이 전날 일박이일의 일정으로 설악산등반을 떠났던 일이 생각났다. 그해 환갑을 맞이하는 고교 동기들끼리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진행한 특별산행이었다.

오색의 숙소에서 일박을 하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서북능선에 올라 대청봉을 거쳐 오색으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코스였다. 불의의 사고는 서북능선 진입을 코앞에 둔 오르막 길에서 일어난 듯 하였다. 앞서가던 처남이 갑작스런 신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그것이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고 한다. 등산이 시작된지 채 두시간이 안되는 시각이었다.

동문 중에서도 발이 넓던 처남은 동기산악회의 행사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었고, 이날 아침에도 제반준비사항을 점검하느라고 뒤쳐져서 출발이 늦었다고 한다. 산행전의 준비운동과 스트레칭에서도 혼자 빠지고 워밍업도 없이 서둘러 일행들을 따라잡을 욕심에 몸에, 특히 심장에 무리가 됐으리라 미루어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의사의 입장에서 나의 추정사인은 심장돌연사다. 돌연사 또는 급사란, 예기치 않은 증상이 나타난 후 한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이중 80%는 관상동맥자체의 질환과 관계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에 전국의 국립공원 20곳에서 발생한 심장돌연사는 모두 9건으로 전년도의 7건에 비해 2명이 더 사망했다고 한다.

내 자신이 건강하자고 하는 운동이고, 더구나 등산은 심폐기능을 향상시키고 근력과 유연성을 길러주는 좋은 운동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안타깝게도 돌연사의 약 반수에서는 평소 이와 연관된 증상을 한번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달리 표현한다면 첫 증상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로 무서운 일이다. 처남의 경우에도 생전에 심장과 관련한 어떠한 증상의 호소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를 사전에 막을 방도는 없었을까?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인자로는 나이(남자 45세 이상, 여자 55세 이상), `나쁜 콜레스테롤'로 지칭되는 이상지질증, 흡연, 당뇨병, 고혈압 등이 있으며, 생활습관과 관련해서는 복부비만, 심리적인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이 나쁘게 작용한다고 한다. 과음은 당연히 해로우나 하루 한두잔 이내의 소량의 음주는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처남의 입장에서 보면 나이는 어쩔 수 없는 위험인자였고 고혈압과 이상지질증에 대하여는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해 정년퇴임을 한 이후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고, 최근에 대장암이 재발되어 일주일이 멀다하고 입퇴원이 거듭된 장모님의 병수발을 하느라고, 정작 자신의 몸관리는 못하여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이어진 스케줄을 소화해내기가 힘겨웠으리라 짐작된다.

한번이라도 흉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흉통과 관상동맥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르는 합당한 치료와 더불어 향후의 운동처방도 아울러 받아야 한다.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않더라도 자신의 심장에 대하여 정밀검사를 미리 받아서 이에 대한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처남도 국민건강보험검진의 정상소견과 평소의 체력만을 과신하여 운동부하검사 등의 보다 더 정밀한 심장검사를 받을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이와같은 검사를 통하여 자신의 운동능력을 올바로 평가받을 수 있고, 만일 이상소견이 발견되었었다면, 운동과 관련된 혈압과 맥박의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면서 운동능력을 키워나갈 수도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아스피린과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 등의 혈관확장제를 준비하고 자신이 심장질환환자임을 알리는 표식을 지니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심혈관질환환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처남도 소위 A타입의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9월이면 설악산은 이미 서늘한 가을날씨이고, 능선에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상당히 낮아진다. 그런데 사고 후 가족들에게 인도된 처남의 모습은 놀랍게도 반팔 차림이었다. 오르막에서 쉬지 않고 흘린 땀과 능선의 찬기운이 저체온을 일으켜, 심장에 부담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처남을 죽음으로 이끈 위험요인들을 미리 하나하나 줄여서 다가오는 불행을 막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철저한 혈압과 혈당관리,지질조절, 복부비만의 교정을 포함한 적절한 체중관리, 금연, 음주조절, 평소에도 자주(30분 이상, 주 5회) 운동하여 등산에 적합한 몸 만들기, 느긋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등산하기 등을 권하는 바이다.

산에서의 사고는 대처가 어렵다. 심장돌연사의 경우에는 잠시라도 시간이 지체된다면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누구라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응급처치요령과 심폐소생술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 특히 단체로 움직이는 각 산악회부터라도 전회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숙지시켰으면 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을 발견했을때, 주변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산악구조대에 연락을 취하며, 호흡과 맥박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여야 하고 없다면 심폐소생술이 즉시 시행되어야 한다. 심폐소생술은 정확히 시행되어야 하고 의료진 또는 구조대에 인계될 때까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하므로 무척 힘이 드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생명을 지켜주는 귀중한 과정이다.

다시금 4년전 그때의 표정들이 생각난다. 갑작스런 재앙이 믿기지 않았던 가족들, 흥겹게 하산주를 즐겼어야할 시각이었건만 정지된 산행모습 그대로 영안실에 모인 동창생들의 풀죽은 모습들.

그 이후로도 한계령을 통해 설악산에 오를 기회가 세차례 더 있었기에 사고가 있었던 그 지점에 다다르면 잠시 멈춰서서, 작은 처남의 순박했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하였다. 이제는 산악회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책임을 갖는 일원으로서 안전산행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박병권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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