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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 5000호 발행 기념사 - 발행인·임수흠 서울특별시의사회장
의사신문 5000호 발행 기념사 - 발행인·임수흠 서울특별시의사회장
  • 의사신문
  • 승인 2012.09.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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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벽비거'의 자세로 1만호 향해 새롭게 웅비할터

임수흠 회장-발행인
존경하는 의사신문 애독자 여러분!

2만8천여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원들의 맑은 눈과 밝은 귀가 되어온 의사신문이 지령 5000호를 맞이하였습니다. 전문 일간지가 아닌 민간단체의 기관지로서 그 지령이 5000호에 달했다는 사실은 의료계는 물론 한국사회 전반에 소통의 큰 족적을 남긴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의 애정 어린 질책과 응원이 없었다면 감히 그 지난한 역사는 기록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직간접으로 많은 도움을 주시며 거쳐 가셨던 여러 선후배 회원님들과 직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과 축하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국 사회에서 신문의 역사는 오욕과 영광이 교차하는 근현대사 그 자체였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등의 현실 문제는 물론 한 시대의 문화를 일궈내는 일에 이르기까지 신문에 부여된 소임이 다양했던 만큼 곡절 많은 역사를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사신문' 또한 당당히 그 한 자리를 차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치적을 축하하고 전통을 자부하기 앞서 그에 걸 맞는 역할과 사명을 다했는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성찰의 순간이 곧 `의사신문'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고대 송나라 때 편찬된 선화화보(宣和畵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의 귀에 익은 일화가 등장합니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 무제가 불교를 좋아하여 절에 불화를 그리게 했는데, 장승요(張僧繇)라는 화가가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자 그 용이 홀연히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곧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다`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고사성어를 빌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곤 합니다. `의사신문'의 지령 5000호에 딱 들어맞는 옛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헌데 화룡점정 뒤에는 또 하나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파벽비거(破壁飛去), 즉 `벽을 부수고 날아가다'라는 뜻을 지닌 성어입니다. 장승요라는 화가가 눈동자를 그려 생기를 불어넣자 용이 자신을 가두었던 벽을 박차고 비로소 비상한 사연이 거기에는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귀하게 되는 경우 이를 빗대어 우리는 파벽비거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합니다. `의사신문'의 앞날은 바로 이 파벽비거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할 것입니다.

더 이상 그림에 불과한 용이 아닌 구태를 스스로 깨고 웅비하는 `의사신문'을 우리 회원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관계자들 모두는 잘 인지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날 신문이라는 공적인 지면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공론장 위에서 우리는 생각의 차이를 견주고 또한 지혜를 모아나가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언쟁과 토론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언뜻 사회를 갈등관계로 양분시키는 매체로 신문이 오인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뒤집어보면 신문만큼 한 사회 혹은 집단의 사고와 가치지향을 건강하게 소통시키는 매체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령 일만회를 향해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의사신문은 충실한 본연의 역할에 보태 의사들의 진정성을 알려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건전한 인식변화를 위한 노력과 의사들의 윤리의식 함양에도 분명한 역할을 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의권수호'라는 서울특별시의사회의 근본적인 이념에도 충실히 부합되는 역할을 해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영국의 대표 신문 `더 타임즈'는 나라 다스리는 사람들이 읽고, `가디언'은 나라 다스리는 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읽고, `데일리 메일'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들의 아내가 읽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나라가 옛날처럼 다스려져야 된다는 사람들이 읽고, `파이낸셜 타임즈'는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읽고, `더 선'은 3면의 벗은 여자가 예쁘면 누가 나라를 다스리든 상관없는 사람들이 읽는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의 `의사신문'은 어떤 이들이 읽는 신문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그때까지 `의사신문'의 이타적인 행위를 위한 환골탈태는 거듭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사신문'을 사랑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더욱 따끔한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임수흠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의사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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