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산악회, 강씨봉 산행기
서울시의사회산악회, 강씨봉 산행기
  • 의사신문
  • 승인 2013.02.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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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네오성형외과의원장>

박정일 원장
가슴 설레게 만든 설산의 매력…감기 몸살도 털어내

2013년 1월13일

올해 첫 산행

상판리-귀목고개-귀목봉-강씨봉-도성고개

07:10 출발. 이런 저런 일로 한동안 뜸했다가 오랫만의 산행이다. 차창에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몸은 잠에서 다 깨어나지 못해 비몽사몽이다.

이렇게 산에 가는 날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배낭을 집어 들 때까지 짧은 시간동안 “오늘 산에 가지 않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열 가지도 넘게 생각난다. 이 달콤한 잠자리의 유혹을 왜 뿌리쳐야하나, 하지만 산에 가서 땀을 흠뻑 흘린 후에 느끼는 쾌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기에 순순히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창을 닦는다. 하얀 설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오랫만의 설산 산행에 가슴이 부푼다.

청평검문소 근처의 장작불설렁탕집. 원조란다. 진짜 원조란다. 믿어야지.

사실은 평소 잘 안 먹던 아침을 조금 먹고 출발했는데 또 아침식사라니, 그래도 맛있는 집이라니 또 먹는다. 맛이 있기는 하다!

버스 속. 박병권 회장님의 인사, 그리고 연재성 등반대장님의 간단한 안내, 오늘 코스를 추천한 조해석 총무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원래 가평에는 좋은 산이 많다. 하나하나 각 산이 다 괜찮고, 또 여럿을 이은 종주코스도 다양하게 있어 산꾼들이 즐겨찾는 지역이다. 이번 코스는 조 총무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자주 찾는 코스라 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므로 버스 속에서 슬슬 준비한다.

등산화 끈을 당겨 매고, 바람막이용 겉바지 입고, 스패츠 착용하고, 스틱을 적당한 길이로 뽑아놓고, 방한모자를 여민다. 이제 아이젠 착용하고 장갑끼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목적지인 상판리 귀목에 도착.

용변을 보고, 아이젠을 신어 준비 완료!

안내 지도판을 보면서 간략히 설명한 후 09:16 출발한다.

늘 그렇듯 선선한 복장으로 출발한다. 올라가다 땀흘리며 쉴 때에 겉옷을 입어야 한다. 흔히 초보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따뜻하게 입고 출발해서 땀 흘릴 때 겉옷을 벗는 것. 정반대로 해야 한다.

사실은 내 몸 상태가 신통치 않다. 며칠 전에 시작된 감기가 지금쯤 심해져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고 있어야 하고, 산행이 가능하니 불가능하니, 하고 있어야 하는데…. 좀은 무리한다는 각오로 나왔다. 그런데 예상외로 목소리 빼고는 컨디션이 괜찮다.

이게, 점점 산에 빠져든다. 병이 깊다.

감기라는 현실의 병을 낫게 해주는 또 다른 병. 산사랑이다.

보기 좋은 장면, 남기고픈 경관이 많으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갑을 벗어야 하니 불편해서 사진도 덜 찍게 된다. 이것이 겨울 산행의 단점중 하나다.

10:29 귀목고개에 도착. 연전에 연인산에 올라서 이쪽을 보면서 가보고 싶어했던 곳인데 이제야 오게 되었다.

능선을 따라 귀목봉으로 향한다.

중간에 대팻밥(?)처럼 생긴 눈을 본다. 사실은 눈이 아니라 얼음이다. 상고대가 떨어져 쌓인 것이다.

흔히 겨울에 나무가 하얗게 되어 있으면 다 눈꽃이라 불러 상고대와 눈꽃을 구별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엄연히 다른 것이다.

△상고대(rime, 霧氷)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0℃ 이하로 과냉각(過冷却)된 안개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수목이나 지물(地物)의 표면에 부착 동결되어 생긴 얼음을 말함.

수빙(樹氷.나무에 달린 얼음) 또는 수상(樹霜.나무에 내린 서리)이라고도 부름.

즉, 공기중의 수분이 유리창에 성에가 끼듯 나뭇가지를 만나 얼어 붙는데, 이것이 계속되면서 두꺼워진 것이 상고대다. 그래서 상고대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자라나게 되고, 눈이 쌓일 수 없는 옆면이나 아래쪽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또, 나뭇가지 뿐만 아니라 바위, 심지어는 고드름에도 붙어서 자란다.

그에 비해 눈꽃은 그야말로 `눈이 쌓여 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나뭇가지의 위쪽에 쌓여있다.

11:24 제법 다져진 눈길로 걸어간다. 바로 옆에는 무릎까지 오는 눈이다.

누군가가 눈이 온 후 이 길을 최초로 갔을 것이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 이 길로 간 사람들이 무릎까지 오는 눈을 잘 밟아서 러쎌을 해둔 셈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간다. 감사합니다!

11:26 가다가 뒤 돌아보니, 오른쪽 멀리에 운악산이 보인다. 왼쪽 멀리로는 우정능선에서 빠져나온 가지능선이 보이고 그 사이는 운무에 가려져 있다.

아스라히 보이는 산봉우리들, 그리고 그 사이의 산그리메는 언제 보아도 가슴을 뛰게 한다. 무척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 이 또한 산에서 얻는 큰 기쁨중의 하나이며 보지 아니한 자는 느낄 수 없는 선경이다.

