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산악회, 작성산 산행을 다녀와서〈하〉
대한의사산악회, 작성산 산행을 다녀와서〈하〉
  • 의사신문
  • 승인 2013.06.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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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중랑·박상호소아청소년과의원>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현 전 서울시의사회장, 박정하 선생, 필자, 김세헌 선생.〈사진 우측부터〉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가파른 산행·거친 숨결…“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소뿔 바위에서 몇장 인증샷을 찍다보니 뒤이어 한그룹의 사람들이 몰려와 서둘러 방을 빼고 모처럼 능선길의 안락함을 맛본다. 발아래 능선길 양쪽으로는 보라색의 제비꽃 다발들과 샛노란 애기똥풀 같은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룬듯 함께 모여 다함께 자태를 뽐낸다.

혼자일때 보다 함께 할때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는 꽃들이 있다. 우리도 함께 할때 그 힘이 더욱 돋보이듯이….

멋지게 꼬인 소나무와 쭉쭉 뻗은 각선미를 보이는 잣나무들도 군락을 이루어 하늘을 가릴듯 하니 참으로 장관이다. 그러나 여유로운 능선길도 잠시, 눈앞에 가파른 경사길이 다시 나타난다. 다시금 거친 호흡과 함께 종아리 근육에 힘을 주며, 발동된 오기의 힘으로 한발짝 한발짝 힘들게 떼어 놓는다.

경사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손과 발이 네발이 되어 기어 오르기도 한다. 이젠 그만!이라는 휴식의 유혹이 막 손짓을 할때, 내 눈 앞에 70세는 족히 되어 보이시는 선배 두 분이 거침없이 오르신다.

와! 대단하시네. 갑자기 하체 근육들이 긴장을 하며 지친 내 몸을 다시금 매몰차게 몰아세운다. 그래도 싱그런 신록의 푸르름이 한껏 배인 한줄기 바람들이 산등성을 타고 올라와, 육체의 고통을 한결 덜어준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양희은의 한계령 노래가 떠오른다.

한줄기 바람처럼, 떠도는 바람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바람에 살랑이는 솔향기와 함께 뭔지 모를 아득한 그리움이 나풀대며 훌쩍 떠나는 일상의 일탈을 잠시 꿈꿔본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정말 힘겹게 올라서니 드디어 한숨 꺾인 능선이 문앞에 펼쳐진다. 좌측으로는 5월의 싱그런 녹음으로 가득찬 산아래 풍경과 함께 멀리 드넓은 청풍호가 내려다 보인다. 눈을 들어 좀 더 멀리 시선을 주니 파도처럼 굽이치는 산자락이 내 가슴으로 밀려 들어온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약 20여분 가다 보니 드넓은 능선길이 나타나고, 드디어 “작성산” 이라는 정상 표시석이 다소곳이 나를 맞이한다. 힘든 산행끝에 도달한 정상의 표지석 치고는 좀 보잘것 없어 보인다. 산행전에 누구에게 듣기로는 이곳을 지나면 진짜 표시석이 있다고 하여, 쉬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좀더 전진해 본다. 한 7∼8분을 더 가다보니 `까치산'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곳 표지석 역시 같은 규모로 아담하였으나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훨씬 멋지다.

세월을 꽤나 엮었을 법한 멋지게 굴곡을 이룬 한그루 소나무가 아주 일품이었고, 이미 산아래 동네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진달래가 농밀한 분홍을 뿜으며 흐드러지게 피었다. 불현듯 찾아온 친구마냥 반가움과 함께 공연한 연민의 정이 가슴에 번진다. 때늦게 만개한 진달래의 저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치열함 때문일까? 하루 이틀새에 터지려는 듯한 벙그러진 철쭉의 꽃망울은 진달래와는 또 다른 생명의 강건한 힘을 내뿜고 있다.

인증샷을 찍은후 다시금 발길을 돌려 일행들이 머물고 있을 작성산 표지석 쪽으로 되돌아 가니 박정하, 김세헌 선생님이 올라오신다.

“아니, 앞에서 계속 안보이시기에 어디 낭떠러지에라도 굴러 떨어지셨나 계속 좌우를 살피며 왔었는데, 벌써 올라오셨네. 힘 좋으셔.”

아니, 내가 산 아래로 냅다 나뒹굴길 기대하셨다는 말이여 뭐여?(물론 농담인줄 다 안다)

잠시 둘러앉아 과일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 옆 일행 중 한명이 향기로운 술 한잔을 권해 단숨에 원샷한다. “ 카∼, 식도부터 위까지 속이 싸르르 하네. 향이 아주 좋은 인삼주네!” “인삼주가 아니라 10년 묵은 산삼주입니다”

“그려? 그럼 한잔 더 따라보시게나!” 다시 한잔을 단숨에 들이킨다. 식도와 위를 휘돌아 가며 단숨에 소화기세포 속속들이 흡수되는 산삼주. 이 맛이 진정 정상주의 맛이고 느낌이리라. 두분 선생님은 이 즐거움을 단호히 마다 하신다. 나도 술 앞에서 언제나 저런 단호함을 과시 할 수 있을런지….

