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피부과학 발전에 공헌한 재미 피부과 교수 - 고영재
우리나라 피부과학 발전에 공헌한 재미 피부과 교수 - 고영재
  • 의사신문
  • 승인 2013.02.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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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피부과학 연구·교육 공헌 및 한미 교류 앞장

고영재(高永宰)
고영재(高永宰)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져 1961년에 연세의대를 졸업하였다. 재학시절 보건사회부 무의촌의료사업 장학금을 받았기에 졸업 후 보사부와 WHO의 합동사업인 ‘나병관리’를 위해 1년 반 동안 일한 것이 피부과와의 인연이었다.

그 뒤 육군 군의관 3년을 마치고 도미하여 1966년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록스보로기념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토마스 제퍼슨 대학병원에서 피부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부과 수련의가 되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았으나 제퍼슨의대 피부과 과장이었던 루스콤비(Luscombe)가 나병에 관심이 많았던 터이라 한국에서의 구라사업 참여경력이 크게 인정되어 행운을 얻은 셈이 되었다. 그 행운을 고영재는 연세의대 교수 유준과 WHO 나병자문관이었던 트랩맨(R.Trappman)에게 감사하고 있다.

제퍼슨의대에서 피부과 전공의 끝난 후 펜실베니아대학 대학원에서 postgraduate 과정을 1년 한 후 1972년에 피부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과 동시에 제퍼슨대학 피부과 전임강사에 임명되면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2000년에는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전임강사 3년 후 조교수(1975), 부교수(1979), 임상교수(1983), 임상과장(1989), 과수석 부과장(1998) 등 교수가 되기까지 과의 모든 행정과정을 착실히 밟으면서 오늘과 같은 대학의 중진교수로 성장하였다.

그동안 고영재는 미국에서의 각종 학술단체에도 깊이 관여하여 미국 피부과학회 펠로우(1973), 펜실베니아 피부과학회 펠로우(1978), 미국 필라델피아 피부과학회 학술위원(1975), 미국 필라델피아 피부과학회 상임위원(1978) 등 지역 피부과학회의 요직을 두로 거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1981년에는 Philadelphia College of Physician의 펠로우, 1982년에는 미국 피부병리학회 펠로우, 1983년에는 국제피부병리학회의 펠로우로 임명되었다. 그의 학술활동은 세계적인 잡지에 28편의 논문으로 발표된 것 이외 두 차례 포스터 발표를 하였고, 9편의 교과서에 챕터를 맡아 집필하였으며, 1993년에는 “Color Atlas of Diagnostic Problems in Dermatology” 교과서 공저자로 그 이름을 올렸다.

또 수많은 국제학회 초청연사로도 참여하여 이집트, 이탈리아, 말타, 중국 등에서 수차례 국제학회 특강 및 초청강연을 하였으며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학회에서도 여러 번 특강을 하는 것 외에도 국내의 여러 의과대학에서 특강을 하는 등 그동안 수많은 학술활동을 하여왔다.

고영재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재미 한국피부과학회의 창립이다. 1980년에 동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직을 맡아 이를 20년간 이끌어 오면서 한국피부과학계의 중진교수들의 의학연구, 교육 및 환자진료에 도움을 주어 한국피부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도움을 받은 피부과 교수들은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이 망라되어 있으며 비록 교수뿐만 아니라 젊은 피부과 의사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고영재의 이러한 국내외 활동은 그 공로가 인정되어 1986년에는 대한의사협회에서 한국의학교육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공로패를, 2002년도에는 대한피부과학회에서 재미한국피부과학회를 이끌어 온 점을 들어 역시 공로패가 주어졌다.

고영재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또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 큰 영광이 2002년에 발생했다. 고영재가 봉직하고 있는 제퍼슨대학에서 그의 30여년에 걸친 학생교육, 수련의 교육 및 환자 진료에 대한 공적을 기념하여 초상화가 그려졌고 그 초상화를 피부과교실에 영구보존하는 제막식이었다. 같은 해 11월에 위와 같은 공적을 기려 ‘고영재기념 강연회’(Annual Young C. Kauh Clinical Lectureship)를 창설하여 매년 갖기로 하였고 2010년에 제8회째를 맞이하였다. 미국에서 교수의 업적이 우수하여 교실에 초상화를 비치하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기념강연회를 열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기에 고영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도 전후에 많은 한국의사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자리 잡고 있지만 지금은 한인의사회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1.5세대, 2세대가 합류한다고 하지만 그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영재는 한인의사 1세대로서 원로에 속하면서도 나이를 잊고 미국사회는 물론이고 국제 활동에도 남다른 역량을 보이고 있어 주위의 많은 동료나 한국인들에게 크게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인 피부과 의사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그 어려운 처지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고영재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집필 : 김병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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