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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바버〈현을 위한 아다지오〉 작품번호 11
사무엘 바버〈현을 위한 아다지오〉 작품번호 11
  • 의사신문
  • 승인 2013.07.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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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6〉

베트남전에서 적과의 교전 중 홀로 작전에 나선 일라이어스는 자신을 질시하는 동료 반스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고 홀로 정글에 남겨지게 된다.

일라이어스가 적의 총에 죽었다는 반스의 거짓말을 듣고 동료들이 헬기로 철수하는데 저 멀리 부상당해 처져 적에게 쫓기는 일라이어스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영화 〈플래툰〉은 시작된다. “모두가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살인에 무뎌지고 있어. 결국 우리의 이런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거야.” 마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마지막 고해성사처럼 일라이어스가 죽기 전 하늘을 향해 인상 깊은 몸짓과 함께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처연하면서 장엄하게 흘러나온다.

현대 미국 작곡가 중 보수적이고 이지적이며 견실한 작풍과 로맨틱한 서정성을 겸비한 바버는 펜실베이니아 웨스트 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가 모두 음악인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다. 14세에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원에 입학하여 당대 위대한 지휘자인 프리츠 라이너에게서 지휘를, 로자리오 스칼레로에게 작곡을 배우게 된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 그리고 그의 주변에 항상 함께하고 있는 시인, 화가, 작가들로부터 얻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35년 퓰리처상, 구겐하임 장학금, 아메리카 로마상 등을 수상하여 로마의 아메리카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하는 동안 작곡한 교향곡 제1번과 현악사중주곡 제1번은 그의 출세작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바버가 친구 지안 카를로 메노티와 함께 마지오레 호수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별장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서 작품을 청탁받고 바버는 거장에게 인정받은 사실에 기뻐하며 〈관현악을 위한 에세이〉와 함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악보를 토스카니니에게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편으로 악보가 되돌려져 왔다. 바버는 토스카니니에게 무시당한 것 같아 크게 실망한다. 메노티가 작별인사를 하러 토스카니니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사실 바버의 악보를 본 토스카니니는 작품에 흡족하여 악보를 모두 암기하였지만 아무 답 없이 바버에게 악보를 모두 보낸 것이다. 메노티를 통해 자초지종을 알게 된 토스카니니는 악보가 되돌려진 이유를 설명해 주며 연주회 날짜를 잡고 있다는 계획도 함께 알리자 바버의 오해는 눈 녹듯 풀리게 되었다.

1937년 현악 사중주 제1번의 제3악장 중 제2악장을 현악 합주용으로 편곡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1938년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교향악단이 첫 연주한 후 남미 순회공연 중 내내 연주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1942년 카네기홀에서 녹음되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음악적 기법은 결코 혁신적인 것은 아니지만, 로맨틱하면서도 이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초기엔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이나 재즈의 혼용도 보이지만, 보수적이면서도 미국의 현대생활을 반영한 기지와 신선함이 그의 작품들 속에 녹아 있다. 그는 2차 대전 직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몇 년 동안 살면서 유럽 고전주의 음악의 기반을 탐구하였다.

이같은 기반 위에 미국적인 현대감각을 살려 진정한 미국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고 그 공로로 1958년 퓰리처상을 받게 되고 1959년에는 하버드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 장례식에서 비극적이며 장엄한 선율로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었다. 이후 알베르트 아인스타인, 존 F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 추모식에서 연주되었고 1981년 1월 바버 본인의 장례식에서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게 된다.

Molto Adagio 기존 5부의 현악파트에다가 제2바이올린과 첼로파트를 다시 각각 2파트로 나눈 7성부의 악기편성으로 구성하여 조용한 화음반주로 제1바이올린이 명상적인 주제를 켜낸다. 이 주제는 다음에 5도 아래에서 비올라로 나타나고, 바이올린은 다른 선율을 켜기 시작하여 대위법적으로 진행해 간다.

이어 주제를 첼로가 유니슨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며, 점점 힘을 증대시키면서 콘트라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악기에 의해서 최강음(ff)의 정점을 구축한다. 휴지를 둔 다음 다시 최약음(pp)으로 돌아가고 주제가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유니슨으로 조용히 끝을 맺는다.

■들을만한 음반: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BS, 1971);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지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RCA, 1942);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2); 네빌 마리너(지휘), 성 마틴 인더필드 아카데미 (Philip, 1986)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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