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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카의 유지, 시간·돈 그리고 의지 필요
올드카의 유지, 시간·돈 그리고 의지 필요
  • 의사신문
  • 승인 2012.10.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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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검사 유감 <하>

적어도 10년은 더 탈 예정이니 중간에 소모성 부품들도 한 번씩은 다 갈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오래된 차들의 유지 문제는 결국 시간과 돈을 포함하는 의지의 문제다. 애착의 문제다. 이번 검사에서 떨어진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통과시키고 엔진을 뽑아서 이식하고 파트들을 재정리 할 것이다.

브레이크가 밀리는 것은 캘리퍼나 마스터 실린더를 다른 차에서 가져오거나 해서 정리할 것이고 차의 도색도 다시 칠하면 된다(차주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아하던 차라도 빨리 없앨 수 밖에 없다).

현실적인 문제라면 검사가 통과 안되면 대구에 차가 있을 경우 몇번이건 내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에는 고쳐야 하는 목록을 적은 한없이 긴 리스트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어떤 문제들은 포기한 채 그냥 타고 다니게 되다가 버리거나 박제처럼 될 것이다.

검사나 보험 , 세금 같은 것들은 생각해보면 일종의 필터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오래된 차들은 더 오래 도시를 굴러다닐 것이고 사람들이 새로운 차를 타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웬만큼 그 차를 좋아하지 않는 한 차들은 20년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 내구성이 약한 구조의 차라면 더욱 존재하기 힘들다. 컬트의 리스트에 올라간 차들이라면 존재하기는 쉽다. 그리고 메이커들은 오래된 차들의 생존 통계 같은 것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워낙 좋은 차들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을 더 많이 유혹하고 있지만 당장은 사지 않다가 고칠 것이 어느 정도 이상 늘어나면 결국은 포기하는 조건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필터들은 메이커에게도 필수적인 요소다. 차를 너무 오래타면 안되니 이런 필터라도 있어야 한다.

얼마전 권규혁 님(예전에 조선일보에 풍딩이라는 이름으로 일러스트 만화를 연재)의 페이스북에 보니 s124(w124의 왜건 버전)를 하나 구입하면서 e34 530을 정리한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의 최근 위시리스트는 m30 엔진의 e34와 w124라고 답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차종들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차들이라고 답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어정쩡한 자동차광들은 이 시기의 차들을 좋아한다. 그나마 유지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고 완전 기계식 장치의 차들을 기화기부터 시작하여 거의 아트 수준의 수리와 복원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차들은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몇 년이 지나면 검사대 위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하고 고칠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주인들이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의 사랑을 받는 소수의 차량(대우의 에스페로와 르망 임팩트 스쿠프 터보 같은 차들도 이미 몇 명이 복원 노력을 하고 있다)이나 컬트차량들은 아마 오랜 세월을 살아 남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만해도 경제적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던 이번 여름에는 차의 문짝이나 기타 모든 파트를 다 갖다 버렸다. 이유는 잘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10년간 사용 안한 파츠들을 모두 버렸으니 잘 한 일이지만 예전에는 손수 분해해 가면서 모은 파츠들이었다. 다 버린 것 같은데 아직 엔진도 헤드도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변속기와 케이블들이 한참 남아있다. 젠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컬렉션들이 그렇듯이 끝에 가면 조금은 허망하고 더 세월이 지나면 그 주인과도 점차 인연이 멀어진다. 필자는 M42렌즈와 카메라 등을 열심히 연구하고 모은 적이 있었으나 몇 개를 제외하고는 찍어 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구형과 신형을 포함한 칼짜이스 렌즈를 이해하게 되었으나 열심히 찍지 않았던 것이다. 처분하고도 아직 한바구니 정도 남아있다.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영화 `시민 케인'이 떠오른다. 그 많은 컬렉션들은 전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케인에게 정말 중요한 컬렉션은 엉뚱하게도 어릴 때 타고 놀던 썰매의 이름 로즈버드였다.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간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필자는 검사가 탈락하자 차들을 모두 갖다 버릴 것 같던 기분에서 벗어나 다시 복원해서 타고 다니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도색도 하고 부속도 조금씩 사서 모으고 할 것 같다. 사실 이런 작업보다는 복원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차가 이 정도라면 공부를 차분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요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컴퓨터 해커였던 시절의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은데 100여권의 책과 300개 정도의 결정적 아티클을 읽는 것으로 복습 과정이 시작될 것 같다. 수학도 다 잊어 버리기 전에 몇권 정도 풀어보고 물리와 전자공학 책도 읽어보고 싶고 인문학 책도 결정적인 텍스트 몇 개는 더 읽고 싶다. 이 작업이 시간의 블랙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안윤호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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