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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산악회, 작성산 산행을 다녀와서〈상〉
대한의사산악회, 작성산 산행을 다녀와서〈상〉
  • 의사신문
  • 승인 2013.05.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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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중랑·박상호소아청소년과의원>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무암계곡의 수려한 풍광에 일상의 번잡함 씻어내

헉헉!, 헉헉!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힘찬 수증기마냥 연방 거친 숨이 옆에서, 앞뒤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작성산 산행은 이렇게 거친 호흡과 힘찬 심장 박동을 오랜만에 실감한 산이다.

숨이 목구멍까지 턱턱 차오르는 고통이 몰려 올때마다 주문처럼 되새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리곤 과거 이 보다 더한 고통이 따랐던 산행길을 떠올리며 고통을 삼킨다. 누구 말대로 만만한 산이 하나도 없는것 같다더니 이 만만치 않은 산이 바로 작성산이었다.

1년에 한번씩 전국 회원대상의 축제 한마당, 일명 대의산(대한의사산악회)산행. 올해는 제천의 작성산 산행이다. 산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 이지만 처음 들어본 산이름이다.

오전 7시 정시에 모이는 산행행사는 늘 일상의 리듬을 이탈한 시간이기에 충분한 수면을 이루기 쉽지 않다.

새벽 5시반에 기상하여 부지런히 준비하고 모임장소에 도착하여 배정된 차안에 들어서니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회원들로 한차를 이루었고 경기도 회원이신 김세헌 선생님도 우리 차에 배정 받으셨는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준다. 1년전 설악산 12선녀탕 산행 때도 같은 자리에 앉아 간적이 있어 새삼 더 반갑다.

7시 10분경 서울 압구정을 떠나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약 2시간여 만인 9시 20분경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가만보니 약 3주전 중랑구의사회에서 야유회를 간 충주 청풍명월 근처였다. 당시 벚꽃길이 터널을 이루어 다들 차에서 내려 하얀 꽃비를 맞으며 걸었던 생각이 난다.

김장겸 팀장님의 산행코스 설명을 듣고, 완주파, 정상포기파,식당근처파,청풍명월 원정파 등으로 각자의 체력에 맞게 A, B, C, D조로 나뉜다.

대열이 흩어지기 전에 구의사회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니, 충주에 계시는 권계랑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2000년 의권투쟁시절 부터 지금까지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늘 우리의 의권의식을 깨워 주시는 분이다. 어떻게 저런 자그만하고 소녀같은 이미지에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지 뵐때 마다 놀라울 뿐이다.

`의료와 사회포럼'의 회원 인연으로 알게된, 청주에서 올라오신 우리의 논객 안광무 선생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늘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로 나의 무지를 많이 깨우쳐주신 분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대의산 산행 행사에 자주 뵙던, 역시 2000년 투쟁원년의 열혈투사 박영환, 박봉래 선생님이 안뵈어 조금쯤은 섭섭하다.

KMA 플라자에서 서로의 논점 방향이 달라 치열한 공방을 한 사이라도 이곳에 모이면, 산이라는 넉넉한 품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의사로서의 동지애를 느낀다.

소통과 화합의 가장 최고의 선은 서로간의 눈맞춤이다. 대의산 산행행사는 이런 면에서 12만 회원들의 화합과 소통의 가장 실질적인 만남의 장소다.

이재일 대한의사산악회 회장님의 인사말을 위시한 간단한 식전 행사를 마치고 10시 10분경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쇠뿔바위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충청북도 단양의 적성면과 제천의 금성면에 걸쳐 있는 해발 848m의 산으로 아주 높지도, 그렇다고 또 아주 낮지도 않은 산행하기 제일 적절한 높이로,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천년고찰 무암사(霧巖寺)를 품고 있는 경관이 뛰어난 산이다.

무암사라는 한자를 보며 나름 해석해 본다. 안개와 바위가 많은 산일까? 물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그사이로 웅장한 바위들이 희끗희끗 보이고 무암사의 새벽 목탁소리가 산의 정적을 깨우는 낭만적인 새벽 산사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까치성산이라는 우리말이 있건만 일제시대 “까치 작(鵲)” 이라고 명명하면서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리운다고 하니 앞으론 한결 맛깔스런 느낌의 까치성산이라 불리우길 기대해 본다.

