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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을 인간생태학에 결부시킨 - 김두희
환경보건을 인간생태학에 결부시킨 - 김두희
  • 의사신문
  • 승인 2012.10.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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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을 인간 생태학에 결부시킨 선각자

김두희(金斗熙)
성운(惺雲) 김두희(金斗熙)는 1934년 경북 문경군에서 소농 김동훈과 채홍달의 외아들로 태어나 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선비인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1.4후퇴 때 조부마저 여의고 고독한 초년을 보냈다. 16세에 대구 경북중학교와 경북대사대부고를 졸업하고 1954년 경북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했다.

선생은 대학 졸업 후 갈고리 손이 된 어머니를 보며 개업하여 이웃의 건강을 함께 하는 작은 이상향(理想鄕)을 그렸다. 하지만 더 큰 꿈을 꾸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모교 예방의학 연구실을 찾았고, 당시 이성관 주임교수의 환영을 받았다.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에 진학하자 본격적으로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장티푸스 건강보균자 색출(1963)을 시작했다. 1964년 육군 대위로 임관한 선생은 곧 위수지구에 크게 유행한 괴질의 철저한 역학조사로 관련부서를 동원, 단기 근절에 성공했다. 이어 이듬해에는 월남전 참전을 명받았다. 당시 유일한 예방의학 장교로서 그 사명을 다했다. `말라리아와 페스트가 곧 우리의 적'임을 직감하고 육군 의무감에게 검역부대 설치건의문을 띄우는 한편, 유해동물(곤충, 파충류 등)을 채집하여 열대의학(생물)관을 만들어 현지장병들의 보건교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68년 모교 전임강사가 되어 교수로서 첫 걸음을 인간생태학개념을 도입한 환경보건학 강의로 시작하였다. 선생은 건강보균자 색출사업(1973)을 계속하였고, 10년 만에 3배로 늘어났음을 밝혔다. 이후 보균자 색출사업이 보건소의 기본업무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선생은 모든 것이 환경과 결부된다며 1960∼70년대 산업급성장시대에 금기시 되었던 `공해'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 매체를 통해 경고하는 등, 선각자로서의 안목을 보였다. 이에는 학문적인 통찰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한 용기도 필요하였다. 공해문제에 대한 `인간생태학개념' 도입은 USIS강연 시(1970) 선생의 입을 통해 대구지역에서 앞장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선생은 현실적으로 열악한 작업환경에 의한 직업병 예방활동에도 뛰어들었다. 그 때 선생의 연구결과는 약 90%가 기사화되는 등 경북대에서의 인간생태학 관련 국제심포지엄(1980)의 계기가 됐다.

한편 사회사업 전개를 꿈꾸며 복지학 보수(補修)를 위해 유학하여 미국과 일본의 시설을 시찰한 후 국책변화를 건의하였고, 교통신호체계나 장애자를 위한 횡단보도 개선 등의 실효를 거두기도 하였다. 1992년 리우(Rio)의 지방의제를 우리 정부에서 채택한 직후 1995년 경상북도의 환경선언문을 기초할 때 보호와 개발의 동시수행을 위해 처음으로 기술한 `환경 친화적 개발'이란 용어가 현실사회에서 환영을 받아 오늘날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사이면서 문인이 된 선생은 논문으로 발표하지 못한 부분을 사회에 일반 논설(論說)로 발표하곤 했다. 경상북도지방 의제21 추진협의회를 10년 동안 이끌면서는 오늘의 이슈인 자연환경 보호운동에 문인들의 역할을 집중시키는데 좋은 환경문학 작품집 -살기 좋은 내 고향을 위한 솔바람 맑은 소리- 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제3기)으로 추대되었던 선생은 `환경이 나를 만든다.'라 상재(上梓)한 희수문집을 내놓았다.

보건대학원 설립(1980)의 꿈을 한수(漢水)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이성관을 도와 이루었고, 원장직을 4년간 수행하였다. 1995년부터 6년간을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장과 의학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1996년에는 경북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고, 교직생활 중에는 석·박사 93명과 예방의학 전문의 23명 등의 보건인력을 양성하였다. 2000년에 대한보건협회로부터 보건대상 수상, 2011년 홍조근정훈장 수훈, 그 외의 많은 상과 표창이 있고, 2004년에는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정년 후에도 후학을 위해 풍족하지 않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호를 따서 아호당장학회를 창설하고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는 선생은 가난하지만 아직 우직한 선비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

집필 : 이종영(경북의대 예방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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