정상의 만개한 진달래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슬슬 일어나 하산 준비를 하니 급히 들이킨 산삼주의 효력이 전신의 실핏줄들을 팽팽히 잡아 댕긴다. 고통스런 등정이 끝나고 이제 좀 수월한 하산길만 남아 있다는 여유로움 때문인지, 앞서가는 김세헌 선생님의 콧노래에 뒤따라 가는 내 발걸음도 가볍게 들썩인다.

“참 사람이 간사해요. 아까는 그렇게 죽갔더니, 이젠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여유로움도 잠시. 하산길은 왜 이리 가파른지. 콧노래는 어느덧 사라지고 온 신경이 발바닥에 집중된다. 대개의 산행 사고는 하산길에 일어나니, 이런 힘든 하산길은 더 많은 집중력과 조심성이 필요하다. 육체적 고통보다는 긴장감으로 다시금 이마와 등뒤에서 땀이 흐른다.

1시간 20여분을 내려오니 고개의 모양새가 새의 목같이 생겼다는 새목재가 나오고 멀리서 들리던 맑은 개울물 소리가 점차 귓가에 크게 다가온다.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무암계곡.

활활 타오르는 발바닥을 식혀 줄 족탕을 위해 적절한 장소를 물색끝에 눈에 띄는 계곡 아래로 내려선다. 황급히 양말을 벗어 제치고 발을 담근 김세헌 선생님이 “아이고, 너무 차네. 10초도 못 담구겠네!” 한다.

난 농으로 그러는줄 알고 수정같은 계곡물에 풍덩 발을 담그었다. 농이 아니었다. 얼음물 그 자체였다!.

유리알 계곡물에 족욕을 하고 나니 말끔히 피로가 풀려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재잘대는 계곡물 소리와 숲속의 수런거림, 간간히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니 하산의 지루함을 잊게 해준다. 웅장하고 깊은 계곡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단아한 무암계곡의 정취가 사람의 마음을 더욱 편하게 여유롭게 만든다.

어느덧 남근석과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하산하면서 남근석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던 박정하 선생님의 제안이 떠올라 남근석쪽으로 방향을 틀자하니 김세헌 선생님이 지치셨는지 한사코 손사래를 쳐서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천년고찰 무암사 경내로 들어섰다. 다가오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경내에는 신도들의 염원이 담긴 형형색색의 연등들이 산바람에 살랑이는 풍경 또한 장관이다.

경내의 시원한 약수로 목이 축이고 절구경을 하니 천년고찰 치고는 그 규모가 작아 보였지만 호젓함과 아늑함이 오히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여행에 더 적절할 듯 하다.

무암사를 뒤로 하고 산행의 막바지 날머리로 향하니 산행초에 눈에 들어온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등정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맥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가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낸 차디찬 맥주 한캔 받아쥐고, 마시기 보다 단숨에 입에 주르르 흘려 보낸다. 정상에서의 짜릿한 산삼주와는 달리, 얼음 맥주는 지쳐 널브러진 몸안의 세포들 하나하나를 단숨에 깨워 세운다. 이 한잔의 맥주 맛이 산행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곧잘 우리는 찰나의 행복과 기쁨 때문에, 그간의 지난한 세월을 잊고 다시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성산, 아니 까치성산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나, 오늘의 그 숨가쁜 심신의 고통 기억은 곧 사라지고,오롯이 남아있을 즐거운 추억과 내 눈이 호사했던 풍광들만이 그리움으로 걸러져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남은 남근석 산행을 위해 다시금 까치성산을 밟도록 나를 채근할지도 모른다.

연어회를 닮은 송어회와 매운탕을 주 메뉴로 한 마지막 뒷풀이 행사는 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준다. 뒷풀이 사회를 보는 연재성 총무께서 임수흠 서울시의사회장님을 대신해 부회장인 내가 한마디 하란다..

“가파른 산행을 하시느라 그 얼마나 숨이 차셨습니까? Spero! Spera! 라는 건배 구호가 있지요?.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여러분의 그 깊고 거친 숨속에 큰 희망도 함께 짊어지고 내려오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 일상의 번잡함과 심드렁한 일상속에서 우리는 곧잘 숨을 쉬는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가파른 산행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숨결 속에 힘찬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금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산에 들어선다.

희망도 함께 짊어지고….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중랑·박상호소아청소년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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