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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포레〈레퀴엠〉작품번호 48
가브리엘 포레〈레퀴엠〉작품번호 48
  • 의사신문
  • 승인 2013.03.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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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11〉

포레의 레퀴엠은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그 영혼을 위해 작곡하기 시작하여 2년 후인 1887년에 완성되었다. 총 7곡으로 되어있고 멜로디는 그레고리우스 성가와 같이 종교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선율은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구성에 있어서는 교회음악의 전통적인 독창과 합창의 응답창(Responsorial), 2성부 사이의 교창송(Antiphonal)을 사용하였지만 기존 레퀴엠의 중요한 부분인 진노의 날(Dies irae)은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포레의 레퀴엠의 특징은 절제와 간결성에 있다. 특히 그의 가곡을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회화적이면서 화성적인 미묘한 표현의 다양성과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레퀴엠은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가톨릭 장례 미사 중 첫 곡인 입당송은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고 시작하는데 그 첫 단어인 `Requiem'을 `레퀴엠 미사'라 하여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를 통칭했고, 그것이 레퀴엠이라는 독특한 음악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작곡가의 선택에 따라 레퀴엠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진다.

포레의 레퀴엠이 독특한 것은 그것이 부드럽고 조용하며 심판과 저주가 아니라 용서와 희망에 차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수많은 레퀴엠들 가운데 포레 음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데 베르디의 장대하고 극적인 레퀴엠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레퀴엠은 오히려 이교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포레는 자신의 레퀴엠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었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인 것이다.” 평생을 교회에서 오르간니스트로 지낸 포레는 실은 무교회주의자였다. 완전한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19세기 가톨릭교회가 강요하는 숨 막히는 교리에 무작정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조용하면서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의 주관이 매우 강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레퀴엠은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동시에 당시 교회의 전통에 대한 작은 반항이라 할 수 있다.

한 원주민 꼬마가 돌로 조개를 찧으며 놀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포레의 레퀴엠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천국에서' 선율이 은은히 울리고 있다. 장차 이 아름다운 낙원에서 벌어질 끔직한 전쟁, 무수한 죽음들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상황 설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남태평양 과달카날 섬이 배경인 영화 `The Thin Red Line'의 한 장면이다. 이때 흐르는 포레의 아름다운 음악은 그 어떤 영화음악보다도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1곡 입당송. 불쌍히 여기소서 금관의 무거운 전주 후 주에게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는 입당송이 이어지고, “불쌍히 여기소서.”가 반복된다. △제2곡 봉헌송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죽은 자의 영혼을 죄와 지옥에서 구해달라는 기원문이다. △제3곡 거룩하시다 하프와 바이올린의 반주로 알토가 빠진 3성의 합창으로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 하늘과 땅에 가득한 영광.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노래한다. △제4곡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현의 피치카토와 함께 예수에게 죽은 이의 안식을 구하는 애절한 소프라노 독창이 전곡을 통해 가장 고아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선율을 노래한다. 포레의 프랑스적이며 서정적인 선율이 절절히 그려지고 있다. △제5곡 주의 어린 양 가요적인 선율로 이루어져 그 멜로디가 쉽게 귀에 들어온다. 합창의 아름다운 선율로 포레의 독특한 감성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제6곡 구원하여 주소서 저음 현의 피치카토와 함께 바리톤이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3개의 트롬본이 등장하면서 `진노의 날' 부분이 이어진다. △제7곡 천국에서 이 곡은 여느 레퀴엠에서 들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려는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미셀 코르보(지휘) 베른 오케스트라, 오리앙 성가합창단[Erato, 1972]; 존 엘리엇 가디너(지휘),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 몬테베르디합창단[Philips, 1992]; 필립 헤레베헤(지휘), 무지크 오벨리크 앙상블, 파리 라 샤펠 루아얄 합창단[Harmonia mundi, 1988]; 앙드레 클뤼탕스(지휘),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 브래슬 합창단[EMI, 1962]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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