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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간이식 수술의 선도자 - 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대한민국 간이식 수술의 선도자 - 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 김기원 기자
  • 승인 2013.05.13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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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겸 서울대병원 외과과장
“생체간이식 전수 일본의사들, 이젠 배우러 와 `격세지감' 느껴”

1988년 3월 서울대병원 외과 김수태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14세 여아 환자에게 간이식을 성공적으로 시행한지 25년이 지났다.

이후 우리나라의 간이식 수술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했으며 현재 세계 간이식계를 선도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이식의 아버지'로 불리던 김수태 교수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겸 서울대병원 외과과장은 간이식 수술의 선도자로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 주임교수에게 `간이식 현황과 전망' 그리고 `향후 계획'을 들어보았다.

-간이식 성공 25주년의 의미라면?

“간이식은 미국에서 1963년 첫 번째로 실시됐다. 엄밀히 말하면 올해 50주년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이니까 25년 됐다. 장기이식을 잘하면 오래 살수 있다는 것과 김수태 선생님이 정년하신 지 오래돼 30주년에 앞서 지난 3월15일 `국내 간이식 성공 25주년 기념식 및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다.”

-초창기 국내 간이식 상황은 어땠나?

“그때만 해도 뇌사자 간을 받아야 하는 간이식은 법적으로 해결이 안된 시절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하지말라고 제지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딛고 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김수태 선생님을 고소 안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없이 간이식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구체적인 수술상황이라면?

“그때는 사느냐 죽느냐가 관건이었다. 생사가 반반이었다. 수술 중 하도 피가 나 수혈하다가 피가 부족,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요새는 그러면 큰일난다.”

-그후 간이식 발전과정은?

“1999년부터 생체 간이식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성적이 매우 좋아졌다. 미국이 간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데 미국의사도 와서 배우고 간다.

우리나라 의사들 대부분은 일본에서 생체 간이식을 배웠다. 지금은 거꾸로 일본 스탭이 와 배워간다. 격세지감이다.”

-국내 병원별 간이식은 상황은?

“케이스는 병원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병원이 워낙 크고 환자가 많아 제일 많은 300개 넘게 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해 180개 정도했다. 간이식 초반에는 수자로 경쟁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서경석 주임교수: “그동안 생체 간이식은 `아트'의 영역이었지만 이젠 누구나 할 수 있는 `프랙티스'로 바뀔 때 수술 표준화 마련 준비”
1988년 국내 간이식 첫 시행…이제 세계 최고 위치 올라
이식 성공 숫자 경쟁 넘어 표준화·협진 시스템 구축할 때


-일상은 어떤가?

“일주일에 3번 수술한다. 하루는 외래고 수요일은 리서치 데이다. 오늘처럼 복강경을 쓰는 날이면 정신이 없고 신경이 많이 쓰여 예민해 진다.”

-향후 계획은?

“표준화다. 예전에 생체간이식은 아트라고 생각했다. 아트는 누구만 할 수 있고 누구는 할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제 그것을 프랙티스로 바꾸어야한다. 어느 정도 트레이닝 받고 원칙만 지키면 즉, 1∼2년 트레이닝 열심히 하면 그만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의 표준화가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이란 것도 딱 분업으로 해서 조립돼서 나오게 루틴화가 되야 한다. 너무 어렵거나 하는 것은 수술에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수술은 오래가지도 못한다.”

-국내 간이식 병원 분포는?

“큰 병원은 물론 작은 병원들까지 간이식을 다하고 있다. 간이식에서 중요한 것은, 신장과 콩팥 등 수술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마취가 중요하다. 특히 문제가 생길 때 내과의 서포트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수술을 혼자했지만 지금은 분야별로 서포트하고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생체 간이식을 못한다. 간이식을 했던 사람일지라도 생체간이식을 하려면 적어도 10개 이상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배우러 온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기준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서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미국에서 간이식을 배울 때의 서러움을 진하게(?) 들려주었다.

“미국에 가서 서러움 속에 간이식을 배웠다. 당시 연수는 한번 보여주면 끝이었다. 카메라도 없던 상태여서 일단 숙소로 내려오면 다시 못 올라 갔다. 그래서 12시간 동안 안내려오고 현장에서 머문적도 있었다. 그때는 밤도 새워야 되고 참 서러웠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그러나 “외과의사들 중에는 성취감으로 인해 고생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며 “아직은 외과의사를 그런 사람들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고생을 작정한 사람만이 할 수가 있다.”며 `외과의사'로서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김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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