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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베르디〈레퀴엠〉
주세페 베르디〈레퀴엠〉
  • 의사신문
  • 승인 2013.02.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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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08〉

1868년 로시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베르디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레퀴엠을 작곡할 것을 밀라노의 악보 출판사장 리코르디에게 제안한다. 이 곡은 당대 명성이 높은 13명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각 부분별로 작곡한 공동 작품으로 베르디는 맨 마지막 부분인 `Livera me'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로시니 사망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 작품은 베르디의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마리아니의 불성실함으로 베르디는 격분하였고 연주회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 오페라 〈아이다〉 공연에 몰두하던 베르디는 레퀴엠 전곡을 완성하기로 결심하고 로시니를 위해 작곡했던 `Livera me'를 중심으로 하여 전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873년 그가 매우 존경하던 만조니가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와 더불어 가장 순결하고 거룩한 우리들의 최고의 영예가 사라졌다.”며 그의 죽음에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뒤늦게 그의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밀라노로 향하게 된다. 리코르디를 통해 베르디는 밀라노 시장에게 만조니 사망 1주년 추모행사를 위한 진혼 미사곡을 작곡할 의사를 전했다. 그는 시 당국에서 초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한다면 악보 인쇄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제의했고 시장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1874년 레퀴엠을 완성한 베르디는 최고의 음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밀라노 산마르코 성당을 연주장으로 선택했고 120명의 합창단, 100명의 관현악단이 이 곡을 연습했다. 베르디 자신의 지휘로 초연한 이 연주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 곡은 `극적인 종교 음악'이지만 베르디는 오페라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리코르디에 보낸 편지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당신이 원하던 대로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표현과 악보에 있어서 쉽지 않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미사곡을 오페라방식으로 부르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저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극장용 음악에 적합하지만 이 곡에는 어울리지 않는 악구와 다이내믹은 결코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이 레퀴엠에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의 관심은 사후세계에 대해 너그럽게 감수하는 마음이나 기대감에 있지 않았다. 베르디는 작곡 당시 모차르트, 케루비니,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의 작품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최후의 날' 공포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베르디는 레퀴엠의 가사에서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참회하는 인류의 모습을 발견하여 이러한 광경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단순히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미사곡이 아닌 산 자들을 위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레퀴엠인 것이다.

△제1곡 Requiem & Kyrie 절제되고 경건한 입당송은 무반주 합창을 위한 대칭형식으로 되어 있고 전례 음악을 따르고 있다. △제2곡 Dies Irae 중세 교부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작시한 것으로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매우 다이내믹하게 혼돈을 묘사하고 있다. △제3곡 Offertorio 봉헌송에 생기를 불어넣는 선율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제4곡 Sanctus 이중 푸가로 되어 있으며 교회 음악의 모범적인 형식을 따르는 부분이다. △제5곡 Agnus Dei 단순하면서 경건한 선율을 주제로 아름다운 고음역의 바이올린 상행 선율로 마치게 된다. △제6곡 Lux aeterna 약동하는 반주 위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바탕으로 복종과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제7곡 Libera me. 곡의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온한 순간으로 진혼의 마지막이다.

■들을만한 음반: 아나 코포바-신토프(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메조소프라노), 호세 카레라스(테너), 호세 반담(바리톤), 카라얀(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4];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메조소프라노), 니콜라이 겟다(테너), 니콜라이 갸우로프(베이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63]; 안젤라 게오르규(소프라노), 다니엘라 바르첼로나(메조소프라노), 로베르토 알라냐(테너), 줄리안 콘스틴노프(베이스),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97, EMI]; 조안 서덜랜드(소프라노), 마릴리 혼(메조소프라노), 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마르티 탈벨라(베이스), 게오르큐 솔티(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77]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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