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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내분비학을 도입한 - 서세모
소아내분비학을 도입한 - 서세모
  • 의사신문
  • 승인 2012.12.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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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내분비학 보급 및 동서양 의학교류 앞장

서세모(徐世模)
서세모(徐世模)는 1930년 부산광역시 동래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세브란스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스웨덴병원 임상병리실에서 조수로 근무하면서, 임상의학의 기반으로서의 임상병리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55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수련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임상병리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현봉학이 있던 펜실베니아주 Erie의 Harnot Medical Center에서 20개월 동안 병리학과 레지던트로 수련을 받았다. 그 당시 부검을 300례나 집도 할 정도로 병리학적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그 후 보스턴어린이병원에서 소아과 레지던트과정을 2년, 하버드 의과대학 소아내분비 펠로우십 2년 반을 수료하였다. 당시에는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외국인으로서 레지던트 과정으로 들어가기는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은 자비로 6개월간의 대학원 과정을 먼저 받으면 고려해보겠다는 조건을 감수하고 지원하였다.

1963년에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조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의과대학 강의 시간에 칠판을 사용하던 학습법에서 현재는 일반화된 슬라이드 강의로 변화를 주도하였다. 또한 회진 시 환자중심의 침상교육과 임상질환치료에서 기초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임상병리집담회의 활성화 등으로 당시 미국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교수들과 함께 의학교육방식의 변화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 하버드어린이병원 주임교수인 제인웨이(Janeway)의 방한을 계기로 5명의 세계적 저명한 소아과 교수를 초빙하여 중앙일보 후원을 받아 국제소아과심포지엄을 열어 한국 소아과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적 시야의 발판이 되었다.

1963∼1966년 선생은 또 대한소아과학회의 학술부장으로 학회지 발간과 매년 전국소아과학회 개최, 서울시 월례회 등을 통해 학회의 질적향상에도 기여하였고, 당시 미개발 분야였던 소아내분비학의 보급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대한 소아과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뜻한바 있어 연세대학교 교수직을 그만 두고 1966년 다시 캐나다대학 토론토어린이병원 연구소로 옮겨가서 칼슘대사 비타민 D분야의 대가인 도날드 프레이져(Donceld Fraser) 밑에서 선임연구원으로서 3년 동안 칼슘과 마그네슘대사와 관계되는 각종 호르몬들과의 상관관계 연구에 몰두하여 1972년에는 토론토대학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하와이 호놀루루로 옮겨와서 하와이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슈라이너어린이병원에서 골미네랄연구실험실을 설치하여 계속해서 칼슘, 마그네슘대사와 관련된 호르몬들의 임상적 적용과 각종 골대사 질환에 대한 병인 구명과 치료 및 연구를 1995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동안 많은 의학도들이 이 연구실에서 배출되었고, 한국에서도 정형외과에서 국내 골다공증치료의 선구자가 된 장준섭(연세의대 명예교수) 그리고 한국소아내분비학 발전에 기여한 김덕희(연세의대 명예교수)가 이 연구실을 거쳐 갔는데 필자도 선생의 밑에서 연구하면서 선생의 학문적 열정에 감탄하여 평생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선생은 하와이가 태평양에서 동서양 의학의 교량역할을 하기에 지리적으로 적합하다 생각하여, 그곳에서 동서양 의학 교류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72∼1973년에는 하와이 대학 대학원교육과정 컨설턴트로 일본 오키나와에 파견되어 미국식 임상의학을 일본의학도들에게 전수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당시 한국의사로는 처음으로 일본소아과학회 총회에서 신생아 칼슘, 마그네슘 대사 기조강연을 하였고, 일본골대사학회에서 칼슘과 마그네슘의 상관관계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1970년대 일본에서 새로 발생한 가와사끼병에도 관심을 가져 가와사끼 선생을 직접 하와이로 초청하여, 하와이가 미국에서 가와사끼병을 임상연구하는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가와사끼병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데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슈라이너병원 재직 중에는 한국의 많은 신체장애아들을 위해 당시 의료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무의촌지역(강원도, 전라도, 제주도 등)을 직접 방문하여, 이 아이들을 하와이로 데려와 수술치료를 받게 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선생은 아직도 후배들에게 의학 전수의 교량역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으며, 한국에서 하와이를 방문하는 의학도들에게 미국의학의 현황을 소개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귀국 시마다 모교에 들러 후배 의학도들에게 진로 개척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과 의사에게 있어 인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선생의 소아과에 대한 열정을 본 받아 큰아들 필립(Philip, 하와이 의과대학 졸업)이 소아과전문의로서 호놀룰루에서 개업하며 소명을 다하고 있다.

집필 : 김덕희(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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