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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을 다녀와서 〈상〉
서울시의사회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을 다녀와서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2.10.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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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박상호 부회장

욕심과 집착의 속세를 잠시 내려 놓고 설악으로

“나는 산이 좋더라 /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 나는 산이 좋더라 / 멀리 동해가 보이는 /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 전교준 `설악 얘기' 중 첫 머리

1958년 까까머리 이 고교 2년생은 학교수업 마저 팽개치고 설악등정을 마친 후, 참을 수 없는 당시의 감흥을 이렇게 시로 토해냈다. 설악은 늘 이런 느낌으로 내게도 다가오곤 한다.

주말 저녁 부터 비가 온단다. 그리곤 산행 당일인 일요일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단다. 몇년전,벼르고 별러 공룡능선을 간다고 1박 2일 일정으로 설렘반 걱정반의 심정을 안고 설악산을 찾았건만, 폭우로 새벽산행 40여분 만에 도중 하산한 기억이 떠 올라 속상하다. 최근 빗나간 예보로 기상청이 홍역을 치루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홍역을 안 치루어도 좋으니 제발 예보와 다른 화창한 날씨를 기원하며 저녁식사 후 만사 제치고 10시경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들려 노력하면 할 수록 더 말똥해지는 의식! 평소 12시, 1시에 잠들던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더구나 그 명성만으로도 가슴을 설레케 하는 12선녀탕 등정을 생각하니, 국민학교 시절 선녀와 나뭇꾼의 이야기에 흠뻑 취했던 기억과 함께 선녀들의 아름다운 목욕 씬이 눈앞에 아른거려 더 잠이 안온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코 베가도 모른다는 분도 계시지만, 나도 이제 솔찬이 나이가 들어 50대중반을 넘어선 중늙은이 수준임에도 소풍 전날의 설렘은 여전하다. 그래 고생말고 수면제 한알 먹자. 이것이 나이먹어 깨닫게 되는 지혜다. 복용 30분이 채 안되어 꿈속에서 먼저 화창한 설악의 12선녀탕 계곡으로 치내달았다.

새벽 4시반! 스마트폰의 익숙한 알람소리에 비몽사몽간에 스위치를 끄고 다시 꿈속으로 직행하려는 찰나, 오늘 산행있지! 라는 순간의 의식이 드는순간 팽팽한 활 시위을 떠난 냥 내 몸은 반사적으로 튕겨져 일어났다. 즉각 창문을 열어 제꼈다. 아직 칠흙의 어둠이 내려 앉은 탓으로 하늘의 청정상태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제부턴 몸과 마음이 분주해진다. 뭔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12선녀탕 산행이라 좀 더 몸을 정갈히 하라는 어떤 존재의 강요를 받는듯 하여 평소보다 샤워시간이 길어진다. 오랜세월 욕심과 집착으로 두터워진 속세의 때가, 12선녀탕의 맑은 계곡물로 조금이나마 세척이 된다면 오늘의 산행은 그것으로 만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승폭포에서 단체사진.
새콤한 사과와 한 입에 쏙 들어 갈만한 호두알 만한 앙증맞은 토마토 몇개를 싸고 물 2000cc를 넣었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지만 고산의 다양하고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대비하여 셔츠도 몇벌 챙기고 여분의 양말과 스패츠, 고어텍스 바람막이 상의와 하의, 접으면 주먹만한 얇은 바람막이 한벌 더, 거기에 비옷 까지 챙기다 보니 배낭이 꽤나 묵직하다. 몇년전 조양산에서 갑작스런 소낙비로 인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입술까지 파래지며 벌벌 떨던 악몽이 되살아나 꾸역꾸역 옷가지를 자꾸 챙기게 된다.

모임 장소인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10여분 전에 도착, 오늘 준비된 4대의 차 앞유리에 나열된 이름을 확인하니 1호차에 배정이 되었다. 대개 1호차는 연배가 있으신 분들과 임원분들이 주로 타시는데 내가 벌써 1호차에 승차 할 연배가 되었단 말인가?

1호차 탑승할 분들의 면면을 보니 역시 예상대로 늘 1호차 지정이신 이상석 고문님을 비롯하여 서윤석, 박홍구, 김진민, 이재일 전임 산악회 회장님들과 나현 전 서울시 의사회장님, 그리고 현 집행부 박병권 회장을 비롯한 연재성 총무, 유승훈 팀장이 탑승하고 있었다. 주변에 계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환한 웃음을 머금은, 참으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모처럼 만난 수원서 개업하고 계신 김세헌 선생님.

새벽 6시가 좀 넘어 88도로로 진입한 차는 회색빛으로 낮게 드리워진 새벽 서울하늘을 등지고 서울 - 양양간 고속도로를 기세 좋게 거침없이 질주하였다. 가평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가장 늦게 출발한 4호차를 기다린후 다시 숨가삐 달려, 약 2시간 조금 지난 8시30분경 장수대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설악까지 2시간여 만에 단숨에 달려오다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간단한 식전행사 후 출발이다.

