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中耳) 및 내이(內耳)의 생화학적 권위자 - 전성균
중이(中耳) 및 내이(內耳)의 생화학적 권위자 - 전성균
  • 의사신문
  • 승인 2013.02.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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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내이 생화학분야 권위자로 봉사활동도 활발

전성균(全聖均)
전성균(全聖均)은 중이염 및 내이 생화학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로 이비인후과의사 전호열과 김귀주의 장남으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 경북중학교를 거쳐 경북대 의대에 입학, 의대 재학시절부터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57년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생화학전공으로 석사(1961)가 되어 경북대의대 생화학교실 전임강사로 근무했다. 1963년에 국제원자력기구 장학생으로 유학, 약 4년간 유럽 최고(最古) 대학의 하나인 볼로냐(Bologna, 1070년 설립) 대학의 병리학 연구소 연구원,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동위원소센터, 뒷쎌돌프 대학의 내이 연구 실험실을 두루 거치는 동안 뒷쎌돌프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였다. 1967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대학의 파파렐라(Paprella) 교수가 이비인후과학 주임이 되면서 선생은 청각기관 생화학 실험실을 설치하고 박사 후 전공의과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 그 이후 오늘까지 연구와 교육에 헌신,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쳐 2000년부터는 미네소타대학의 신경과학 교수를 겸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중이 및 내이의 기초의학적 연구로 `내이 생화학'(American Academy of Otolaryngolgy, 1973) 단행본과 2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내이 액의 생화학적 연구개발(1974), 중이 액의 생화학연구의 체계 확립(1976), 중이염의 동물 모델개발(1976∼78) 등 중이연구의 배경을 구축하고 해당 영역에서 계속 논문을 발표했다. 즉 중이염의 발생기전을 생화학적으로 연구하였다. 내이연구에서도 그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내이 액 성분규명 및 내이 액의 항상성 조절에서 혈-내이격막(blood-labyrinth barrier)의 역할을 학계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1981) 이 방면의 연구결과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 후 중이점막의 상피세포 배양에 성공(1992)하고, 중이점막의 분비기능에 관한 연구를 개발했다(1995). 이어서 스트레스가 청각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분야를(1998), 혈-내이격막의 청각에 미치는 영향연구(2001)를 계속했고 내이조직 재생 및 청각회복을 위한 줄기세포이식의 연구(2007), 또 최근에는 C57BL/6생쥐 모델을 이용한 노화로 인한 청력손실의 병리와 기능회복에 관한 약제 개발 연구(2010)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3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Juhn-Tymtap은 환자의 중이액 채취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1980년에 미국 이비인후과학회에서 공로상을, 이 분야의 권위지인 Acta Otolaryngologica 와 Annals of Otology, Rhinology, Laryngology 편집위원으로 지명되고, 대학교수로서 영예의 하나인 NIH의 연구자금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1982∼85). 난청연구재단의 연구과제 심사위원(1989∼91) 역임, 현재는 이비인후학과 두·경부외과지의 편집위원(1991∼ ), Acta Otolaryngologica의 국제편집위원(2005∼ )으로, 미국 이과학회, Triology학회와 Collegium Oto-Rhino-Laryngologycum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연구에만 깊이 치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섭외활동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88년에 그는 미네소타대학과 캐롤린스카연구소와의 교수 학생 교환 프로그램 설립을 도왔다. 이 발상은 스톡홀름 거리에서 만난 미네소타의 전 주지사 앤더슨(Wendell Anderson)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스웨덴 출신 대기업가인 칼슨(Curtis Cartson)이 이 교환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하여 50만불을 기부한 덕분으로 성사되었다.

그는 기초의학 연구에 몰두할 뿐 아니라 대학원 시절 의학도로서 슈바이처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고 생명과학을 공부하던 학생 중심으로 `생명경외클럽'을 조직했다. 주말의 무의촌진료를 통한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이 클럽은 50년을 이어왔고 1,000여명의 졸업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한국에서의 불우한 이웃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인류애와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과 신앙에서 오는 낙천적인 생활 태도는 많은 학생과 동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필 : 김두희(경북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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