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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in D 단조 Op.47 '혁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in D 단조 Op.47 '혁명'
  • 의사신문
  • 승인 2009.05.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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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화음으로 스탈린 체제를 비판


스탈린의 공포가 극한에 달했던 1937년. 체제 비판적인 통렬한 냉소주의자였던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4번의 공연을 취소해야 할 만큼 공산 체제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교향곡 제5번의 초연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여 한동안 공산정권의 공포를 면할 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에는 `타당한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응답'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교향곡 제5번은 스탈린의 공포에 굴복하여 현실에 타협한 작품인가? 아니면 그야말로 `타당한 비판'에 `소련 예술가'로서 응답한 것인가?

작곡 당시인 1937년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의 비밀경찰로부터 취조를 받아야만 했다. 그는 이미 몇몇 친척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숙청당한 상황을 목격한 후였으며 그 와중에 제5번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극도로 섬세하고 민감한 감성을 지닌 그가 이러한 공포 분위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곡은 그의 최후진술일지도 모를 작품이었던 것이다.

초연당시 청중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 같았다. 기립박수는 실로 `광란' 그 자체였다. 이는 무분별한 숙청에 대한 계산된 반항인 것 같았다. 초연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지휘자 쿠르트 잔데르링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마도 제5번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가 1937년 이후 평생 자신의 음악 테마로 마음먹은 `반스탈린주의'를 처음으로 청중들에게 발표하게된 계기였을 것이다. 첫 악장이 끝나고 몇몇 음악을 이해한 청중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의아해하며 연주회가 끝난 뒤 모두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초연의 대대적인 성공은 당시 대중이 갖고 있었던 느낌을 충실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제1악장 : Moderato-Allegro non troppo-Moderato_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서두 부분에서는 청중이 당시 사회 분위기인 정치적 공포감을 표현하고 있다. 급하지 않게 진행되다 갑자기 등장하는 폭풍과도 같은 사악한 무리들의 겁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음악은 다시 온화하고 다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청중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다시 등장하는 악마의 무리들이 공격을 시작하고 그 폭력성은 절정에 이른다. 만일 사악한 무리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을까를 말하는 진혼곡의 소리가 들려오게 된다.

제2악장 : Allegretto_ 영혼이 없는 사악한 무리들의 강한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기계적 인간들을 표현하고 있다. 바이올린 솔로의 등장은 이러한 무리의 군화에 짓밟혀 신음하는 어린 아이들의 절규이다. 플루트가 연주하면서 그 절박함은 다시금 강조된다. 사악한 무리들의 행진이 시작되면서 결국 악한 무리들의 승리를 암시하면서 끝난다.

제3악장 : Largo_ 가장 아름답고 수려한 멜로디의 악장이다. 주인공은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이면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갈 한 남자일 수도 있고, 내일이면 처형당할 불쌍한 영혼일 수도 있다. 마지막 밤을 집에서 보내는 남자 곁에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고, 아내의 따뜻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대신 그 남자는 깊은 원망을 갖는다. 왜 내가 희생을 당해야만 하는가! 첼로 독주는 청중의 가슴을 적시고 클라이맥스를 지나 영웅의 격한 감정은 조용히 사라진다.

제4악장 : Allegro non troppo_ 폭풍의 기세 속에 영웅은 승리한다. 처음에는 느린 악절의 등장으로 어떤 전조를 나타내다가 전쟁을 예견한다. 드럼과 저음 호른 연주가 뒤를 잇는다. “너희들 마음대로 내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는 행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다. 단지 강한 인간의 의지인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 에브게니 므라빈스키(지휘), 레닌그라드 필(Melodya, 1978); 키릴 콘드라신(지휘), 모스코바 필(Melodya, 1964); 로제스트벤스키(지휘), 소련 문화성 오케스트라(Melodya, 1984); 세미온 비쉬코프 (지휘), 베를린 필(Philips, 1986);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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