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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랑 담는 사람들, 2013년도 필리핀 Cebu 봉사 후기
(사)사랑 담는 사람들, 2013년도 필리핀 Cebu 봉사 후기
  • 의사신문
  • 승인 2013.05.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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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일 <강남·밝은 안과 원장, 수필가>

이무일 강남·밝은 안과 원장 수필가
희망을 꿈꾸는 `맑고 선한 눈망울들' 가슴 속에 새겨

봉사단을 환영하는 우레와 같은 박수속에서 `박수 칠 때 떠나라' 라는 말이 생각났다. 2013년 4월 17일부터 21일까지 4박5일의 짧은 봉사를 필리핀 세부로 다녀왔다. (사)사랑 담는 사람들과 함께 국내외 봉사 나눔을 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단원들 사이의 신뢰와 끈끈한 정은, 향이 짙고 감칠 맛이 나는 오래된 장맛과 같이 내면의 교감이 켜켜이 쌓여 변함이 없다.

4월 17일 수요일, 늦은 저녁 꽃샘추위 속에 냉기를 느끼며 비행기에 몸을 실어 4시간 20분만에 어두침침하고 후덥지근한 세브공항에 도착했다. 간단한 검색, 검역을 마친 후 공항에서 50분 거리에 위치한 마리아 소년, 소녀스쿨 과 기숙사 및 병원이 함께 위치한 곳에 여장을 풀었다.

평상시 환자의 입원실로 이용되는 병실을 숙소로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오전 7시에 모닝콜을 부탁하고 베개에 머리를 묻고 코골이로 첫날을 맞이했다. 이튿 날 아침 눈부신 햇살과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으로 눈을 떴다.

창문에 밤새 어두움으로 보지 못했던 이국적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담장을 따라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고 사이사이에 망고 나무도 보였다. 10여 미터의 높이에 덩그마니 매달려 있는 코코넛 열매들은 한 폭의 그림 이었다.

조식은 필리핀 식단으로 차려졌는데 개개인의 접시가 이름 모를 야생화로 곱게 꾸며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단원 김민수님의 재치 있는 배려였다. 꽃의 향기와 조화로움이 분위기를 한결 고조시켜 단원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 식사 후 진료실 배정과 현수막 설치, 접수실, 약국 등을 배치하고 난 후 마리 수녀의 메모리얼 홀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진료를 시작했다.

안과 진료실에는 미세현미경과 자동굴절 검안기 및 일반 진료에 필요한 약간의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에 우리가 준비해간 안약과 돋보기 및 눈물량을 측정하는 의료 기기들을 함께 배치하여 일반진료를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진료실 앞 복도에 남 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각과 진료를 받기위해 일렬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은 초등학생 정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 비하여 성장 발육이 현저히 늦어보였다. 160cm∼170cm의 훤칠한 키를 가진 학생이나 비만 학생, 게임기 또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학생, 안경을 쓴 학생, 사춘기에서 볼 수 있는 제2차 성징의 모습을 가진 학생은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국민의 DNA 인자가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인가 아니면 영양 상태로 인하여 성장판이 발달 하지 못하여 그런가 아니면 환경과 의식주가 주된 문제 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였다. 몸은 왜소하고 피부는 까칠하며 까무잡잡한 얼굴에 무표정한 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애처로웠지만 눈망울만은 초롱초롱하게 맑은 눈빛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항의 열악한 환경에서 느껴지듯이 나라 전체가 깊은 침체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출구 없는 방'이라는 샤르트르의 희곡이 떠올랐다. `출구 없는 방'은 아랍사람들 에게는 지옥을 뜻 한다. 그곳은 영원히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며 지내야 하는 곳이기에 아랍사람들이 믿는 지옥인 셈이다. `출구 없는 방'을 생각하는 것만 으로도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답답해지며 인생의 의미가 없어지기에 무척 고통스럽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이 나오듯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일하고 남에게 베풀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라디오를 만들만한 실력이 되었을 때 필리핀은 이미 흑백TV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후 5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경제의 침체는 침체를 낳아 필리핀 사회 전반이 `출구없는 방'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과도한 연민일까? 20여 년 전(1991년) 필리핀 마닐라 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번 봉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더더욱 남다르게 느껴졌다.