11:37 귀목봉 도착.

오랫동안 명성만(?) 들어온 귀목봉이다. “저 뾰죽한 봉우리가 귀목봉이다”라고 먼발치서 바라만 보던 그 귀목봉이다. 드디어 그 품에 안기다니… 이렇게 곁을 내어준 산에 감사한다.

귀목봉 이후 강씨봉을 거쳐 도성고개까지의 가야할 길이 능선을 따라 하얗게 보인다.

이 구간은 방화선이라 지금은 눈이 쌓여 하얗게 보인다. 하지만 마루금따라 나무를 베어 내고 만든 방화선인지라 여름에는 그늘이 없어 상당히 고전해야 하는 구간이다.

능선길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오른쪽에 명지산이 보이고 오른쪽의 저만치 앞에 화악산이 보인다. 화악산과 명지산을 오른쪽에 두고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늘 명지산과 화악산이 왼쪽에 있었는데… 나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다.

12:37 버너, 라면. 겨울 산에서 끓여먹는 라면의 맛이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쓰읍!

열 댓개가 넘던 라면이 금새 동이 나고 남아있는 한 오라기의 라면도 남김없이 해치운다.

다시 장비를 정비하고 출발.

능선길을 따라 가는 동안 건너편에 보이는 산의 모습이 깨끗하면서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한자로 산(山)자를 만들 때 이 모습을 보고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산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세모를 여러 개 겹쳐둔 듯한 모습이다.

13:53 오뚜기령 도착.

8사단에서 길을 뚫었다고 하며 그래서 8사단 별칭인 오뚜기로 이름지었다한다.

비석 전면에는 5군단과 8사단의 마크와 함께 “오뚜기 嶺”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초전 3일 돌격전의 의지와 기백으로 폐허의 옛길을 뚫다 - 1983. 6.25”라고 새겨져 있다.

길 가쪽에는 돌로 된 이정표가 있는데, 멋도 없고 돌이나 글씨나 모두 각이 딱딱 잡힌 모양이 분명 사제가 아니고 당시에 군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나무로 만든 사제 이정목이 저 건너편에 있는데, 그 이정목 뒤의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야 우리의 목적지인 강씨봉으로 가게 된다.

오뚜기령을 지나 오르막길을 10여분가량 오르자 다리에 쥐가 난다.

산행 시작하고 4시간 전후에 나타나는 증상. 도대체 왜 다리에 쥐가 나는 걸까? 그것도 항상 Sartorius에….

가장 가능성이 많은 답은? 운동부족! 하지만 운동량이 적지 않은 나에게 운동부족이라는 설명은 왠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도 그 답을 찾는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어쨌든, 해결은 해야 하므로 깔개를 펴고 앉아서 근육을 살살 주무른다.

바지를 내리고 안티프라민을 바른다. 지나가던 사람이 의아한 눈길로 본다. 이 추운 산속 눈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으니….

저기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요∼

이후 내 걱정에 남아서 기다리던 후미와 만났다. 내가 보이지도 않고, 두꺼운 방한복 주머니속의 전화 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탓에 전화 연락도 안되고 해서 본진에서는 걱정이 많았나보다.

매우, 대단히 죄송합니다아!

살살 가다가 쥐가 심해지려하면 멈춰서 가볍게 마사지 하고, 쉬었다 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간다.

역시나 한 시간 여 지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리가 괜찮아 진다.

이제 밀린 코스 따라 잡아야지!

16:12 강씨봉. 후백제의 견훤의 정실부인 강씨가 전란을 피해 잠시 숨어 지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역시 처음 온 곳이다. 늘 생각만 하고 올 기회가 없었는데.

감탄도 잠시. 아직도 따라잡지 못한 본진을 향해 달려간다.

16:46 드디어 도성고개에서 기다리던 본진과 합류.

비록 다리에 난 쥐 때문에 시간을 끌었지만 하산 완료전에 본진과 합류해서 다행이다.

민폐를 끼쳐드려 본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나 땜에 함께 후미를 지켜줬던 후미팀들에게 감사드린다.

17:41 하산완료.

약 8시간 반에 걸친 산행이 끝났다.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무리를 위해 온천으로 향한다.

심한 운동 뒤에는 몸을 찬 물에 담그는 것이 정답인데, 여기 찬 물은 찬 물이 아니다. 미지근한 정도이다. 하지만 더 찬 물이 없으니 어떡하랴. 그냥 “찬 물이다. 찬 물이다”라고 믿고 만족한다.

간단한 목욕 후 소개받은 식당 `명지원'으로 향했다.

역시 음식이 상당히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지금 무엇을 먹은들 안 맛있으랴! 더구나 그 유명한 이동갈비가 아닌가!

오늘 이 코스가 눈이 유독 많으면서 사람이 적은 아주 좋은 코스라고 칭찬했던 우리의 조 총무님. 과연 그러하다. 오늘 산행 중에 만난 팀은 단 두 팀. 한적하다 못해 적적할 정도의 기막한 산행이었다. 이렇게 멋진 코스를 소개해준 조 총무님, 감사!

아, 산행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는 박 회장님과 연 대장님도 당연히 고맙심다.

오랜만의 산행에 쥐까지 나고, 개운한 온천 목욕 후 이동갈비와 함께 한 뒤풀이까지.


올라오는 차 안에서는 기절한 듯 잠들었다. 꿈 속에서도 설산을 거닐면서.

박정일 <네오성형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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