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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제12번 F장조 작품번호 96〈아메리칸〉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제12번 F장조 작품번호 96〈아메리칸〉
  • 의사신문
  • 승인 2012.10.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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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193〉

드보르자크는 체코 프라하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미국의 백만장자 자네트 서버 부인이 설립한 뉴욕음악원 교수직 제안을 수락하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분주한 대도시 뉴욕과 광활한 신대륙의 대자연으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게 된다. 한편 음악원 교수로 재직할 당시 주로 뉴욕 동부 17번가 음악원근처에 머물면서 작곡과 강의를 하였다. 그는 흑인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흑인 영가의 편곡자이자 가수인 해리 사커 바레이를 집으로 초대하여 흑인 노래를 듣기 좋아하였다. 이러한 흑인 영가에 대한 드보르자크의 관심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와 첼로협주곡과 이 현악사중주에서 보헤미아 향수에 아메리카 흑인과 미국 인디언 특유의 음색이 가미되어 독특한 색채를 띠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남긴 13곡의 현악사중주 중에서 가장 짧은 곡이지만 형식과 내용에서 완벽한 구조로 짜여있으며 흐름이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이 각 악장별로 설득력 있는 선율과 리듬으로 실내악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1893년 여름 보헤미아에 있던 가족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모두 함께 보내는 첫 휴가를 아이오아주에 있는 보헤미안 이민촌 스필빌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시기 드보르자크는 무척 행복한 기분으로 작곡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이때 탄생한 작품이 이 현악사중주였다. 당시 그의 작곡과정을 지켜보았던 친구 크바르지크는 당시의 드보르자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893년 6월 5일 화창한 날 드보르자크는 이 작은 마을에서 지내면서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였고 마을의 경치를 보면서 그의 고국 체코와 고향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는 이 마을에 자리를 잡자마자 곧바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난 6월 8일 벌써 현악사중주 F장조의 제1악장에 착수했다. 그 다음날 아침 제1악장이 완성되자 그는 곧 제2악장을 쓰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제3악장을 써 내려갔다. 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며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게 되어 저는 정말 만족스럽습니다.'라고 썼다.” 마치 드보르자크는 이미 완성된 형태로 머릿속에 있던 음악을 그대로 쏟아내 듯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현악사중주 제12번을 사흘 만에 완성했다. 그는 초고를 완성하자마자 곧이어 각 악기별 정서에 들어가서 6월 23일 악기별 파트악보와 함께 스코어를 정리한 후 빨리 이 작품을 귀로 듣고 싶어 코바르지크와 그의 자녀들과 함께 직접 연주를 하였다고 한다.

〈아메리칸〉이라는 제목은 드보르자크 자신이 명명한 것은 아니고 그가 자필악보의 표지에 `아메리카에서 작곡한 두 번째 작품, 현악사중주 F장조'라고 쓴 것을 훗날 사람들이 〈아메리칸〉이라고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부제이외에도 흑인을 칭하는 `Nigger'라는 별명이 있다. 이는 5음계를 기초로 한 흑인영가(nigro spirituals)풍의 선율이 많이 나타나 이국적이고 흑인영가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제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자작나무 숲속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 조용한 트레몰로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스필빌의 아름다운 숲과 강을 바라보고 있는 드보르자크의 감흥이 그대로 베어 나오는 듯 하다. 이 트레몰로는 전 악장에 걸쳐 약간씩 변형된 형태로 이 작품의 바탕에 깔리면서 스필빌의 상쾌한 풍경을 연상시키고 있다. △제2악장 Lento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스며있다. 깊고 풍부한 감정 표현과 솟구쳐 오르는 듯한 화성, 고음역에서의 찬란한 빛을 내품는 첼로의 매혹적인 음색은 그 자체로 음악에 빠져들게 한다. 그의 교향곡 제9번 제2악장과 매우 흡사한 느낌을 주며 향수를 자극한다. △제3악장 Molto vivace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강박의 위치가 바뀐 독특한 리듬, 다이내믹과 함께 산책로에서 발견했다는 이상한 새의 울음소리가 바이올린의 높은 선율로 표현되어 더욱 밝고 상쾌한 인상을 준다. △제4악장 Vivace ma non troppo 활기차고 명쾌하게 시작한 후 스필빌에 있는 교회 오르간의 코랄 선율이 조용히 등장하는 것에 이어 부점의 경쾌한 리듬과 강렬한 선율로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스메타나 현악사중주단(EMI, 1966); 야나체크 현악사중주단[Decca, 1963]; 알반 베르크 현악사중주단[EMI, 1989]; 하겐 사중주단[DG, 1986]; 줄리아드 현악사중주단[CBS, 1967]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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