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중환자의학을 개척한 - 오흥근
마취·통증·중환자의학을 개척한 - 오흥근
  • 의사신문
  • 승인 2013.03.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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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증학회 창설 등 마취·통증·중환자 관리 개척
오흥근(吳興根)

오흥근(吳興根)은 1929년에 출생하여 1946년 세브란스의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52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1965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오흥근은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하였고 의과대학 교과과목에도 없고 가르쳐줄 선생도 없던 마취과학을 택하였다. 1954년 군의관으로 미국 베데스타에 있는 해군병원에서 1년간 마취교육을 받았는데 전신마취, 저체온 마취, 그리고 부위마취법을 익히고, 성상신경절 및 요부 교감 신경절 블록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통증치료분야가 있는 것을 알았다. 1955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 해군병원에 근무 하던 중 모교에서 기관내 마취를 요하는 큰 수술이 있을 때마다 마취를 담당하곤 하였다. 오흥근은 1957년에 서울해군병원으로 전속되었고 강사대우로 세브란스병원 마취과에서 격일로 근무하였다.

군에서 전역하고 1959년 모교 전임강사로 임용된 후 1966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코페하겐에 설립한 마취과학센터 교육과정(1년간)을 다녀왔고 1973년 재연수를 다녀왔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마취과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직적이고 정규적인 전공의 교육은 물론 학술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후 1994년 정년 퇴임시기까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오흥근은 재직 중 일반마취 외에 심폐마취, 중환자관리, 통증관리 분야 개척에 특히 정력을 쏟았다. 1977년에는 일본 이와대 의대병원에서 인공심폐기를 쓰지 않고 에테르 심마취 하에 심장박동을 유지시키면서 체표 냉각법으로 약 20도 가까이 체온을 내리고 심장을 정지시켜 개심술을 하고 심소생술을 하면서 체표재가온법으로 체온을 다시 회복시키는 단순 초저체온법을 습득하였고, 귀국 후 선천성 심장질환 특히 심기형 소아에서 복합개심술 시 초저체온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이 방법을 습득한 마취과 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환자실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오흥근은 1966년 코펜하겐에서의 마취과정을 마치고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 미국, 일본의 여러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돌아보고 귀국하였다. 견학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기초로 하여 1968년 세브란스병원에 최초로 중환자실을 개설해 6개 병상을 갖추고 마취과에서 오흥근이 중환자실 운영을 담당하였다.

오흥근은 한국 최초로 외래 진료부에 통증클리닉을 개설해 이 분야에 대한 환자 치료와 연구를 시작했다. 1972년 마침내 본원 외래에 통증치료실을 개설하고 진찰 치료대 한대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과 일본, 그 외 여러 나라에 마취과학회나 통증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가능한 많은 병원의 통증클리닉을 견학하였다. 상복부 암환자에서 C자형 투시장치 하에 복강 신경총 알코올차단을 시술하여 통증클리닉의 기반을 다져가게 되었고 대한통증학회 창설의 기초가 되었다. 대한통증학회 초창기에 6년간 회장직을 역임하였고 대한통증학회지를 창간하였으며 통증의학 교과서를 편찬하는 등 후학들 교육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였다.

국내외 학회 학술활동도 열심이어서 1956년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치과강당에서 대한마취과학회 창립 당시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제12대, 21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1968년 대한마취과 학회지를 창간하였다. 제1권 1호가 문교부의 정기간행물인 학술지로 등록한 업적은 회장 재직기간 중 업적이다. 1979년 제1회 한일합동마취과학 심포지엄 발기인의 한사람으로 한일간의 학술 교류에 힘썼다.

1990년 서울에서 열렸던 제8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회 학술대회 대회장, 일본 마취과학회 명예회원(1993), 2001년 서울에서 제6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부위마취학회 학술대회 개최 당시 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동이 대단하였다.

마취과 업무 외에도 1989년 세브란스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내면서 직원들의 복지사업에 관여하였다. 1991년 의과대학 교수평의회 초대회장으로서 당시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의 건물 기초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연세대학교 교수평의회와 의과대학 교수평의회의 명의로 새 세브란스병원 신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신축부지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지의 건의서를 이사회에 올렸다. 교수들의 뜻이 받아들여져 동문회관 건축설계를 변경해서 새 병원 부지를 확보하고 그 후 새 병원 건축 안을 구체화시키는 데에 도화선이 되었다. 1990년 심혈관센터 설립 준비 막판에 홍필훈의 부탁으로 공간배치와 장비 선정에 있어서 각 부서간의 이견과 갈등을 수습하여 1991년 5월 봉헌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선생의 업적 중 하나이다.

매년 설날에 선생 댁에 가서 사모님이 차려준 맛있는 명절 음식을 먹었던 추억도 잊을 수 없다. 부인 박남숙과 선생 사이에 2남 2녀가 있다. 사위들이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 미국에서 이비인후과 의사로 활동 중이다.

오흥근의 제자 사랑은 각별한데 세브란스병원에서 마취과 수련을 받은 세마회 회원 중에는 각 대학에서 학장, 원장, 대학원장, 국립대학 총장까지 있다. 항상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잘 견디기를 당부하였던 선생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집필 : 고신옥(연세의대 마취통증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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