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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영상〉제1, 2집 작품 110, 111
드뷔시〈영상〉제1, 2집 작품 110, 111
  • 의사신문
  • 승인 2013.06.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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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4〉

“나는 음악을 열렬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까닭에 나는 그것을 숨 막히게 하는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용솟음쳐 오르는 자유의 예술이며 하늘과 바다, 바람과 같이 무한한 것들의 예술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은 영혼의 서정적 발로와 꿈의 환상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정의하고 있다.

드뷔시의 음악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음의 충격이다. 모호한 듯 미묘한 화성이 빚어내는 낯선 색채감, 뚜렷한 방향 없이 부유하는 선율 그리고 느슨한 가운데 암중모색하는 리듬 등 모든 음향의 새로운 기법은 듣는 이의 귀를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해체시킨다.

드뷔시에 대한 최고의 평가 중 하나는 그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 비현실적인 것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서는 화성 진행이나 주제의 일목요연한 발전, 다듬어진 선율 등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음악의 주재료는 철저히 `음'자체이고 그것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현상이며 빛깔들이다. 그는 그동안 형성되어온 고전과 낭만주의 어법을 내려놓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향의 세계를 열어젖혔다.

19세기말은 모네의 실험적 작품을 계기로 마네, 르누아르 등에 의해 인상주의 화법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미술계의 주제였던 `명암의 대조'는 점차 `따뜻함과 차가움'의 조화로 진화되면서 사물의 색깔, 구도, 원근을 부정하고 찰나에 비친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동적인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빛이 시시각각 변화할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모습도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기법을 음악에 접목한 이가 바로 드뷔시이다. 그러나 그가 더욱 깊이 천착했던 것은 상징주의의 작품세계였다. 시인 말라르메, 랭보, 철학자 베르그송의 암시적인 어법들은 드뷔시의 음악에 결정적 영감을 제공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절대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코 부정확한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사물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 후 비로소 그 물체에 대한 투영도를 그리는 인상파처럼 전통적인 화성으로 나타나는 음색을 부정하지만 감성적으로 승화시킨 예술세계인 것이다.

드뷔시는 1905년과 1907년에 걸쳐 영상 제1집과 제2집을 발표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바람, 물, 불, 눈, 나무 등의 변화하는 자연이 주요 소재가 되었듯 인상주의 음악기법을 확립하게 된 드뷔시는 교향시 〈바다〉를 완성한 후 그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그 후 사물이나 정경을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표현하면서 인상주의 기법의 절정을 이룬 피아노곡집 〈영상〉을 작곡하게 된다. 〈영상〉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의 변화뿐만 아니라 음의 배열에 따른 원근감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독립된 피아노 음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공간에 울려 퍼질 때 그 각각의 음들이 묘한 어울림을 형성하여 마치 모네의 〈수련〉과 같은 풍경을 연상하게 된다.

제1집 △제1곡 물의 반영. 드뷔시는 시각적인 물의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 치환하였다. 섬세한 아르페지오가 빛과 그림자의 이미지로 부각되면서 가볍게 나는 듯 움직임을 통해 시적인 정서에 흠뻑 젖게 만든다. △제2곡 라모를 찬양하며. 프랑스의 대작곡가 장 필립 라모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곡으로 라모의 음악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차분하게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3곡 움직임. 움직임이라는 추상적이고 동적인 감각을 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리듬의 반복을 통해 운동과 힘, 전진을 느끼게 하면서 활기찬 선율이 흐른다.

제2집 △제1곡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유동적인 형태의 마치 베일로 가려진 음들처럼 회화풍의 조용한 묘사로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다. △제2곡 황폐한 절에 걸린 달. 엷고 희미한 느낌의 선율, 그리고 조용한 독백과 같은 유사한 리듬으로 마치 달빛이 가라앉는 정경이다. 동양적인 음계로 절의 풍경소리를 듣는 듯하다. △제3곡 황금 물고기. 물과 더불어 그 속에서 움직이는 오브제인 물고기가 빚어내는 빛깔과 움직임을 음향화하였다. 동양풍 쟁반에 그려진 금빛 물고기를 보고 그 움직임을 그리고 있다. 유려한 선율 사이에 중국풍 선율이 나타나면서 마치 중국의 귀족 저택의 마당을 거닐고 있는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들을만한 음반: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피아노)(DG, 1971); 발터 기제킹(피아노) (EMI, 1953); 미셀 베로프(피아노)(EMI, 1970); 알도 치콜리니(피아노)(EMI, 1992)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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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a 2014-11-13 02:15:03
음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읍니다 . 글을 쉽게 복사할 수 있어 열린 마음에 더욱 경의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