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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위즈 박순백 부사자오가 조경철 박사
드림위즈 박순백 부사자오가 조경철 박사
  • 의사신문
  • 승인 2009.05.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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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포르세를 기다린 사람들

지난번에는 포르세의 케이맨S에 대해 적었다. 케이맨에 필이 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격은 정말 비싼 편이다. 1억원이 조금 넘는다. 필자같이 차량을 그냥 얻다시피 하는 사람에게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 로또를 기다리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갑자기 이런 때 떠오르는 사람이 박순백 씨다. 예전에 PC 통신 초기부터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다.한컴을거쳐요즘은드림위즈부사장으로있다. 개인 웹사이트는 (http://drspark.dreamwiz.com/htmls/whospark.htm)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웹사이트에 보면 2008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가 있다(http://drspark.dreamwiz.com/cgi-bin/zero/view.php?id=ski_talk&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1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133) 읽다보니 필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이유는 필자가 강한 DIY성향을 갖고 비싸지 않은 명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다닌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어떤 문화장난감 아이콘을 좋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법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인터뷰에 나오는 많은 내용은 재미있는 것들이지만 너무 물질적으로도 보인다. 어떤 제품의 이미지나 퀄러티를 좋아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아이콘이 되어버리는데 소비자는 물건을 갖고 싶어서 물건을 사거나 갖는 것으로 일종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 이면에는 그 만큼의 희생은 따른다.

박순백 씨의 문화전략은 상당히 재미있다. 오랫동안 즐기기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일곱 가지든 열 가지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본업인 일에서도 평균나이 30세 사이에서 목소리를 지켜낼 수 있는 비결은 `남보다 먼저 시작하고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이다. 좌우명 또한 `질긴 놈이 이긴다'다.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남보다 먼저 시작해 더 질기게 노력한 결과 지금의 성취를 이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무엇이든 10년 이상 버티면 같은 선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가만히 있어도 그 분야의 최고로 등극하는 이치를 경험으로 깨달았다.”

“또 남들이 하지 않을 때 먼저 시작해서 `게임의 룰'을 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분수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박순백 씨는 매니아로 장수하게 하는 것은 선을 지킬 줄 아는 균형감각이라고 한다. 한 분야에 빠지면 누구나 분수를 모르고 `지르게'마련이다. 결과는 뻔하다. 반면 그는 자신이 가능한 선을 분명히 그어놓고 그 범위 안에서만 기를 쓴다. 그가 포르세를 손에 넣기 위해 20년의 시간을 투자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선을 지킬 수 있어야 진정한 마니아라는 것이 지론이다. 이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필자의 장난감놀이와 많은 부분이 겹치지만 잘 지치기도 하고 흥미를 잃기도 하다가 다시 빠져들곤 하는데 결국 필자가 `질긴놈'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다. 20년 가까이 별러서 포르세를 샀다. 산 이유가 재미있다.

“그는 포르세를 탄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고 한다. 스포츠카 마니아는 더더욱 아니란다. 그가 포르세를 타는 것은 그저 `차를 타는' 것이 아니다. 장인정신과 스포츠 드라이빙의 철학·도전·성공, 그리고 대를 잇는 집념 등 포르세가 가진 상징을 타는 것이다.”

포르세에 대한 꿈을 불을 지핀 사람은 천문학자인 조경철 박사. 조 박사에게 포르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직후 포르세를 사기 위해 적금을 들었다고 한다. 월급 이외의 수입은 모두 털어 넣는 통장이었다. 통장 겉면에 `포르세'라고 써두기까지 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년 동안 꼬박 모아 1억원을 만들었고, 드디어 2000년 포르세를 샀다.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 포기할까 봐 보닛(bonnet)에 붙어 있는 방패 모양의 문장을 구해 안방 문에 붙여놓고 드나들 때마다 그것을 보면서 주문 아닌 주문을 외웠다. 이렇게 장만한 포르세이니 애정도 각별할 수밖에…. 벌써 `클래식 카' 대접을 받는 연식이지만 주행거리는 채 5만㎞를 넘지 않았다. 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차를 아껴 외형과 성능도 출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포르세를 운전할 때마다 20년의 꿈을 실현했다는 기쁨이 동승합니다. 포르세를 하루 빌려 타는데 100만원 정도 들지요. 그래서 포르세 타는 날은 100만원을 번다는 느낌도 들어요”

포르세는 절대고독을 즐기며 내면과 만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포르세를 몰고 자주 가는 곳은 민통선 방향의 북쪽. 강변도로를 타고 북으로 달려 왕복 9시간 거리를 한 서른 번쯤 혼자 오갔다. 그 중 절반은 혼자였다.

역시 다른 사람이다. 필자 같으면 상징들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정 타고 싶으면 고물 수준의 한 대를 사서 복원하려고 덤빌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는 상징이 아니라 필이 꽃힌 토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분이 포르세를 샀다는 것은 흥미롭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이런 방법을 권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무리하면 바로 타고 다닐 수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들은 여기저기 많기 때문이다.

필자 같으면 프라이드에도 동기부여를 하고 각별한 차로 타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마니아도 있다는 것은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순박해 보이는 문화전략은 꽤 유효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에 메이커 측에서 보아도 정말 특별한 고객임에 틀림없고 전염력도 강하다.

필자가 Cayman S에 대해 다시 이해하게 된 것은 박순백 씨의 2009년 시승기를 읽고 나서였다. 이 글은 그의 홈페이지에 실려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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