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8:07 (화)
이태리차 이야기<1>
이태리차 이야기<1>
  • 의사신문
  • 승인 2009.06.17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 마비시키는 매력적인 아름다움 가져"

자동차 매니아는 모두 취향이 많이 다르다. 마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다. 다만 판단기준이 마니아만큼 고집스럽지 않을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만 해도 보는 눈은 모두 다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라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기만 하다. 과정 자체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얼마전 방영됐던 `꽃보다 남자' 같은 프로가 인기 있던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언제나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번에 적었던 일본 자동차 평론가 도쿠다이지는 `20세기의 자동차'라는 몇편의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다. 글은 스포츠카 이야기와 미래의 차에 거는 기대로 끝을 맺는다. 글에서 페라리 4대에 얽힌 자신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밝히기도 했다. 기사는 미래의 차를 같이 다루면서도 `21세기에도 자동차는 인간적이었으면 한다'는 소제목으로 자기 생각을 압축했다. 전기차와 고효율의 극치에 다른 차들이 나오는 시대를 인정하면서도 차들이 인간적이기를 인정했다. 사람들은 이성으로만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말 명문이다.

“자동차는 아주 인간적인 것이다. 차는 우아하기보다는 속됨의 극치, 인간의 욕망 바로 그것이다. 20세기의 자동차는 끝없는 사치와 값을 따지지 않는 최고의 메커니즘을 추구하여 정말로 어리석으리만큼 지나치고, 아름답고, 위험한 것에 빠져버렸다. 또 어떤 때는 철저한 합리주의를 관철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값이 싸고 신나는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하려 했다. 자동차는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감정적이다. 차는 인간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다. 그렇기에 20세기의 사람들은 차에 미쳐버리고 이를 추구했다”

도쿠다이지는 자신 역시 감성적이며 속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멋을 한껏 부리고 다니는 한량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태리의 차들을 좋아하고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었다. 특히 페라리와 알파로메오와 페라리에 대한 사랑은 지나칠 정도였다. 뛰어난 디자인과 감성이 이 차들의 매력이다. 일상적인 용도에는 잘 맞지 않는다. 페라리는 가격부터 시작해서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차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대단하다. 차를 보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어 버린다. 특히 예전의 페라리 모델들이 더 그랬다.

아무튼 지금처럼 페라리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이전에 도쿠다이지는 페라리의 마력에 빠져 있었다. 차를 타면서 많은 고생을 했으면서도 페라리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타고 싶어했다. 도쿠다이지의 첫 페라리인 365는 엔진이 쉽게 걸리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키를 돌리고 팍팍팍 하는 소리가 날 때, 서툴게 액셀을 밟으면 바로 엔진이 꺼졌다. 12기통 중에서 6기통 정도만 점화된 것이다. 이렇게 엔진이 서버리면 점화 플러그가 젖어, 그 날은 꼼짝 못한다. 팍팍팍 소리가 날 때 액셀을 절반쯤 밟은 채로 참으면서 연료 펌프에서 휘발유가 충분히 고루 공급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 뒤 12기통 전체가 폭발하면서 유명한 페라리 사운드를 연주하게 된다. 엔진이 걸리기도 하고 안 걸리기도 하는 등 믿을 수 없어, 페라리는 주차장 안쪽에 넣고 앞쪽에는 다른 차를 두게 된다.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페라리를 시동시켜 보고, 시동이 걸리면 앞쪽 차를 빼낸 뒤 페라리로 출발한다. 시동이 안 걸리면 그 날은 체념하고 앞쪽의 다른 차로 집을 나선다. 아주 귀찮은 `페라리가 있는 생활'이었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도쿠다이지는 형편이 좋을 때라 차를 바꿨다.“서글프게 이번에도 제대로 달리지 않는다. 마침 일본의 배기가스 규제가 엄격해진 무렵에 그것을 억지로 통과시킨 차여서, 엔진이 제대로 돌지 않았다. 교통신호로 도요타 레빈이나 닛산 페어레이디 같은 빠른 차와 나란히 서게 되면 우울했다. 제대로 출발에 승부를 걸면 쉽게 져버린다. 허영심이 강한 나는, 발로는 필사적으로 무겁고 무거운 클러치를 조작하면서 상반신은 태연하게 여유를 가진 척했다. 그 덕에 아주 연기력이 붙었다. 페라리라는 차는 보디도 예술품처럼 예쁘지만 엔진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늘나라의 음악처럼 감미롭다. 이런 차는 독을 가졌다. 요즘의 페라리는 예전처럼 차 주인을 고르는 일없이 방금 운전면허를 딴 소녀라도 몰고 다닐 수 있는 차로 변했지만, 갖고 있는 독은 변함없이 많은 사람을 중독시키고 있을 것이다”

어떤 차는 독을 가졌다. 맞는 말이다. 페라리는 그 대표주자다. 값이 비싸다고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자동차로 이방인들의 사랑을 받은 폭스바겐 비틀이나 2CV 미니같은 차를 극찬을 하고 나서 바로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이다. 도쿠다이지도 얼마 전까지 시트로엥의 2CV를 직접 몰고 다녔다. 폭스바겐 골프가 1970년대에 처음 나왔을 때 극찬을 했던 적도 있다.

마니아이며 역시 어쩔 수 없는 속물인 필자는 페라리를 몰 수는 없지만 그만큼 감성이 있는 차는 몰아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와중에 도쿠다이지의 주장은 불을 붙이는 셈이었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감성이 있는 차를 하나 골라보고 싶었는데 요즘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알파로메오다.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유지할 수 있는 차종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알파로메오다.

페라리를 창립한 엔초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의 일원이었다. 알파로메오는 페라리의 모태였다. 페라리의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알파를 모는 스포츠 팀이었다. 거의 수입되지 않은 와중에도 알파로메오 164는 정식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된 적이 있었고 아주 착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는 눈이 높지가 않았다. 감성적인 차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관심이 증가한 것은 자동차의 역사에 눈이 떠지면서 부터다. 그러나 늦게라도 필이 꽂히면 필자는 무슨 일이든지 한다(페라리의 V12만큼이나 유명하다고 하는 알파의 V6 엔진을 단 차를 구해서 타고 다닐 생각이다). 어느 정도 팩트를 알게되니 일본의 평론가가 하는 말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