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외과의 대가 - 조범구
심장외과의 대가 - 조범구
  • 의사신문
  • 승인 2013.02.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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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복합심기형 수술 등 흉부외과학 선진화

조범구(趙範九)
조범구(趙範九)는 1939년 서울에서 조동수(趙東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를 1958년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64년에 졸업하였다.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 후 1967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외과에서 수련, 일반외과 전문의를 취득하였고 홍필훈, 차홍도의 영향으로 1971년부터 흉부외과를 전공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심장 폐질환 치료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여 인원과 장비 등이 매우 원시적이었으며, 이에 선생의 적극적이고 개척자적인 노력이 시작되어 흉부외과 영역이 현재의 발전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 초석을 놓았고, 그 후 30여년 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흉부외과를 꽃피우게 하고 우리나라의 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었다.

선생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1976년 미국흉부외과학회에서 수여하는 그라함씨 연구원으로 선발되어 도미, 텍사스심장병원, 메이어클리닉, 보스톤소아병원, 알라바마대학 등에서 Denton Cooley, John Kirklin 및 Van Praagh로부터 심장학에 대한 최신 지견을 연수 받고 1978년 귀국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선생은 복합심장기형 교정술과 중복판막치환술 등 진일보된 수술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영유아의 체온을 섭씨 18℃ 이하의 초저체온으로 하강시켜 체외순환 기계없이 교정하는 수술 등을 시도하였고, 특히 선천성심장기형의 진단에 Segmental Approach를 도입함으로서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게 되었다. 또한 수술 중 심근 보호를 위한 심마비 용액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UCLA의 Gerald Buckberg와의 교류를 통해 수술 성적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것은 당시 심장외과영역에서의 큰 업적이라 하겠다. 당시 시행한 모든 복합심기형의 수술법은 하나하나가 국내 최초의 수술로 인정되었다.

1980년대 서구화된 식생활의 급속한 변화가 순환기질환의 증가로 이어질 것을 예상해서 순환기질환의 연구와 진단 및 치료를 전담할 심장혈관센터와 연구소의 설립을 추진하여 1991년 연세의료원내에 독립된 심장혈관병원과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성인심장, 소아심장 및 혈관 파트로 세분화된 인원들이 각자 전문분야에서 종사함으로써 진료의 선진화를 일찍이 이루어 놓았다. 연구분야에서도 선생의 특유한 열의에 의해 1996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체조직의 냉동보존에 대한 연구비를 수혜 받아 5년간의 동물실험으로 그간 꾸준히 촉구해온 연세조직은행의 초석을 놓은 것도 선생의 큰 업적 중 하나이다.

대내적으로는 심혈관병원장, 심혈관연구소장, 세브란스병원장의 직책을 맡았고, 대외적으로는 대한흉부외과학회 이사장, 회장으로서 우리나라 흉부외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고, 한국생체재료학회를 창립하였다. 국제적으로는 American College of Surgeons의 연구원, 미국흉부의사협회 및 미국 흉부외과학회의 정회원 그리고 아시아 심장혈관협회의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심장혈관흉부외과지 발간을 주도하고 1995∼2006년까지 주편집인(Editor-in-chief)로 일하면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흉부외과 영역의 학자로서 큰 발자취를 남기었다.

심장혈관외과와 더불어 심장마취과와 심장소아과, 그리고 심장내과의 동반 발전을 주도하였고 일찍이 심장, 폐장이식의 도입을 위해 팀웍 별 연수를 시행, 미래의 심폐외과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학구적인 탐구 이외에도 선생은 희생과 봉사 정신이 투철하였다. 1970년대 후반, 선천성심기형환아들이 국외로 가서 수술을 받는 안타까운 실정이었는데, 이에 선생은 부산의 심장환아연구소의 김미카엘라수녀와 협동으로 1978년 이후 25년간 전국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여 약 1,200명의 어린이를 진단 및 수술치료 하였으며 매달 부산에서 수술 전후 진찰을 행하였던 바 1996년에 이러한 공로로 해서 조선일보 주관 청룡봉사상을 수여받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참의료인의 귀감이 되었다.

재직기간 중 선생은 6,000건이 넘는 심장 및 폐장 수술을 집도하였으며 30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퇴임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중앙심사위원장으로서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하였고 2010년 이후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봉사정신 또한 선생의 큰 덕목이라고 하겠다.

선생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가르치고 키워낸 100여명의 후학들이 전국 각지의 대학 및 종합병원에서 선생의 뜻을 물려받아 각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선생의 가장 큰 공로라고 할 것이다.

집필 : 강면식(연세의대 흉부외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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