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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
올리비에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
  • 의사신문
  • 승인 2013.03.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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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13〉

스무 개의 시선, 무엇보다도 그것은 충만함이다. 의미와 신성의 충만, 그리고 음악의 충만함이다. 아버지의 시선, 별들의 시선, 동정녀 마리아의 시선, 자기 자신의 육화를 바라보는 성자의 시선, 천사와 십자가와 사랑의 교회와 시간과 천공과 기쁨의 정령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표현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함께 구유 속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광경을 메시앙은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기보다는 이들이 음악으로 다가와 그 속에 스며들 수 있음을 메시앙 특유의 즉물적인 면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표현하고자 이 `현대의 난해한 캐럴'을 작곡하였다.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은 그의 가톨릭적인 파토스가 보다 심화되는 동시에 그의 음악이 기법과 양식상으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던 때인 1944년 무렵에 완성되었다. 첫 번째 곡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에게 나의 모든 사랑을 주었노라”는 성부의 따사로운 자애와 부정을 신비스러우면서도 내적인 윤택함을 담아서 그려낸 것으로서 아버지의 시선을 비롯해 각각의 시선에 해당하는 스무 곡이 차례로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각의 단편은 그 성격이나 작곡 수법이 판이한 경우가 많아 음악적으로는 그다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다.
특히 아홉 번째 곡 `시간의 눈길'은 이탈리아의 형이상학적인 화가 지오르다노 데 키리코가 그린 `예언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시간이 신비 속에서 영원한 존재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짧고 야릇한 분위기의 음악은 메시앙이 키리코의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작품세계에 경도되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1908년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1세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오르간연주자 마르셀 뒤프레와 작곡가 폴 뒤카스에게 음악을 배웠다. 음악원에서 17세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동서양의 리듬, 새소리, 미분음 음악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연구했으며, 졸업 후 파리 트리니테 성당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다. 1936년 작곡가 앙드레 졸리베, 다니엘 레주르, 이브 보드리에르와 함께 `젊은 프랑스(La Jeune France)'를 창설해 새로운 프랑스 음악을 추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전쟁에 참전했고, 포로가 되어 괴를리츠수용소에 수용되고 그 안에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작곡하여 수용소 안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1942년 트리니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와 파리음악원 교수로 복직하였고, 그의 제자 중에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피에르 불레즈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은 “나는 잠든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깨어있다.”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메시앙은 단순히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그 특유의 독특한 불협화음에 희랍과 힌두 언어의 리듬, 그레고리안 성가, 모차르트, 드뷔시 등의 모든 음악 언어들을 최대한 활용해 곡 전체를 입체적으로 그리면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이 곡에서 메시앙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하느님의 사랑'인데 하느님의 사랑은 곧 `기쁨이고, 그 기쁨이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그런 것으로 특히 제3곡 `교역'과 제6곡 `모든 것은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그 힘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1곡 하나님 아버지의 눈길. △제2곡 별의 눈길. △제3곡 교역(하나님과 사람의 변신). △제4곡 성모의 눈길. △제5곡 아들에게서 아들을 보는 눈길. △제6곡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7곡 십자가의 눈길. △제8곡 높은 하늘의 눈길. △제9곡 시간의 눈길. △제10곡 기쁨의 성령의 눈길. △제11곡 성모의 첫 영성체. △제12곡 전능하신 말씀. △제13곡 노엘. △제14곡 천사들의 눈길 △제15곡 아기 예수의 입맞춤. △제16곡 예언자와 양치기와 동방박사 세 사람의 눈길. △제17곡 침묵의 눈길 △제18곡 무서운 도유식의 눈길. △제19곡 나는 잠들어 있지만 마음은 깨어있다. △제20곡 사랑의 교회의 눈길.

■들을만한 음반: 이본느 로리오(피아노)[Erato, 1995]; 스티븐 오스본(피아노)[Hyperion, 2004]; 미셀 베로프(피아노)[EMI, 196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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