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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낭만길에 대하여
서울시의사산악회, 낭만길에 대하여
  • 의사신문
  • 승인 2013.07.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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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만장봉 정상에 선 필자. 뒤로 신선대와 자운봉이 보이다.
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만장봉에서 내뿜은 생과 사를 넘은 바윗꾼의 안도

실로 오랜만에 장비를 차고 바윗길을 올랐다. 작년 스위스 원정 산행에서 세찬 바람속에 브라이트호른(Breihorn 4164 m)에 오른후 동행한 권대장(천안암벽산악회)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소는 도봉산-낭만길. 바윗길에 무슨 낭만이 있으리오 마는 하여튼 낭만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 낭만길은 1964년 10월에 `요델산악회'에서 개척된 암릉길로, 그 역사가 벌써 50여년이 지난 진정 낭만을 떠올릴수 있는 길일수 있다(고수들 이야기지만).

6월6일 아침 9시 권대장을 도봉산 역에서 만나 동행한 배선생과 인사후 도봉산길로 접어든다. 멀리 보이는 도봉산의 바위산 -좌측으로부터 선인봉,만장봉,자운봉(740m)이 나를 압도한다. 낭만길의 출발점은 도봉산 입구에서 1시간20분 정도 걸리는 만월암 좌측 능선길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월암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축원한 암자인데 바위사이에 정교히 건립된 사찰로 외로히 바위틈에 끼어 있는 형색이다. 신라시대의 고찰들은 의상대사 아니면 원효대사 이름이 꼭 들어가니 두분 고승들께서는 무척 바쁘셨을 것이다. 또한 등산에도 일가견이 있으셨을 것이다. 일일히 전국의 사찰을 다 챙기셨을 테니까.

암자앞에 설치한 수도 꼭지(?)에서 식수를 가득 채운후 좌측으로 틀어 낭만길 초입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틀면 “배추흰나비의 추억”이라는 암벽길로 오른단다. 이 이름은 더욱 가관이다. 바위산에 배추흰나비가 찾아올 확률은 극히 낮겠지만 명명자의 의중은 알길이 없다. 바윗꾼들은 시인의 기질을 타고 났나 보다. 시인 “신동엽 릿지”가 있는것을 보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에 노출된 바윗꾼과 지독한 외로움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인사이에 뭔가 공통점이 있을꺼야.

시작지점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하네스(안전벨트), 8자하강기, 헬멧, 확보줄, 그리그리 확보기, 몇개의 스링을 착용하고, 등반차례는 선등 -권대장, 2등-배선생, 마지막으로 내가 장비를 회수하면서 오르기로 한다, 바위꾼의 신조 중 `등반의 실패는 용서해도 확보의 실패는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추락해서 다치기는 해도 확보를 잘못해 남을 다치게 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자는 희생정신의 폭넓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확보-선등하는 사람뒤에서 선등자가 추락시 일정 길이만 추락하고 정지할수 있도록 연결된 로프를 풀어주고 당겨주거나 제어하는 역할)

루트 개념도에 의하면 총 9 pitch 로 된 직상 높이 약 150여 미터의 바윗길은 크랙(crack) 침니 (chimney)스랩(slab)으로 오밀조밀하게 이어져 있다. 마지막 크랙을 오르면 어둠속에서 밝은 세상에 나오듯이 불쑥 만장봉 정상에 오르게 된다니 아직 실감이 안난다. 개념도에 표시된 대로 1, 2, 3 피치는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경사가 완만한 스랩,크랙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고도는 상당히 높아져 발밑에 수락산 터널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우측으로 보이는 연기봉에서 `배추흰나비의 추억'을 오르는 암벽꾼이 힘든 오름질을 하고 있다. 보기만해도 심장이 멎는 듯한 바윗길에 선등자가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후등자를 리드하고 있었다. 배추흰나비처럼 나불나불 날며 오르라는 것인지… 후등자의 거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듯 사방이 적막에 휩싸이고 “완료”소리에 나 또한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음 4피치가 이길중 난이도 5.8의 크럭스(crux)인데 침니식 크랙으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갈라진 바위틈을 잡고 몇발 내디딘후 침니를 빠져 나가야 하는데 보통은 배낭을 벗어 올리고 마치 자벌레가 몸을 움추렸다 피면서 움직이듯이 조금씩 빠져 나간다. 왠지 배낭을 벗지 않고도 오를수 있을것 같아 침니속으로 들어갔다가 꽉 끼이는 바람에 아예 몸부림을 치듯이 몸을 흔들어 간신히 탈출하였다. 땀으로 온몸을 적시니 손발이 저려온다. 휴우우…긴 호홉을 토하고 물병을 찾는다. 단숨에 물을 들이키자 불현듯 과거 생각이 떠오른다.

