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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묵주 소나타〉
비버〈묵주 소나타〉
  • 의사신문
  • 승인 2013.04.2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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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17〉

탁월한 실력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혹은 개성이 넘치는 작곡가로 17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바로크 음악가 하인리히 비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670년대부터 그가 잘츠부르크에 거주하기 시작한 1680년대 중반까지 쓰인 이 작품은 뮌헨 바바리안 주립도서관에서 타이틀 겉표지가 사라진 채 사본이 발견되었는데〈묵주 소나타〉,〈미스터리 소나타〉로 불리며 가톨릭교회 묵주 봉헌의식을 위해 작곡되었다.

묵주, 즉 Rosario는 `장미의 화관'을 뜻하는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에 얽힌 기쁨, 고통, 영광을 나타내는 미스터리 행적을 관조하는 명상 기도에 사용되었다. 13세기 성인 도미니크에 의해 시작된 묵주 명상기도는 주기도문 1회, 천사 축사 10회, 영창 1회를 하나의 연으로 모두 15연이 되풀이된다.

비버는 기악과 성악부분에서 그리고 세속 및 종교 분야에서 모두 고르게 작품을 남기고 있다. 17세기 오스트리아에서 기교적으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였을 뿐 아니라 당시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연주기법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비버가 바이올린 연주 양식을 한 단계 발전시킨 시대를 앞서간 음악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바로크시대 음악가 가운데 비버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도 드물다.

체코 서부 보헤미아에서 산림감독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의 기록은 없고 1660년대 중반 이후의 기록만 남아 있다. 그는 바흐보다도 한 세대 전 인물이며 나중에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지만 본래 근거지는 동유럽의 모라비아 지방이다. 고전 음악의 중심지인 중서부 유럽 출신들과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당대 칼 리히텐슈타인 카스델콘 대주교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약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당시 법으로는 대주교의 허락 없이 영지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비버는 악기 제작자인 타일러 자콥 스타이너와 함께 영지를 떠나 잠적한다. 이에 체포령이 내렸고 현상금까지 붙게 되었다.

그 후 1670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궁정에서 하위직 자리를 얻은 그는 2년 뒤 결혼하면서 음악가로서 고위직인 음악감독과 궁정음악가로서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에서 대부분의 일생을 보낸다. 그 외 뮌헨의 바바리안 궁정에 2회 방문한 기록과 당시 신성로마제국인 비엔나에도 방문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비버의 바이올린 작품은 바이올린 음악에 다성적 양식을 도입한 독일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의 거장인 그의 스승 하인리히 슈멜처의 작품을 기초로 하여 그 특유의 세련되고 화려하면서 풍부한 음색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인 이〈묵주 소나타〉는 묵주의 성모마리아의 신비한 행적을 묘사한 음악으로서 다분히 표제적인 구성과 바이올린 현의 조율을 변경하여 연주하는 스코르다투라(Scordatura)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작품이다. 여기에 붙어 있는 소나타라는 이름은 성악곡 칸타타에 대립하는 기악곡을 총칭하는 의미에 불과하고 고전파시대 이후 음악적 형식으로서의 소나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작품은 수태고지에서 승천까지 성모 마리아 일생 중 주요한 15개의 사건을 담고 있으면서 묵주 명상을 위한 15개의 소나타로 구성되었다. 각 5곡씩 모두 3부로 나뉘는데 제1부 기쁨의 신비, 제2부 슬픔의 신비, 제3부 영광의 신비로 명명되어 있다. 물론 각 부분에 속한 곡들에도 각각 성서적 제목이 붙어있고 비발디 음악에서 연상되는 반복적인 패턴과는 달리 매우 드라마틱하고 다성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15개의 소나타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곡이 파사칼리아이다. 바이올린 독주로만 펼쳐지는 파사칼리아는 바이올린의 음악성과 기교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곡마다 섬세한 해석을 요구하는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묵상을 돕는 명상 음악으로서의 깊이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비버 음악의 권위자인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존 홀로웨이는 “비버 음악은 `음악적 해석과 영적 공감'의 두 차원을 강력한 집중력으로 합일시킨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들을만한 음반: 에두에르트 멜쿠스(바이올린), 휴고에트 드레퓌스(쳄발로)[Archiv, 1967]; 앤드류 맨츠(바이올린), 라차드 에가(쳄발로)[Harmonia mundi, 1994]; 존 홀로웨이(바이올린), 다비트 모로니(쳄발로)[Virgin, 1990]; 라인하르트 괴벨(바이올린)[Archiv, 198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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