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45 (목)
베를리오즈〈이탈리아의 헤럴드〉 작품 16
베를리오즈〈이탈리아의 헤럴드〉 작품 16
  • 의사신문
  • 승인 2013.02.25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209〉

낭만주의 시대 영웅적 시인이자 당대 유럽 젊은이들의 가슴을 들끓게 했던 바이런은 슈만, 브람스, 베를리오즈 등 많은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예술적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베를리오즈는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에 감동받아 시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음악으로 이 시의 감흥을 표현하고자 갈망하였다.

1833년 파가니니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처음 듣고 그를 만났을 때 “내게 맞는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작곡가는 오직 당신뿐이다.”라면서 그가 새로 구입한 최고 품질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를 위한 작품을 의뢰하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그의 청을 받아들여 비올라를 위한 작품을 쓰기로 하고 오케스트라의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비올라 독주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베를리오즈가 이 작품의 제1악장을 완성하자마자 파가니니에게 보여주었을 때 비올라를 위한 현란한 기교를 기대했던 파가니니는 “비올라 독주 파트가 너무 많이 쉬고 있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연주하기를 원한다.”며 독주 부분에 대한 불만으로 이 작품을 거부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파가니니가 원했던 기교 과시용 비올라 협주곡은 그의 성격상 맞지가 않았다. 대신 그는 표제 교향곡의 특징을 지닌 서사시와 같은 장대한 교향곡을 완성하기로 하였다. 삶과 세상에 대한 비관 속에서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젊은이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방황, 다양한 편력을 노래한 바이런의 작품 가운데 이탈리아 편을 음악화하여 그의 제2교향곡을 완성하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프랑스 남부 라코트 생 앙드레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강요로 의대에 진학해 해부실에 들어간 순간 그는 즐비한 시체를 보고 질겁하여 도망쳐 나온다. 23세에 글루크의 오페라에 감명을 받고 늦은 나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어렸을 때 플루트와 기타를 조금 만져 보았을 뿐 악기라고는 전혀 다룰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극소수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음악원 졸업 후 1830년 로마상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아 로마에서 2년간 유학하게 되는데 이때 받은 서정적인 감흥을 이 작품에서 아낌없이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비올라는 바이런 시의 주인공이자 방황하는 우울한 몽상가 헤럴드를 묘사하고 있다. 시각적인 감각이 뛰어났던 베를리오즈는 파노라마와 같은 음향 세계를 선구적으로 다채롭게 그리고 있어 리스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탈리아의 헤럴드〉는 〈환상교향곡〉으로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킨 지 4년만인 1834년에 나온 작품으로서 베를리오즈 특유의 세련된 관현악 작곡기법에다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와 착상이 융합된 걸작이다.

△제1악장 산 위의 헤럴드 이탈리아 산을 방황하며 고통스럽게 세계를 탐험하는 헤럴드를 그린다. 느리고 비감 어린 오케스트라의 서주 후에 등장하는 간절하면서 수려한 비올라의 노래는 구원을 찾는 젊은이의 구도자의 심경과 방황의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선율은 곡 전체의 고정 악상으로 등장한다. △제2악장 순례자의 행진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행을 통해 죄를 참회하면서 구원을 바라는 순례자들과 만난 헤럴드는 그들 속에서 뭔가를 얻기를 갈망한다. 코랄풍의 경건한 울림으로 시작된다. △제3악장 세레나데 아브루치에서 산사람이 그의 부인에게 들려주는 세레나데로 감미로움과 감각적인 울림을 통해 잊힌 쾌락과 세속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등 다양한 악기들이 절묘하게 베를리오즈 특유의 서정성을 표현한다. △제4악장 건달패의 술판 비올라의 주제가 거듭 등장하며 앞의 악장들과 달리 빠르고 격정적인 울림과 흐름을 통해 건달들의 술판에서 벌어지는 어지러움과 폭력을 그리면서 그들에 이끌리는 헤럴드 자신의 욕망과 그를 거부하는 상반된 감정을 그리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윌리엄 프림로즈(비올라), 샤를 뮌슈(지휘),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RCA, 1958]; 윌리엄 프림로즈(비올라), 토마스 비첨(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olumbia, 1951]; 유리 바슈메트(비올라), 엘리후 인발(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오케스트라[Denon, 1988]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