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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 밥은 먹고 살겠지요? _박상호 부회장
[칼럼 5] 밥은 먹고 살겠지요? _박상호 부회장
  • 의사신문
  • 승인 2013.06.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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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모처럼 후배와의 안부 전화 끝에, “형, 그나저나 요즘 어때?”

“날씨가 더워지니 절간 모드에서 슬슬 암자 모드로 돌입하고 있다.”

“그렇지? 에고, 5월인데 이러니 7∼8월은 어떻게 버티지? 그래도 좌우지간 밥은 먹고 살겠지요?”

“그렇겠지, 밥은 먹고 살아야지!”

요즘 세상에 5천만 국민중 밥 못 먹고 사는 국민이 어디 있으랴마는, `밥이야 먹고 살겠지'라는 말 속엔 의사로서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하면서 산다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내포 되어 있을 것이다.

의사가 아닌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식사비 정도는 선뜻 낼 수 있고, 가끔 일식집이나 고깃집에서 대접할 분 대접도 하고, 애들 학비 정도는 대출 안받고 납부할 수 있고 무엇보다 구·시도 의사협회 회비 정도는 사무국 직원의 독촉 전에 미리 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최소한 의사들이 밥은 먹고 산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국민의 시각으로 볼 때, 요지부동의 부유층으로 인식되던 의사들의 경제적 지위는 점차 무너지고 있다.

각종 의료악법과 규제와 통제의 철폐도 시급한 현안이지만, 개원의 입장에서 볼때 날로 심각해지는 경영악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로 무엇보다도 당장 극복해야 할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가장 노릇 하기에도 급급한 현 경영상태와 명의가 되기 위한 노력보다는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에게서 경영 노하우를 배워야 함이 더 시급한 현실에서, 인술이네 의술이네 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행하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강압 분위기는 이젠 귓전을 스쳐가는 한낮 메아리에 불과 할 뿐이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예상했던 대로 개원의의 수입은 급감하면서 경제적 중간계층은 하위계층으로 급격히 추락해 가고 있고, 다만 상대적으로 일부 최상위 계층의 경제적 수입은 의약분업이전보다 훨씬 개선된 상황이다.

이러한 의사들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어, 동료회원들간 뿐만 아니라 과별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을 초래하였고 이는 회원결집의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양극화가 심화되면 계층간 이해관계의 간극은 더더욱 벌어지고 중구난방의 주장들이 쏟아져나와 일관된 정책수립에 혼란이 오고, 큰 틀에서 정의롭지 못한 조직사회이기에 이의 해결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집행부와 회원들간의 갈등 또한 점차 심화되어 불신감과 함께 무관심, 무력감등 냉소적 분위기만 점차 증대되고 있다.

또한 `의사'라는 직업과 `협회'에 대한 정체성과 가치관의 기준도 다양해져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차치하고라도 회원들의 뜻을 하나의 힘으로 응집하는데 이 또한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난국을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할 듯한 솔깃한 선거공약을 남발하며 당선이 된 역대 회장들 역시, 임기 말년에 이르러서는 회원들의 불신과 질타를 받으며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불명예를 안고 사라지곤 했다.

의협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각자도생 할 수 밖에 없다는 의식전환을 가져왔고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각과 개원의사회와 의원협회, 전의총 같은 임의 단체들이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는 회원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들 단체들마다 소속 회원들의 이익추구를 위해 각개전투식으로 정부나 정치권에 협상과 교섭을 하다보니 이들 단체간에, 혹은 소속 회원들간의 이해가 상충되어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의협의 위치와 지위는 점차 쪼그라들어 회원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다 보니, 의협의 정치세력화는 고사하고 정부와의 협상력 마저 상당히 위축되고 약화된 실정이다.

이런상황에서 어느 누가 회장을 맡더라도, 중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 의료환경을 단시간내에 시원스레 해결할 사람은 없다.

2000년 이후, 결실 없는 수회에 걸친 집회와 집단휴진은 학습화된 무력감으로 이어져 체념과 무관심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 향후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시기에 전회원들의 열렬한 공감을 얻어 힘을 결집시킬수 있는 리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한사람만의 강력한 리더쉽만으로 이 모든것을 해결하기엔 우리 의료환경과 시대적 상황이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는 현 의료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Key는, 그야말로 진부하고도 진부하지만 “회원 단합과 화합”이라는 아주 원론적인 화두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풀뿌리 조직인 반상회의 활성화를 기초로 단합과 공감의 지평을 넓혀갈때 만이, 비로소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지고 의료악법의 뿌리를 뽑을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수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뿐이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내뿜는 강력한 리더쉽이 아닌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파트너가 되어, 어깨동무로 나아갈때만이 이 형극의 의료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라 했다.

사람의 기반위에 조직이 있고 협회가 있으며 더불어 실질적인 힘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 의권투쟁시, 우리 민초들의 그 뜨거운 가슴과 열정과 참여의식이 다시금 절절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회비 납부운동부터 시작하자. 회비납부는 곧 조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은 곧 회원 상호간 소통의 불꽃을 틔워 들불처럼 공감대의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자발적인 회비 납부운동을 시작으로, 모두 함께 하는 강력한 파트너쉽으로 우리의 힘을 일으켜 세우자.

이것만이 우리가 지향하는 정의로운 의료환경 구축과 더불어 큰 틀의 개혁을 열고 들어가는 단초가 될 것이고, 또한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의사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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