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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북한산 비봉능선' 산행기
서울시의사산악회 `북한산 비봉능선' 산행기
  • 의사신문
  • 승인 2012.09.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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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석 <노원·백내과의원장>

백인석 원장

장맛비 속 비봉능선에서 흘린 땀방울 그리고 바람

7월22일은 서울시의사산악회 훈련팀이 북한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장마가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올해 장마는 예년보다 비가 내리는 날도 적고, 강수량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번달들어서 계속 주중에는 비교적 맑다가, 주말에만 비가 내렸고, 일요일인 오늘도 오전에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가 됐다.

덕분에 지난 주말에 다녀온 설악산 십이선녀탕 계곡에서도 산행내내 많은 비가 내렸고, 도중에 수차례 산행 중단을 고민했지만, 예정된 코스를 완등했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우중 산행의 운치와 엄청난 수량으로 인한 최고의 계곡 산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사정이 있어 보지 못했지만 최고의 대승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도 집 앞을 나서자마자 내리는 비를 보면서, 혹시나 산행취소 문자가 오지 않을까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보았지만 역시나 깜깜 무소식이다. 산행 예정지가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해 아침 기상 시간이 부담되지 않아서 좋았다.

북한산은 국립공원 치고는 드물게 도심에서 아주 가깝고 접근하기가 쉽다. 설악산과 같은 화려함이나 지리산과 같은 장대함은 없지만, 전산에 걸쳐서 크고 작은 암릉이 많아서, 국내 암벽등반의 메카인 인수봉 등을 찾는 전문산악인들, 수많은 암릉들을 맨몸으로 누비고 다니는 `릿지도사'들, 많은 등산코스와 둘레길, 사적지를 찾는 등산애호가들로 인해 연중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주능선의 산길은 주로 북한산성 성곽을 따라서 나있고, 주변의 지릉들과 이어져 있어 많은 수의 등산코스를 만들어 낸다.

많은 탐방객과 일부 위험구간의 무리한 산행 등으로 인해, 해마다 적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짧은 산행시간 동안 짜릿한 암릉 등반과 트래킹을 즐기기에는 아주 훌륭한 산이라 생각되어진다. 오늘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남서쪽 끝부분인 족두리봉 근처에서 시작하여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을 거쳐 대남문을 통과하여 구기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산행하기로 하였다.

들머리가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관계로 불광역에 집결하였다. 많은 분들이 자주 찾았던 산이고, 비가 와서인지 다른 때 보다는 참가 인원수가 적었다. 이번 산행은 다음달에 예정된 서울시의사산악회의 백두산 산행에 참가하는 가족들도 훈련 차 참가했다. 총무님의 사모님과 듬직한 두 아드님들 그리고 졸업 후 처음 뵙는 학교 선배님 부부도 만나 뵐 수 있었다. 예정 인원 중 한 분이 도착하지 않고 연락도 안 되어 기다리던 중 댁에 안전하게 계심을 확인하고 출발하였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 보니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으나 양은 많지 않았다.

불광역에서 약 20분 정도 걸어서 비봉능선의 여러 들머리들 중 하나인 남해아파트 앞까지 이동한 후, 빌라 건물들 사이로 난 오르막길을 통해서 산행을 시작했다. 국립공원 들머리 치고는 아주 초라했다. 조그마한 텃밭 사이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바위들로 이루어진 길들이 나타났고, 여기서부터 첫 번째 봉우리인 족두리봉까지는 계속해서 암릉으로 이루어진 길이었다.

산행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경사가 심해졌고, 빗발이 점점 굵어지면서 많은 양의 빗물이 바위를 타고 내려와 몹시 미끄러웠다. 일부 구간에서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네발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평소에는 암릉 능선에 올라서면 산아래 도심 풍경이 볼만한데 안개와 비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평소보다 느린 약 1시간 정도의 암릉산행 후 첫 암봉인 족두리봉(358m) 아래에 도착했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큰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져 있는 모습이 마치 새색시가 쓰는 족두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 하고, 보는 방향에 따라 보여 지는 모양이 달라 수리봉, 독바위 등으로도 불린다.


