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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미켈란젤로의 시에 의한 세 개의 가곡〉
볼프〈미켈란젤로의 시에 의한 세 개의 가곡〉
  • 의사신문
  • 승인 2012.12.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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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01〉

흔히 천재라 하면 몇 가지 특징을 떠올린다. 기인, 괴팍한 성격, 집착, 경제적 궁핍, 요절, 정신질환 등… 볼프는 이들 모두를 가져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외친 인물이다. 그는 들어가는 학교마다 물의를 일으켜 퇴학을 당했고, 잘츠부르크 시립 가극장합창단 지휘자 자리를 얻었지만 직설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1년도 못가서 스스로 사임하였을 정도였다. 휴고 볼프만큼 희망과 절망의 기슭을 헤엄친 작곡가도 없었다.

평소 거의 작곡활동을 하지 않다가 1888년부터 2년 동안 16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할 만큼 순간적으로 창작열을 불살랐고, 한번 작곡에 몰두하면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었고 영감이 샘물처럼 흘러 넘쳐서 하루에 2∼3곡을 작곡할 정도였다. 3개월 동안 `뫼리케 가곡집'을 완성하였고 괴테 시에 51곡, 스페인 시에 44곡과 이탈리아 가곡집들을 쉴 새 없이 써내려갔다. 그의 가곡을 들어보면 이상할 만큼의 구심력과 그 뒤에 광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엄청난 곡들을 쏟아 부었던 해가 지나고 그에게 `침묵의 해'가 찾아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삶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훨씬 전에 죽은 사람이다. 단지 외견상의 죽음이라면 좋으련만 나는 죽고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몸을 지배하는 힘이 내가 살아있음을 내게 증명한다. 이미 가버린 정신의 뒤를 육체가 빨리 쫓아가도록!” 작가에게 있어서 쓸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일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그의 절망은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5년간의 침묵, 이 공백은 그를 손상시키고 상처를 주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그는 오선지와 피아노 사이를 방황하였으나 하나의 선율도 쓸 수 없었다. `죽음'속에 살고 있던 볼프는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내 번뇌엔 이 지상의 어떠한 약도 효험이 없다네. 다만 하나님만이 나를 구제할 수 있어. 내게 영감을 돌려주고 내 속에서 잠들고 있는 신을 불러일으켜 새로이 볼 수 있도록 불을 붙여다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신이라 부르고 당신을 위해 재단을 만들 것이다.” 그런 후 다시 1896년에 중단했던 `이탈리아 가곡집' 제2권을 완성하였다. 1897년 미켈란젤로가 쓴 시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3곡을 썼을 때 발작이 그를 엄습하였다. 1897년 9월 빈의 스베린 박사에 의해 정신병원에 실려 간 볼프는 1903년 2월 생을 마감했다. 젊은 시절에 걸렸던 매독의 결과로 초래된 여러 증상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다. 말년의 볼프가 관심을 끌었던 미켈란젤로의 시는 놀랍게도 회고적인 시들이며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관조하는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일련의 비관주의를 나타내고 있는 체념적인 시들이다. 그가 오랜 고통을 거쳐 얻은 창작의 모든 에너지는 이 가곡에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에 대한 넘칠 듯한 사랑에 기인한 것으로 이 작품이야말로 영원의 시간을 정복하는 걸작 중 걸작이다. 19세기말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을 정점으로 사회적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른 예술과 같이 음악계에서도 불안과 긴장이 다양하고 급진적인 실험을 통해 나타났다. 당시 바그너는 유럽 음악가들에게 거대한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볼프 역시 그의 가곡에서 피아노 반주의 독창이라는 독일 전통을 따르면서도 바그너의 영향인 여러 요소들을 도입하였다.

△제1곡 나는 잠시 지난날을 생각한다 볼프는 말하기를 “그것에 있어서 음악은 울적하게 시작되고… 점차 발전한 기운을 되찾아 마치 미켈란젤로를 존경하는 동시대인에게 그것들이 들리는 것처럼 승리에 찬 팡파르와 함께 활기차게 끝난다.” △제2곡 생명 있는 것 모두 죽어가고 있었던 볼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이 곡은 죽은 자의 노래이고, 영원 앞에서 선 죽은 자의 냉혹한 발언이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사멸에 대한 잔인한 진실을 노래하고 있어 세 곡 중에서 가장 극적인 시이다. 허무의 세계관을 음악이 강렬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선율은 대체로 하행이 많고 끝없이 침잠하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제3곡 내 혼은 나를 만드는 신의 동경의 빛을 느낀다 작별의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인 고백이다. 마치 죽음 이후 세계를 가본 사람처럼 그 자신이 이 지상에 있지 않음을, 곧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임을 친구들에게 고백하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디히트리 피셔-디스카우(바리톤), 다니엘 바렌보임(피아노)(DG, 1976); 한스 호터(베이스), 제널드 무어(피아노)(EMI, 1966); 호세 반담(테너), 마치 피클스키(피아노)(Forlane, 1973)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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