진료는 필리핀 따갈로그(Tagalog)어가 섞인 낯선 영어와 나의 짧은 영어탓에 충분한 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미소와 친절로 까다로운 검안진료도 원만히 할 수 있었다. 사업가 홍모니카님과 화가 김은경님이 안과 보조로 수고를 해주었는데 손발이 척척 잘맞아 수많은 진료와 검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안과를 개원하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금요일 오후 진료를 끝으로 Talisay 걸스타운 학교를 방문 하였다.학생들은 우리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과 사랑이 담긴 조개껍질 목걸이와 환영의 문구가 쓰여 진 카드를 건네주었다. 교정에서 강당 5층으로 가는 계단마다 이 학교 졸업반인 여학생 전원이 양쪽으로 서서 괴성에 가까운 환호와 박수갈채로 환영해 주었다. 덕분에 봉사하러 온 우리들은 엔도르핀으로 충만되어 아름답고 행복한 밤을 보내었다.

약 1시간 반 동안 100여명으로 짜여진 남·여 학생들의 필리핀 민속춤과 민속악기 연주, 비보이춤, 팬터마임 등 그동안 그들이 갈고닦은 연기를 유감없이 맘껏 보여주었다.

마지막 날도 오후 2시까지 진료를 하고 남은 의약품과 정성스레 모은 후원금을 전달한 후 내년을 기약하며 수녀님들과 학생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출국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임페리얼 팔레스 호텔에 연한 세브 해안가를 구경 하고 그곳 현지 식으로 식사를 한 후 공항으로 이동 하였다.

서울에 돌아와 다른 진료과의 얘기를 들으니 열악한 주거 환경을 엿볼수 있는 웃지못할 얘기들이 더러 있었다. 치과에서 발치 치료 후 그들의 치아를 모두 빼서 의사들이 갖고 갔다고 했다거나, 아이들이 샤워기를 보고 벽에서도 물이 나온다고 놀라워 했다고 한다.

성형외과는 집단 공동생활을 하기 어려운 심한 액취증 환자를 선별하여 3일 진료 일정 중 9명이나 현지에서 수술을 해주는 미덕을 보여 주었다. 한의과에서는 또한 금남의 상징인 수녀님들의 감춰진 자태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육신의 고행을 실천하는 일로 인한 근육통 및 신경통을 앓고 있는 많은 수녀님들에게 침술과 뜸으로 치료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모습을 영상에 담아야 하는데 수녀님의 진료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수 없어 애꿎은 학생을 모델로 침을 맞는 장면을 찍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또한 안과에서는 시력이 안 좋은 150명의 학생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정밀 시력검안을 실시하였다. 놀랍게도 정밀시력 검사를 이제껏 받아본 학생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특히, 양안 나안시력이 0.05밖에 안 되는 학생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같은 시력 교정 없이 이제껏 학교생활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담사에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정밀 검안하였던 처방 일체를 한국에 가져와 정밀 분석하여 학생모두에게 안경을 제작 의뢰하여 소포로 붙여주기로 의견 일치를 보아 한결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꽃샘 추위속에도 꽃은 피어 만발하더니 어느새 지고 있다. 지난 저녁 촉촉이 내린 비로 꽃비가 보도블록에 내려 앉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잠시 사색에 젖게 한다.

또 다시 꽃비를 보려면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봉사에서 만났던 맑고 선한 눈망울들을 다시 보는데 그것은 긴 시간이 아니다. 출구가 있는 나의 진료실은 그 시간을 기다리는 대합실이 될 것이다.

박수갈채가 없어도 봉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를 맞이하던 환영의 함성이 없어도 봉사는 나의 삶을 신명나게 하고 윤택하게 한다.

더욱이 지속적으로 자기 일을 하며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베풂의 미학은 봉사의 참 의미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이무일 <강남·밝은 안과 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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