불광역에서 집결 비봉능선 들머리 진입 후 점점 빗발 굵어져
빗속을 뚫고 본격적으로 암릉지대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 올라
문수봉 우회 후 계곡 꼭대기 암문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반겨


평상시 암벽이나 릿지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나,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족두리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하여 향로봉을 향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빗속을 뚫고,약간의 흙길과 대부분의 암릉길을 걸어서 철탑과 탕춘대 갈림길을 거쳐, 본격적으로 경사가 급한 암릉지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높은 기온과 습도로 땀은 계속 나지만, 우의 때문에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열심히 걷다 쉬었다를 반복해 향로봉(535m) 아래에 도착했다. 향로봉 역시 암봉의 모양이 향로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우리 아래에는 위험구간이니 향로봉으로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팻말이 서있고,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향로봉 등반을 막고 우회하도록 안내를 하고 있었다.

향로봉 우회길의 다소 가파른 암릉지대와 암벽의 틈새를 통과해 가면서 비봉(560m)의 하단부에 도착했다. 비봉 정상에는 오늘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비석이 서있는데, 봉우리 이름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국보 제3호인 진흥왕순수비다.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현재는 모조품이 서있다. 비봉도 역시 가파른 경사와 위험한 바위들로 인해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데, 옛날 조상들은 어떻게 저런 무겁고 큰 비석을 이곳에 세웠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비봉을 우회하여 잠시후 사모바위에 도착했다.

사모바위란 이름의 유래는 바위의 모양이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와 생김새가 유사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평소에는 사모바위 주위와 그 아래 헬기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엄청난 등산객들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우리 일행 말고는 별로 없다. 헬기장 아래의 거대한 바위 밑으로는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공비일당이 실제 은신해 있었던 곳에 밀납인형 등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 등산로도 제대로 없었을 당시에 그런 곳에 숨어 있었다면 찾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이제 비는 거의 그쳤고, 땀을 식히면서 휴식을 취한 후 문수봉 방향으로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계단길과 능선길을 거쳐 승가봉(567m)에 도착했고, 승가봉 아래로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만 하는 급한 경사의 바위길을 거쳐서, 큰 바위들 사이에 난 좁은 통천문을 통과하여 문수봉 아래에 도착하였다.

문수봉을 우회하여 청수동암문으로 이어지는 깔딱고개로 불리는 심한 경사의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약 45분 동안 계속 되는 오르막 산행으로, 높은 기온과 엄청나게 쏟아지는 땀으로 인해 오늘 산행기간 동안 체력 소모가 제일 많았다. 하지만 계곡 꼭대기에 있는 암문에 도착하여 안에 앉아 있으니, 문을 통과하는 바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암문은 성곽에서 일종의 비상탈출구 역할을 하는 문으로 이 밖에도 북한산성에는 여러 개의 암문이 있다.

청수동암문을 뒤로 하고 대남문을 거쳐 구기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구기계곡은 하산에만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긴 계곡으로 나무계단, 돌계단,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등을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내려왔다. 흐르는 계곡물은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매우 맑았고,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노니는 게 보였다. 풍덩 뛰어들어 몸을 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출입금지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천천히 약 1시간을 내려와서 산행을 마감하였고, 날머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늘은 개어 있었다. 오늘 산행은 처음에는 많은 비와 미끄러운 바위, 좋지 않은 시야로 인해 다소 힘들었지만, 가끔씩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암릉과 심한 오르막 산행 후,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약 6시간 동안의 산행은 지루하지 않았다.

뒤풀이에서는 시원한 맥주, 삼겹살, 파전과 콩국수로 배를 채웠고, 동료들과 헤어진 후 집에 들어 가기전, 개인적으로 여름 산행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팥빙수로 다시 한번 몸을 식혀 주었다.

백인석 <노원·백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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