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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어린이 차지〉
드뷔시〈어린이 차지〉
  • 의사신문
  • 승인 2013.06.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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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5〉

젊은 시절 여러 여인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드뷔시의 삶은 지극히 탐닉적이었다. 애인 중 한 명이었던 가브리엘 뒤퐁이라는 여인은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으며, 1899년 결혼한 첫 아내 로잘리 텍시에는 권총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드뷔시도 강렬한 열정을 지닌 예술가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살 충동이 늘 따라다녔다. 1904년 로잘리 텍시에와 이혼하고 엠마 바르다크와 재혼하면서 드뷔시는 엠마가 낳은 사생아인 끌로드 엠마를 얻게 된다. 드뷔시 부부는 사생아로 인해 여러 루머에 시달리게 되자 1908년 영국 남부 해안도시 이스트번에 피신하게 되는데 이때 3살배기 딸을 위해 쓴 피아노곡이 〈어린이 차지〉이다.

이 곡은 무소륵스키의 연가곡 〈어린이 방〉의 프랑스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민하고 감각적인 성격을 가진 드뷔시는 이 곡 이외에도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전주곡〉, 발레곡 〈장난감 상자〉 등 어린이의 마음을 잘 읽어낸 곡들을 다수 작곡한다.

당시 45세의 드뷔시는 이 곡의 악보에 “다음을 이을 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하는 말과 함께 내 귀여운 슈슈에게”라는 헌정사를 썼다. 슈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끌로드 엠마는 1905년 파리에서 태어나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본명도 아버지의 이름 `클로드'와 어머니의 이름 `엠마'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슈슈는 드뷔시의 대부분의 곡에 영감을 제공했는데 프랑스 피아니스트 가비 카자드쉬에 따르면 슈슈는 피아노를 잘 쳤고, 아버지가 작곡한 곡도 잘 소화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게 된다. 그녀도 살아있었더라면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아버지가 죽자 곧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는 훗날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거의 영적인 어떤 힘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왔다.

드뷔시에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바그너와 보로딘, 무소륵스키였다. 바그너의 `총체예술'은 예술가들의 정서적 반응을 세련되게 하고 그림자가 드리운 듯 불완전한 형식으로 된 그들의 숨은 꿈같은 상태를 구상화시키도록 자극을 주었다. 드뷔시는 사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에서도 상상력이 미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것으로부터도 경험을 모으고자 했다.

〈어린이 차지〉는 총 6개의 작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고 드뷔시가 평소 영국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각각 영어 제목이 붙였다. 이 작품에서의 음악기법은 간결하고 내용도 각각 제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 곡의 이야기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 크라뒤스 아드 파르나슴 박사(Doctor Gradus ad Parnassum):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곡으로서 단순한 연습곡에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박사라는 이름을 붙여, 어린 아이가 싫증이 나서 연습곡을 치고 있는 기분을 표현하고 있다. 드뷔시는 이 곡에 대해 “아침마다 건강하고 상쾌하게 아침 체조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2. 코끼리의 자장가(Jimbo's Lullaby): 슈슈가 잠자리에 들기 전 벨벳으로 만든 코끼리 장난감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이다. 코끼리 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는 자장가를 부른 지 얼마 안 되지 않아 코끼리와 함께 꿈나라로 잠들어 간다.

3. 인형에의 세레나데(Serenade of the Doll): 스페인풍의 세레나데로서 슈슈에게 새로 사다 준 둥근 눈의 미소를 띠는 인형에 대한 아이의 기쁨과 애정을 담은 가장 귀여운 노래이다.

4. 눈이 춤추고 있다(The Snow is Dancing): 겨울날 따뜻한 방에서 아이들은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눈이 날리는 것을 보고 있다. 눈이 왔다 갔다 나풀거리는 모습을 청량한 피아노 소리로 표현하면서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심정을 담고 있다.
5. 꼬마 양치기(The Little Shepherd): 장난감으로 만든 양떼를 거느린 양치기 목동이 작은 뿔피리로 부르는 노래이다. 전원적인 고요함속에 먼 지평선을 그리는 동심의 세계를 그렸다.

6. 골리워그의 케<&07644>워크(Golliwogg's Cakewalk): 1900년대 유럽에서 유행한 검은 얼굴, 둥근 눈, 검은 머리의 골리워그란 흑인 인형이 탬버린과 비슷한 악기를 두들기고 흔들며 춤추는 모습을 그렸다. `케<&07644>워크'라는 미국 춤을 추는 모습을 음유시인이 읊조리는 느낌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피아노)(DG, 1971); 상송 프랑수와(피아노)(EMI, 1968): 발터 기제킹(피아노)(EMI, 1953); 미쉘 베로프(피아노)(EMI, 197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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