산 들머리부터 산길이 아닌 포장된 도로를 걸으며 도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수단이요, 길은 그 자체가 곧 삶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긴 호흡과 느긋한 걸음걸이가 필요한…. 언젠가는 이 포장 도로들도 다 제거되어 삶의 길로 거듭 났으면 한다.

약 30여분을 걷다 보니 한눈에도 꽤나 수령이 됨직한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타난다. 긴 세월 버거운 삶의 무게를 꿋꿋이 버텨온게 대견하여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자니, 유독 나뭇가지 한곳에 매화나 벚꽃을 닮은 하얀 꽃이 만발한 채 달려있다.

신기하다 싶어 유심히 살피자니 누군가가 조화를 매달아 놓은 것이라고, 해석에 정통하신 조해석 서의산 총무님의 설명이 더해진다. 순간, 수백년을 살아옴직한 늠름한 느티나무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산속으로 점점 들어서니 점입가경!, 무암계곡의 수려한 풍광과 함께 귓속을 간지럽히는 청라한 맑은 계곡물이 하얀 거품을 쏟아내며 재잘거리다 힘차게 휘돌아 치곤, 호흡을 고르는 양 유리알 처럼 빛나는 잔잔함 속에 늦봄의 향취를 한껏 머금고 있다. 마침 며칠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수량이 아주 풍부하니 계곡물 소리도 거침이 없다.

입을 대고 그대로 마시고 싶은 맑은 계곡물 소리가, 소음에 찌들고 일상의 번잡함에 오염된 내 귀와 눈을 씻어주고 가슴속내 까지 말끔히 씻어 내 준다. 그러길래 늘 자연과 접하며 사는 사람들의 해말간 얼굴색은 다 이유가 있는것 같다.

이미 작성산은 화사한 봄의 기척을 멀찌감치 밀어내고 초여름 연록의 풍성함을 뿜어내고 있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산 중간에 거의 직벽으로 시원스레 치마자락 처럼 펼쳐진 암벽이 눈에 들어온다. 암벽 훈련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나의 불룩 나온 배같이 생겨서 배바위인가 했더니, 멀리서 바라보았을때 나룻배 형상이라 그리 불렸다 한다.

운치있어 보이는 천년고찰 무암사는 하산길에 들르기로 하고 이곳을 조금 지나니 새목재로 가는 길과 쇠뿔바위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어차피 위에서 만난다며 원래의 코스와 반대로 가시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숲 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는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래서 모든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 했지만, 함께 일행을 이룬 우리 셋은 주최측에서 시킨대로 얌전∼히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좀 올라가다 보니 직사각형의 부도와 사리탑이 보이는데, 무암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를 도와 목재와 기와 등을 운반하던 소가 죽어 화장을 하자 사리가 나왔다 하여, 이를 기리고자 사리탑을 지었다 한다. 동물의 사리탑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소도 평생 도를 추구하며 살았거늘 난 하루도 욕심과 집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이곳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가파른 산 오름이 시작된다.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며 그 기세의 끈을 4월 중순까지 놓지 않다가 이제사 숲속에 봄내음이 스미며 그 화려함과 화사함을 내비치려는 순간, 초여름의 기세가 냉큼 다가와 이곳 숲속을 차지 하고 앉았다.

이마서 부터 흐르는 땀이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에서 줄줄 흐른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 가던 박정하, 김세헌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거친 호흡음이 내 귀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점점 경사의 각도가 내 코앞으로 가까와 질수록 내뿜는 호흡음도 점차 거칠어진다. 터질 듯한 심장,곧 멎을 듯한 숨소리. 살아 있음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더 이상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시점에, 눈앞에 두개의 멋진 뿔을 가진 바위가 나타나며 조금은 평탄한 능선길이 펼쳐진다. 소뿔 바위! 정말 소뿔 같이 생겼네!

소뿔바위 뒤로는 낭떠러지인지 그 아래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바위로 오르는 사다리 형상의 소나무가 옆에 있고 밧줄도 매달려 있어 이를 이용하여 단숨에 바위에 올랐다. 갑자기 탁 트인 시야에 싱그런 녹음이 내려다 보이고 능선을 타고 올라온 한줄기 바람이 거친 호흡과 헐떡이는 심장을 다독인다.

곧 뒤따라온 박정하 선생님께 사진 한컷 부탁하고 김세헌 선생님도 올라오라 권한다.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으니 빨리 찍어주세요!” 없는 사람 있남? 뒤를 보니 무섭긴 무섭다.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중랑·박상호소아청소년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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