작년 의사산악회의 설악산 산행시에는 한계령을 출발하여 귀때기청봉과 대승령을 거쳐 장수대로 하산하는 코스를 경험했던 나는 대승령까지의 코스는 좀 낯이 익었다. 약 30여분간의 순탄한 산행길을 지나 비교적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숨을 고르자니 좌측에 눈부신 하얀 물줄기가 저 멀리 눈에 띈다.

벌써 대승폭포? 맞다!전날 내린 비로인해 풍부한 수량을 품은 폭포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88미터라는 큰 낙차를 이용하여 수직 절벽아래로 그대로 내리 꽂힌다.

거리가 멀어 굉음은 안들려도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햇빛에 반사되며 은가루를 뿌려 놓은듯, 또 한폭의 긴 모시 천조각이 널려 있는듯한 장관은 오늘 산행한 모든 분들에게 행운을 선사한다. 이 장엄한 자연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과 달리, 풍선처럼 부풀어만 가는 가슴속에는 폭포수의 시원한 물줄기가 들이찬다. 갑자기 내 마음도 넓어짐을 느낀다.

대승이라는 청년과 저승의 어머니와의 애뜻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폭포, 그 생명을 구해준 한가닥 밧줄 같은 폭포수를 바라보며 새삼 어머니와 자식간의 모진 사랑이 울컥 느껴진다.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가히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라 뽐낼만 하다. 가질 수 없으면 우러러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이라니, 난 순간 행복해진다.

이 멋진 풍광앞에 순간을 영원히 담을 추억의 사진을 찍기위해 우리 일행은 최고의 사진사 신동엽 선생님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웬걸? 신동엽 선생님은 덜렁덜렁 맨 몸으로 올라온다. 할 수 없이 나의 옛날 디카로 막사진이라도 일행분들을 담아두고 떠나려는 순간, 머리통 만한 사진기를 메고 이관우 선생님이 올라 오신다.

◇설악의 정취를 느끼며.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으시며 “이번엔 꼭 홈피에 올리겠습니다”라며 전문가용 사진기에 우리 일행의 순간의 멋진 추억을 심어준다. 옆을 보니 25년전 백제병원서 인연을 맺은 도봉구 김운석 선생님이 눈에 띄어 모처럼 같이 한 컷 찍는다. 내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내 눈엔 왜 늘 20∼30년전 그 모습 그대로 일까?

대승폭포에서의 인증샷을 날리고 설악이 내뿜는 피톤치드 가득한 맑은 아침 산공기를 마시며 다시금 오르기를 계속한다. 회원 한분이 어떤 꽃에 큰 카메라를 들이대며 무아지경 속에 촬영하시는 모습이 보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는 금강초롱! 그 보랏빛 형형한 색깔은 언제보아도 귀티와 도도함이 줄줄 흐른다. 올라가다 보니 이곳이 군락지인지 도처에 금강초롱들이 나름의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었다. 뽐낼 만한 자태는 뽐내도 된다. 인간 세상에서도 이 이치는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수령이 꽤나 됨직한 전나무, 소나무, 잡목들이 새파란 하늘을 향해 흐트러짐 하나 없이 쪽 빠진 고고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산의 경사가 심해지며 나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거칠고 가뿐 숨소리가 들려온다. 심장이 터질듯 해지며 숨가쁨이 절정에 다다를때 난 새삼 살아 있음을 느낀다.

속세의 찌든 불순물을 토해내며 숲속이 내게 주는 신선함을 마시면서 한없이 주기만하는 말없는 숲속이 새삼 고맙다. 가쁜 숨을 내쉬며 거의 한계에 도달할 즈음, 전방을 쳐다보니 드디어 1210m의 대승령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힘이 돋으며 속도가 빨라진다. 역시 눈앞의 목표가 보일때 인간의 능력이 배가 되나보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회원분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들을 들고 계셨다. 이재일 명예회장님이 따라 주시는 정상주 한잔을 완샷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독주라서 그런지 순식간에 온 몸의 실핏줄로 퍼진 알콜기운이 짜릿하다. 내내 앞뒤로 같이 올라온 김세헌 선생님은 하산 후의 황홀한 막걸리 맛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정상주 완샷을 마다 하신다. 대단하시다.

잠시 휴식 후 12선녀탕을 향해 서두른다. 이젠 내리막 능선길 뿐일 줄 알았더니 곧 바로 오르막 산행으로 이어진다. 쉬었으니 수고를 아끼지 말라는 설악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양 옆으로 잘 생긴 소나무, 전나무들이 이어지고 발밑에는 금강초롱 군락을 비롯하여 다양한 야생화들이 천지에 깔려있다. 이름을 못불러 주어 꽃 보기가 민망하고 아쉽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예전부터 야생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늘 미루어 왔는데, 차제에는 의사신문에 연재되는 신동호 양천구회장님의 야생화 연재를 더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봐야겠다.

적당히 숨이 가쁠때쯤 다시금 내리막이 시작되었고 조금 더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안산으로 가는 길목은 출입금지로 되어 있고 선녀탕으로 가는 산길이 너덜길로 쭈욱 이어진다. 약 1시간 반 정도를 싱그런 숲이 제공하는 맑은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시며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다 보니 어디선가 졸졸졸 반가운 계곡 물소리에 귀가 솔깃해 진다.

박상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중랑·박상호소아청소년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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