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한국 의료 기록자·조언자 역할 충실
반세기 넘게 한국 의료 기록자·조언자 역할 충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2.09.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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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 지령 5000호 기념 특집호 - 5000호 발행까지의 발자취

52년 5개월간 대한민국 의료의 기록자로 의권 수호의 대변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신문의 창간호(1960년 4월 15일자)와 지령 5000호(2012년 9월24일자) 지면 1면
5000호까지의 연혁 - 1000∼5000호 호별 소개

의사신문은 대한민국 현대 의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의료계 최초 협회가 발행하는 신문으로 1960년 4월 창간, 1962년 의료면허신고제를 반대하는 대규모 의권 투쟁부터 2012년 세계 적 수준의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한 보건의료 R&D 및 글로벌 메디컬 허브로서의 발판 마련 등 매 순간 의료계와 함께해 왔다. 한국의료 선도자의 한축으로서 그리고 의료사의 기록자로서 의사신문이 보도해왔던 각 호(1000·2000·3000·4000·5000)의 주요 이슈들을 요약·소개한다.〈편집자 주〉

 ■1972년 7월 10일 지령 1000호

한국전쟁 후 폐허위에 어렵게 현대의학이 뿌리내린 1960년 4월 15일 `의사신문'이 창간됐다.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은 궁핍한 환경으로 인해 국민들이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개발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기였다. 정부도 위생관련 법규, 의료법 개정 등 각종 법적 정비를 진행했지만 `보건의료'의 투자는 이뤄지지 못했다. 의사신문은 국민의 질병과 건강을 바로잡기 위해 국민의 `건강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또한 의사들을 옥죄는 의료법의 부당성 시정을 위해 꾸준히 투쟁하고 의권을 옹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1962년부터 주2회 발간(월·목)으로 `의사'들의 대변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62년엔 의사에게 면허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정부에 대해 `의사면허세 파동'이라는 제목으로 “의사에게 면허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히며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정부가 다음해에 의사 면허세를 철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1965년에는 `의료유사업자법안과 보건소법 개악 반대'를 하는 의사들의 의권투쟁의 현장을 신속하고 빠르게 회원들에게 전달했다.

이런 `의사'의 의권과 `국민'의 건강 정보를 위해 달려온 의사신문이 발행 12년만인 1972년 7월 지령 1000호를 발간, △결핵 △출산 △헌혈 △기생충 대책 △나병 대책 △의료제도 △의사단일법 △진단서 발급 △의약분업 △의료수가 △보험제도 △의약품부작용 △특진제 등 당시 의료계의 현안을 재조명하고 대책안을 강구하는 특집호를 제작했다.

■1982년 3월 11일 지령 2000호

의사신문이 창간 22년만인 1982년 2000호를 발간했다.1000호를 넘어 2000호를 발간하면서 정책, 사건·사고, 학술 등을 다루는 `신문'으로서 탄탄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의사신문 2000호 발간을 맞이하기까지 의사신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가적으로 경제 발전의 속도가 가속화 됐던 시기였지만 신문사 경영은 재정면에서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의사회 발행인이 직접 광고를 해야 할 정도였다. 의사신문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문의 역할인 `정보전달' 사명을 충실히 했다. 개정의료법의 모순점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추진했고 우리나라 의료제도 사상 가장 중요한 `의료보험제도'가 탄생된 1977년에는 올바른 정책을 위해 힘썼다.

의료보험제도의 적용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던 시기에는 서로가 상생하는 방향의 입장을 내놨으며 의료보험 정착으로 대학병원의 역할과 기능의 강조와 함께 의료보험 제도 일원화를 주장했다.

1980년부터는 인하대, 동아대 의예과 외 등 의과대학들이 지속적으로 신설되면서 `의사' 배출의 증가도 이슈가 됐다. 1991년엔 안양 강숙경 회원이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환자가족의 무차별적인 고소·불법난동 등으로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의료질서 차원의 뚜렷한 강구책 마련'되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편, 2000호 특집엔 △의료전달체계 △의료계 봉사 △비의료인 불법의료행위 △의료사고분쟁 등 의 당시 논란이 됐던 사안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1962년 면허세 파동·2000년 의약분업 사태 등 의권 대변
한국 현대 의학 발전사·의료계 현장 밀착 취재 집중 조명


■1991년 11월 21일 지령 3000호

1980년대 말까지 18개에 불과하던 대학이 31개 대학으로 늘어나면서 의사인력이 증가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맞아 한국 경제는 물론 `보건의료'도 점차 자리잡아 가는 시기였다. 이런 가운데 의사신문도 지령 3000호를 맞아 `의료 전문지'로서 위상을 굳건히 해 나가고 있었다.