암벽을 오르는 필자 사진.
1998년 가을 IMF가 터져 온나라가 뒤숭숭 할때 정승권등산학교에 입교를 하였다. 늦게 입문한 등산에 푹 빠져 북한산의 모든 코스를 마스터 한뒤 마지막 남은 북한산의 보석 -인수봉을 오르기 위해서 였다. 지금 생각해도 용기가 가상하였다. 등산학교 교육은 4주간의 기초훈련을 마치고 5주째 졸업등반으로 인수봉에 오르는 코스이다. 필요한 암벽장비를 구입하고 무거운 장비를 메고 훈련장인 도봉산 석굴암 곁의 암장에 도착하면 실전에 임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 버린다. 매듭훈련, 하강훈련, 암벽오르기, 빌레이(확보)법훈련, 후렌드설치법 ,캠설치법 등 기초훈련을 마치고 이제 졸업등반만 남겨 놓았다.

5주째 일요일 아침, 인수봉밑에서 조를 짜 올라갈 루트를 정해주는데 정승권교장은 의사선생님은 “의대길”로 가란다. 이 루트는 우이(牛耳)를 나타낸 소귀바위를 직등하는 루트로 고도감이 엄청나다고 한다. 루트를 바꿔 달랠까? 고민하고 있는데 교장은 멀리 가버리고 조교가 빨리 이동하잔다.

조교의 인솔로 첫피치 앞에 섰는데 첫 번부터 만만치 않다. 25m의 스랩구간. 초입에 좌측으로 난 크랙을 잡고 일어서야 하는데 몇 번을 버벅대다 간신히 오른다. 둘째 피치 의대길에서 가장 난이도(5.10a)가 높은 20m의 크랙구간이다. 길은 반들반들하고 무시무시한 고도감으로 몇 번의 스립 끝에 확보점에 다달았다. 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라도 이것 만큼은 못하리라. 시원하고 멋진 조망은 날아가 버리고 오직 살아야 겠다는 인간본연의 욕구뿐이다. 셋째 피치, 인공등반구간으로 볼트가 5개 박혀 있다.

직벽의 천길 낭떠러지에 볼트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몸이 움추러 들어 다음 볼트까지 손이 닿지 않아 1센티 뻗느라고 온몸의 근육을 동원한다. 닿을듯 말듯… 정말 살기 위해서 끝까지 오르고 인수봉 정상에서 만세를 불렀다.그래서 어렵사리 졸업장을 받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마른다. 이길은 1978년 서울의대 산악부에서 만든 길이란다. 장비도 충분치 않고 군화신고 다니던 시절이었을 텐데. 대단하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의대길처럼 의사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라도 한것일까?

시원한 물한잔에 정신이 맑아진다. 5피치는 오른쪽 우횟길로 진행하여 어려움이 없다. 뜀바위를 지나 말등바위를 두 번의 실패후 힘겹게 오른다. 6피치는 비교적 짧은 크랙을 통과 7피치의 시작점인 넓은 테라스에 도달한다. 가지고 간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도 한잔하니 주변의 경관이 눈에 찬다. 도봉구의 아파트군,수락산을 파고 드는 외곽순환도로등이 발아래 펼쳐저 있다. 25m의 직상크랙 어제 산 릿지화가 바위에 붙어준다. 이제 다왔다. 어렵지 않은 바윗길을 올라 드디어 만장봉정상이다. 우측에 자운봉 좌측의 신선대가 바로 코앞이다.

신선대의 산행객들이 만장봉에 우뚝선 우리에게 환호를 보낸다. 너른 바위위에 한참을 누워 만장봉의 정기를 받는다. 하산길 20m 길이의 2피치. 불규칙한 바윗길에 오랬만에 해보는 하강이 영 불안하다. 그리고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조급해 하지 말자. 두 번째 하강은 천천히 주의를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4시간 반이나 걸려 오른 만장봉에서 단 15분만에 하강 완료. 싱겁다.

장비를 챙기고 하산길을 서두른다. 오후 3시반. 배가 출출하다. 시원한 맥주 생각을 하며 도봉산 초입의 약수터를 지날무렵 “짙은 색소폰소리”가 들린다. 10년전에도 그 자리에 계시던 섹소폰 아저씨다. 그래 5시간동안 낭만을 잊고 있었다. 최백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궂은비 내리던 날…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소릴 들어보렴…이제와 새삼 이나이에 청춘에 미련이야 있겠나마는…다시 못올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길에 대하여…

서윤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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