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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메시앙〈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올리비에 메시앙〈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 의사신문
  • 승인 2013.04.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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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14〉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메시앙은 병역에 징집되었으나 시력이 나빠 위생병으로 복무하였다. 낭시로 행군하던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된 메시앙은 괴를리츠 포로수용소로 후송되어 1941년 봄까지 억류되어 있었다.

그 수용소의 잔학함과 공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메시앙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수용소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와 클라리넷 주자, 첼리스트를 위해 짧은 삼중주를 쓴 것이었다.

이들은 이 곡을 세면장에서 연주했다. 수용소 측에서는 건반이 박혀 올라오지 않는 피아노와 줄이 세 개뿐인 첼로를 내줄 뿐이었다. 그 후 메시앙은 이들 세 음악가와 자신을 위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작곡하였고 이전의 삼중주는 이 곡의 제4악장이 되었다.

이 사중주의 초연은 1941년 1월 괴를리츠 근처 스탈라그 수용소에서 5000명의 청중이 영하 30도의 날씨 속에서 운집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훗날 메시앙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 누구도 내 작품에 대해 그들처럼 많은 주의력과 이해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메시앙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라는 제목이 자신의 감금 생활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악보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넣었다.

`나는 힘센 천사 하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구름에 싸여 있었고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었으며, 얼굴은 태양과 같았고 발은 불기둥과 같았다. 그는 오른발로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뎠다. 이처럼 바다와 땅 위에 선 채로 그는 손을 하늘로 쳐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여 가로되 “더 이상 시간이 남지 않았도다.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바로 그 날에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되리라.”'

요한 계시록 10장을 인용하면서 천사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이와 같은 제목을 붙였다. 평론가 제인 비알 자페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실내악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추운 겨울날 스탈라그에 수감되어 있던 포로들처럼 말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사중주는 여덟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다. 안식의 분위기를 지닌 제7악장은 영원처럼 지속되며 제8악장에 이르러 무궁한 빛과 불변의 평화로 변한다. 이 사중주의 각 악장 사이에는 흥미로운 연관성이 존재한다. 서주를 알리는 제1악장과 종말을 고하는 천사를 위한 제2악장과 제7악장은 주제 면에서 관련이 있으며, 무한 심연의 제3악장과 완전한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제6악장은 둘 다 클라리넷에 의해 진행되는 단일 성부로 이루어진 곡으로 흥겨운 제4악장과도 주제가 연계된다.

예수의 불멸을 상징하는 제5악장과 제8악장은 느린 템포, 조성, 피아노가 반주하는 독주 현악기, 신학적인 설명 등의 요소를 공유한다. 여덟 악장 내내 메시앙만의 종교적 색채가 천상으로 이끌어 가듯 음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제1악장 수정의 예배 당신은 이제 하늘의 조화로운 고요함을 듣게 된다. △제2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보컬리제 무지개를 이고 구름을 둘렀으며 한 발은 바다에 또 한 발은 땅에 걸치고 선 힘센 천사의 힘을 일깨워준다. △제3악장 새들의 심연 클라리넷 독주 악장이다. 새들은 시간의 반대편에 있다. 그들은 빛과 별, 무지개 그리고 기쁨에 찬 노래를 갈구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제4악장 간주곡 개방적인 분위기이지만 다양한 선율 인용에 의해 다른 악장들과 연계되고 있다. △제5악장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양 첼로가 연주하는 길고 한량없이 느린 악구에는 사랑과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예수의 말씀에 대한 숭배가 담겨 있다. 선율 자체는 친숙함과 외경심 모두에 거리를 둔 채 장엄하게 펼쳐진다. △제6악장 일곱 대의 트럼펫을 위한 광란의 춤 리듬 면에서 가장 특이한 악장이다. △제7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 무리 제2악장에 나왔던 악구 일부가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강력한 천사가 그를 에워싼 무지개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 △제8악장 예수의 불멸성에 대한 찬양 인간으로서의 예수에게 확실하게 말을 건다. 완벽한 사랑으로 충만한 악장이다.

■들을만한 음반: 루돌프 제르킨(피아노), 이다 카바피안(비올라), 프레드 쉐리(바이올린), 리차드 스톨츠만(클라리넷)[RCA, 1975]; 다니엘 바렌보임(피아노), 루벤 요르다노프(바이올린), 알베르트 테라시(비올라), 클로드 드쉬몽(첼로)[DG, 1978]; 미셀 베로프(피아노), 에리히 그룬베르그(바이올린), 윌리엄 프리드(비올라), 제르바스 드 페이에(첼로)[EMI, 1966]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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