당시 의사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던 사건들은 의료보험법 개정·단체계약제 추진·의료보험 수가 조정,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철폐, 통합의료보험법 거부, 자동차손해배상보호법 입법화, 국내최초 뇌 장기이식 성공 등이다.

의사신문은 지령 3000호를 맞아 `의학 그리고 의료 윤리와 새로운 연구분야'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당시 의사신문 편집인은 3000호 발간 소감을 통해 “의료계 안팎의 다양한 정보를 신속 취재·보도하고 의료계의 여론을 선도하기 위해 주2회 신문사 간부회의를 통해 의료계의 당면문제와 피부와 와 닿는 의료계 현안 취재 보도를 하겠다. 의사들의 의권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현 의료계의 당면과제인 의료보험, 간호조무사 수급대책 등 일선 의료인들의 당면 관심사를 지역이나 생활권에 구애받지 않고 보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3000호는 △의료윤리 △안락사와 의료윤리 △장기이식의 윤리 채외수정과 의료윤리 △인공유산과 의료윤리 △성전환수술의 의료윤리 △시험관 아기 △호스피스 △환자의 권리 등에 대해 실었다.

■2001년 12월 22일 지령 4000호

1990년대 후반 IMF사태의 발발과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의료계는 `시련'과 `절망' 그리고 `투쟁' 이 연속되는 시기를 보냈다. 1992년 11월 서울중앙병원(현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국내 최초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해 화제가 된 소식을 전했다. 1997년 찾아온 IMF 사태 당시 의료계는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경제회복을 위한 시책 동참 및 불필요한 행사 모임을 자제하도록 당부했으며 1999년 11월 30일엔 의료계 사상 유래 없는 의료대란이 발생, 전국의 2만 5000여명의 회원이 `바른 분업 재위 전국의사 궐기대회' 투쟁하며 `의약분업' 반대 입장을 내세운 의사들의 입장을 담았다. 2000년 2월에는 여의도에서 4만 의료인이 의약분업에 맞서 참의료 투쟁과 8월 엔 보라매공원에의 투쟁을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당시 의협 김재정 회장과 서울시의사회 한광수 회장이 구속돼 의사들은 구속자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 대해서도 정보를 전달했다.

이와 함께 이 시기는 정부가 요양병원설립과 의료보험 급여기간 연장, CT 등 고가장비의 의료보험 적용 등의 시책을 펼쳐졌으며 권역별응급의료센터 건립도 활발히 이뤄진 시기에 대해 조명했다.

특히, 재벌기업의 병원 산업 진출로 의료시장의 환자를 점유하는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9년 6월 현대아산병원이 서울중앙병원으로 개원했으며 1994년 삼성서울병원의 탄생으로 3차 의료기관 간의 덩치 키우기와 고가 장비 구입경쟁이 격화되는 시기를 다뤘다.

■2012년 9월 24일 지령 5000호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국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의료기술은 물론 의료보험제도, 의료시스템 등 5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발전을 했다. 하지만 정책적인 면에서는 50년 전과 크게 변화된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 2008년 정부의 의료법 개악 저지를 위해 전국의 의사들이 휴진까지 하면서 과천정부청사에 집결, 의사들의 단결된 모습과 당시 서울시의사회 좌훈정 홍보이사가 `할복'시위의 내용을 다뤄 현장의 느낌을 독자들이게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2010년엔 정부의 일방적인 병리과 수가 인하로 인해 30년만에 병리과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과 이와 함께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가 인상율이 3%, 병원급은 1.4%로 여전히 물가인상률을 하회하는 수치로 합의, 의료계의 불만에 대해 의료계의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2000년대 초 기업병원이 들어서면서 병원들간 `병상' 경쟁과 신도시에 제2분원, 3분원 건립 경쟁 구도, 의료기기 과잉사태 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개원의들이 설 자리가 점차 작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리베이트 쌍벌죄와 의약품 실거래가제도 시행은 의사들을 옥죄고 있다. 이 제도 시행 이후 10여명이 넘는 의사들이 구속됐으며 이중 수사를 받던 개원의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 등에 전달했다.

2012년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가 진행, 노환규 회장이 선출됐으며 6월엔 여의도성모병원 이 복지부를 상대로 낸 임의비급여 환수 및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예외적 인증'이라는 대법원의 판결로 승소해 새로운 획을 그은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 포괄수가제, 보건소진료확대, DRG, 응당법 등으로 인해 의료계가 골치를 앓고 있는 가운데 2013년도 유형별 수가협상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의 의료계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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