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08 (토)
보로딘 현악사중주 제2번 D장조
보로딘 현악사중주 제2번 D장조
  • 의사신문
  • 승인 2013.01.28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205〉

보로딘은 평소 “나의 일은 과학이고, 음악은 취미이다.”라면서 스스로 `일요작곡가'라 칭할 정도로 음악은 단순한 취미정도처럼 말하곤 하였지만 그의 음악세계는 결코 아마추어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명지휘자 바인가르트너는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성을 알려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과 보로딘 교향곡 제2번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큐이, 발라키레프,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함께 러시아 민족주의 국민악파 5인조로 러시아 음악을 대변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국민악파 5인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로딘은 화학, 큐이는 축성학, 발라키레프는 수학을 전공하였고 무소륵스키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고,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학교 출신이었다.

이러한 이력의 배경으로 그들은 서유럽의 기성 음악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슬라브 민족의 향토적인 선율에 기초하여 작품을 쓸 수 있었다. 보로딘의 대표 작품으로는 3개의 교향곡, 2개의 현악사중주와 오페라 〈이고르 공〉,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등이 있다. 오페라 〈이고르 공〉은 러시아 국민주의 대표적인 오페라로 국민악파 5인조의 이론적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스타코프의 권유로 1869년부터 작곡하였는데 10년 동안 부분적으로만 작곡되어 그가 사망할 당시엔 대부분 초고인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었다. 보로딘이 사망한 후에야 그의 동료인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제자 글라주노프가 공동으로 작품을 정리 보충하여 완성하게 된다. 특히 이 오페라 제2막에 등장하는 `폴로비치안 댄스'는 보로딘이 합창 중심으로 쓴 곡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곡으로 보로딘만의 동양적 우수와 화려한 색채를 띠며 요즘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보로딘은 그루지야 지방 호족의 후예인 루커스 게데아노프 공작의 사생아로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사생아였기에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하고 농노였던 포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되었다. 아마 그의 음악에 동양적 요소가 깔려있는 것도 생부의 동양적 혈통과 무관하지 않다. 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에서 화학교수 시절 성격이 온화하고 친근했던 그는 가난한 친척과 친구, 동료 과학자들이 항상 그의 집에 북적거려 언제나 집안은 북새통이었고, 하이델베르크 유학 시절 결혼한 피아니스트인 아내 에카테리나는 폐결핵으로 항상 병상에 누워 지냈다. 이런 와중에 그가 어떻게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880년대에는 과중한 업무와 급격히 나빠진 건강 때문에 거의 작곡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며 1886년 어느 무도회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게 된다.

현악사중주 제2번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사중주 제1번 〈안단테 칸타빌레〉와 함께 러시아 실내악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뽑을 수 있다. 이 현악사중주는 그의 작품세계가 원숙한 시절의 사중주로 보로딘이 그의 아내를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제3악장 녹턴에서 첼로와 바이올린이 번갈아 들려주는 선율은 바로 이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누는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서정성이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마치 물 흐르는 느낌의 유려한 선율로 그린 아름답고 투명한 주제가 노래되면서 그 주변에 파도와 같은 반주가 계속된다. 잠시 후 약간 심오한 분위기의 선율로 넘어가면서 계속되는 반음들에 의해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면서 절정을 이루고 마지막에는 고요하게 잔잔해지며 막을 내린다. △제2악장 Scherzo Allegro 재치 발랄한 선율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시종 빠른 멜로디로 가다가 재치 있게 조용히 피치카토로 결말을 맺는다. △제3악장 Nocturne Andante 러시아의 평원을 그린 듯 매우 서정적이고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선율로 가슴을 시리게 한다. 3부 형식이며 이 감동은 더욱 깊은 감동으로 젖어들게 하면서 그 시린 가슴이 꿈속의 선율처럼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제4악장 Finale Andante-Vivace 조용한 첼로 위로 빠른 갑자기 선율의 비올라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된다. 앞 다투어 서로 번갈아가며 멜로디를 노래하면서 멋진 화음으로 결말을 맺는다.

■들을만한 음반: 보로딘 현악사중주단[Decca, 1962], 보로딘 현악사중주단[Melodiya, 1982]; 드롤츠 현악사중주단[DG, 1970]; 쇼스타코비치 사중주단[Alto, 1994]

오재원 <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