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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요법을 도입한 - 김병수
항암요법을 도입한 - 김병수
  • 의사신문
  • 승인 2013.03.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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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요법 도입 등 암치료 연구 활성 중추적 역할

김병수(金秉洙)
김병수(金秉洙)는 1936년에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의 배재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61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 의과대학의 The Michael Reese Hospital Medical Center에서 인턴을 수료하고, 1966년부터 3년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Cook County Hospital에서 레지던트를 수료하였다.

당시 종양학은 크게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으나, 선생은 종양학 분야가 미래에는 경이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 예견하고 1968년부터 미국 하버드의과대학의 Dana-Farber Cancer Center Institute, Boston Children's Hospital Medical Center에서 종양학 fellow를 수료하며 암전문가로 수련을 받아 미국 소아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고, 당시 지도교수였고 근대 종양학 학문의 토대를 이룩한 Sidney Farber의 권유로 1970년부터 미국 하버드의과대학 전임강사로 근무하면서 종양학 발전에 참여하였다.

1960년대 말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으로는 암 치료를 위한 방사선 최신 장비 등의 도입은 불가능한 실정이었으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연세암센터가 당시로는 유일하게 최신 장비를 구비하여 1969년부터 운영되어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었다. 연세암센터 내에 장비 운영의 전문가와 특히 새로 개발된 항암제를 이용한 암 환자 치료가 절실히 요구되었는데, 이에 선생은 종양 분야의 항암제 치료 개척자로서 학문을 전달하고 후학을 교육하고자 1974년 귀국하여 교수직을 맡게 되어 한국 종양학 발전과 암 환자 치료에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보건 문제는 암 질환이 되어 이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강화군에서 국내 최초로 실시한 암 발생률을 역학자와 공동으로 조사하여 인구수에 기인한 암등록사업(Cancer Registry Program)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형 암등록사업을 시작하였고, 1983년 등록결과를 해외 유수 잡지에 발표하였다.

선생은 특히 1970년대 우리나라 암 환자 치료가 외과적 수술에만 의존하였으며, 수술 후 암의 재발을 방지하는 항암제 요법이 전무하였고, 특히 수술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백혈병, 악성 림프종, 전이가 되어 있는 암은 치료를 하지 못하였던 시절에 각 임상과 기초 영역 학자까지 함께 팀을 이루어 진료하는 협동진료체제(multi-disciplinary approach in cancer management)를 수립하고 각 대학병원에 강연과 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체제를 보급하여 이제는 선진국과 동일한 암 치유 성적을 발표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선생은 우리나라 암 치료와 연구 활성화를 위하여 각 대학 암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종양 학자와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함을 깨닫고 대한암학회 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독지가의 후원으로 국제학술대회, 우리나라에 많은 위암에 대한 공동연구제도, 세계 최고 학자들과 학문교류 등에 힘써 대한암학회 부회장, 회장, 이사장과 대한암협회 이사장,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더 나아가 종양학과 기초 학문에 연계와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국과학단체의 총본산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회장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학 행정에도 탁월한 능력이 인정되어 1996년 연세대학교 총장, 2002년 CHA의과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비정부조직(NGO)인 글로벌 케어(Global Care)의 이사장과 5대에 걸친 KBS 해외동포상 심사위원장 및 한국의학회, WHO, 통계청, 보사부, 성곡학술문화재단,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등 다방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의 암 치료기술은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되나 암의 발병기전과 연관된 분자생물학적 연구는 취약하여 이에 암의 전이과정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여 1980년대부터 해태그룹 회장 박건배 등의 독지가의 후원을 얻어 연세암센터 내에 암연구소를 1990년에 개소하였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과 교수들의 노력으로 세계와 경쟁하는 암 유전체 연구, 암 유전자 치료연구, 암 전이연구, 중개연구로 암 진단 칩(chip) 연구개발, RNA interference 연구로 치료약 개발 등 매해 연구비가 50억원에 이르는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선생은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업적과 공헌으로 1999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2001년에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학생들로부터 교육, 연구 분야로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교수로 최다 투표를 얻고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었다. 후학을 위하는 마음이 남다르고 모교에 대한 사랑이 투철하여 학교 및 세브란스병원 발전을 위하여 거액의 기부금을 마련하였으며, 또한 많은 기금을 마련하여 암 관련 기초분야 최우수 연구자에게 `박병규·김병수 기념 암연구상'을 매해 시상하고 있으며, 암 임상 연구 분야에 세계적 업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김명선·차경섭·김인수 암연구상'을 제도화시켜 매해 시상토록 하였다.

아들 김용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1998년 졸업)가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하여 모교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집필 : 유철주(연세의대 소아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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