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학(耳科學)의 세계적인 학자 - 임종재
이과학(耳科學)의 세계적인 학자 - 임종재
  • 의사신문
  • 승인 2013.02.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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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분야 연구 등 이비인후과학의 세계적인 학자

임종재(林鍾載)
임종재(林鍾載)는 1935년 황해도 연백에서 3남 1녀중 맏이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학하여 1960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국립의료원에서 이비인후과 수련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학 재학 중에는 YMCA 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그때에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과 아직도 연을 맺고 친분을 유지할 정도로 탁월한 대인관계와 리더십을 타고났다. 특히 1980년 말 컬럼버스 한인회장시절 흑인소년이 한인가게에서 피살되어 오하이오주 전체 흑인들의 조직적 반발을 일으키게된 사건 같은 인종 갈등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였고, 한글학교후원회 이사장으로서 컬럼버스 한인 2세의 한글교육에 공헌하였다. 워싱턴디시에서는 음악회(Concert Society)의 후원이사로 장래가 촉망되는 무명의 음악가를 발굴해 케네디센터에 데뷔시키는 일에 공헌하였고, 또한 한미장학재단 이사로서 한국 유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60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도미 후 Michael Paparella(전 미네소타대학 주임교수)와 인연이 되어 하버드대 의대 이비인후과와 Mass Eye & Ear Infirmary에서 연수를 마치고 1967년부터 1993년까지 오하이오주립대 이비인후과 교수와 이과연구소장으로 재직하였다. 이 연구소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이과학 단일연구소로 많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969년 이후 38개의 연구기금과 10개의 연방정부 연구재단 및 사립연구재단과 연구계약을 맺고 있으며 1975년 이후 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6개의 학회 운영 기금을 보조 받았다.

1992년~95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 난청연구소 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그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연구소에 소장직으로 동양인으로는 처음 발탁되었는데 미국 CIA에서 배재고등학교까지 신원조회를 하였다고 한다. 1995년부터는 LA에 있는 전 세계에서 단일 이과병원 및 연구소로 가장 큰 House Ear Institute(레이건 대통령의 보청기 처방 및 사우디, 요르단 국왕 치료 병원으로 유명함)의 연구소장으로 옮기고 13년간 이 연구소의 획기적인 발전에 기여하였다. 현재도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명예교수와 남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교수로 연방정부 연구비를 가지고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임종재의 학문적 업적은 이과학분야에서 처음으로 투과 및 주사전자현미경을 적용하였고, 여러 가지 형태학에 대한 기술적인 방법을 개발하여 내이(內耳)의 와우전정기관, 중이(中耳) 및 이관의 기능해부와 병태연구에 기여하였다. 특히 와우전정기의 생리에 관한 일련의 형태학적 연구 업적 때문에 1980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관여하는 우주생물학 및 의학 미소공동연구계획의 미국대표로 임명되었고, 1981년 소련과학원의 객원교수로 모스코바와 레닌그라드에 초청을 받았으며, 1986년에는 Von Bekesy 노벨상수상 25주년 기념 노벨 심포지엄에 초청연자가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인 업적을 바탕으로 미국 이비인후과 기초연구회(Association for Research in Otolarynglogy)를 만들어 1973년 제1회 학회를 추진한 이후 회장 직을 거쳐 현재까지 주관에 관여하고 있다. 4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중이염 심포지엄을 1975년 처음 창립한 후 미국의 난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금까지 심혈을 기울여 주관하고 있다. 이 학회는 이비인후과 의사뿐 만아니라 소아과의사, 면역학자, 미생물학자 등 기초, 임상 의학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비중 있는 분과 학회로 성장하였다. 특히 1986년부터는 미국과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격년제로 운영되어 2년마다 열리고 있는데 2009년에는 서울에서 필자가 선생의 도움으로 세계중이염학회를 주관하였다.

임종재는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 국립보건원을 위시한 세계적인 난청분야의 자문위원 및 많은 연구기관의 위원으로 활약 중인데 오하이오주립대학 최우수교수상(Distinguished Scholar Award, 1985), 세계이비인후과의학자회 학술상(Shambaugh Prize, 1992), 미국 이비인후과 기초연구회 공로상(1993), 네덜란드 그로니겐대학 난청공로상(Guyot Prize, 1994), 연세대학교 의학동문대상(1997), 이탈리아 국제난청재단 공로상(Magarotto Award, 1998), 미국 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상(Paparella Award, 1999), 오스트리아 메니어스학회 학술상 금상(2003), 미국 이과학회 공로상(2005)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인으로서 이비인후과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칠순이 넘은 현재까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그 건강과 열정이 우리 후배들이 기억을 해야 될 부분이다.

부인 한영숙(이화여대 영문과 졸업)과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미국 LA에서 거주하고 있다.

집필 : 박기현(아주의대 이비인후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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