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신경학을 독립시킨 - 명호진
우리나라에서 신경학을 독립시킨 - 명호진
  • 의사신문
  • 승인 2013.03.18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질 진료 선진화 및 신경학 독립 · 국제화 주도

명호진(明好鎭)
유당(流堂) 명호진(明好鎭)은 국내 의학계의 태두인 명주완의 장남으로 193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하여 1958년에 서울의대를 졸업하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마친 후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전공의 수련 과정을 시작하였으며, 수련 과정 중인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미국 미네소타의과대학 신경과에 유학하여 지도교수 베이커(Baker)의 지도하에 당시에는 신학문인 신경학, 간질학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수학하였다. 특히 선생은 미네소타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신경학에 관련된 제반 기초 학문을 수학하였으며, 동시에 미네소타 부속병원에서는 신경병리학, 간질의 진단과 치료, 뇌파검사 등 최신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였다. 또한 선생은 사진 촬영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선생은 1962년에 귀국하여 1965년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신경정신과교실에서 조교로 일하였다. 1960년대 초 당시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던 국내 신경학의 초석으로서 선생은 의료계에 신선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귀국과 동시에 간질의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첨단 검사법인 뇌파기를 간질 환자에 응용함으로써 간질분야 진료 수준을 한 차원 높일 수 있었다. 당시 선생이 발표한 `행동이상아(行動異常兒)의 뇌파'(최신의학, 1961), `경대리증이상아(痙代理症異常兒)의 뇌파소견'(신경정신의학, 1963)은 간질의 진단에 첨단 검사법을 응용한 획기적인 논문이었다. 선생은 간질 환자에서는 정신분열증이 매우 드물다는 점을 관찰하였고,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약물저항성 환자들 치료에 전기충격요법(EST)을 적용하여 정신분열증, 조울증 환자의 치료 성적을 대폭 향상시켰다. 대외적으로는 당시 열악한 국내 의료 상황임에도 선생은 주한 미군, 대사관 직원 및 가족들에게 첨단 의료시설인 뇌파검사를 실시하는 진료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미 우호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1966년 서울의대 신경정신과학교실 전임강사 발령을 받아 명실공히 교육자, 의학자의 길을 밟기 시작하였다. 신경정신과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의대 및 부속병원에 신경과를 신설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신경과의 분과 독립을 염두에 두고 신경정신과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뇌의 기질성 병변인 신경계 질환의 진료를 고집한 선생의 혜안은 오늘날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당시 신경질환 환자의 진료 및 신경과 독립에 관련되어 선생은 세브란스병원 신경내과 교수 이수익과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하였다. 인접 분야 학과에서 신경과의 독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여건에서 선생은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주위 분들을 부단히 설득하고 협조를 구한 덕에 1972년 서울의대 부속병원에 드디어 신경과 진료단위를 개설할 수 있었다.

신경과가 독립된 1972년부터 1990년까지 선생은 서울의대 신경과학교실 전임교수 및 병원 신경과 진료과장을 맡으면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선생은 매사에 매우 엄격하고 치밀하였으며, 특히 학생 교육에는 남 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다. 당시 국내 다른 병원에 신경과가 분리 독립되지 않아 국내의 많은 정신과, 내과, 신경외과 전공의들이 신경학, 특히 뇌파학(뇌파검사)을 공부하기 위하여 선생 연구실에 모여 들었다. 거의 10여 년간 여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의료계에는 대학병원 등에 신경과를 신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1980년대 초부터 국내 여러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에 신경과가 개설되기 시작하였다.

국내 여러 교육병원에 신경과가 점차 개설됨에 따라 신경학의 발전과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회의 설립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선생은 1982년 대한신경과학회를 창립하였는데 학회 창립에 대한신경정신과학회와 대한내과학회와의 갈등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특유한 친화력 및 대화를 통하여 학회 창립을 준비하였던 일화는 지금도 후학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선생은 학회의 창립과 함께 초대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1983년 `대한신경과학회지' 창간호를 발행하여 학술활동을 활발하게 하였으며, 현재와 같이 국내 신경학의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선생은 외적으로 엄격하면서도 제자들의 어려움에 항상 관심을 갖는 등 내적으로는 매우 자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생은 초기에 신경학을 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는 점에서 국내 신경학의 태두로 존경받고 있다. 그 외 학술적인 업적으로는 선생의 간질학, 뇌파학 분야의 주옥같은 연구 논문을 국내 및 국외 학술지에 게재하였으며, `간질학', `편두통의 진단과 치료' 등 단행본이 있다.

집필 : 이광우(서울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