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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법은 사회적 윤리 기준을 무너뜨릴 수 있다
미숙한 법은 사회적 윤리 기준을 무너뜨릴 수 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2.09.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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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이명진 전 회장
최근 급증하는 아동 성범죄를 포함한 성범죄 소식에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성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크게 결과주의적 접근법과 규칙주의적 접근법이 있다. 결과주의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존된다는 접근방식이다.

결과주의 대표적인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옳은 것으로 평가하는 공리주의이다. 결과주의 접근방식은 먼저 문제를 해결할 가능한 모든 대안들을 정한다.
두 번째 단계로 이들은 각 대안들을 수행하였을 때 나타날 결과를 예견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각 대안의 결과 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가장 큰 행위를 옳은 행위로 판단하게 된다. 이들은 도덕이란 전통규칙을 어기더라도 결과가 좋은 경우 옳은 것으로 인정한다.

결과론자들은 생명에의 권리, 신체적 상해를 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에 대한 권리 등의 전통적인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결과가 더 많은 이익이 되는 지에만 관심을 두고 판단한다. 행위가 이루어지는 수단이나 과정의 정당성보다는 결과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결과주의와는 다른 접근방법이 규칙주의이다. 규칙에 의거한 도덕(rule-based morality; 의무론적 혹은 법칙론적인 방식)은 어떤 행위가 적절한 도덕규칙에 부합될 경우 옳은 행위이며 그러한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그른 행위로 판단한다. 행위의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수단이 도덕적이지 못 하다면 그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본다. 수단은 목적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과만 중요시하고 , 일종의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를 내세우는 결과주의자와 크게 입장이 다르다.

공리주의는 대부분 국가 정책을 입안할 때 채택하는 방식이고,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이 관여 되는 문제해결 방법에는 규칙주의를 우위에 두어야한다. 19대 일부 국회의원들이 성범죄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화학적 거세방법을 뛰어넘어 물리적 거세법을 입안했다고 한다. 아동과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범죄자들의 죄를 생각하면 영구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고 싶다.

하지만 처벌은 죄에 대하여 처벌방법도 정의로워야 하고 합당한 규칙에 준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처벌방식이 비인간적인 경우라면 옳은 처벌방법이 아니다. 물리적 거세방법을 일부 국가에서 시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신체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는 체형(태형, 손절단, 물리적 거세 등)은 종교법에서나 있는 경우이다. 현대에 와서는 비인간적인 형태의 체형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억울한 재판결과로 되돌릴 수 없는 물리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법안을 입안할 때 이러한 문제점도 고려하지 않고 법을 만들겠다고 추진한다는 것은 의원의 자질문제를 떠나 세계적으로 나라 망신이다. 이러한 법이 통과 된다면 상상하건데 능력적으로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이런 사람의 손과 발을 절단해서 다른 사람의 장기이식 재료로 공급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을 지도 모른다. 너무나 무서운 윤리적 문제점이 있다.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다. 때론 공리주의적 입장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공리주의의 맹점 중에서도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을 택한 경우이다. 법은 윤리적 문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 선의의 피해자 발생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공청회)과 합의 과정을 통해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보호해주지만 미숙한 법은 많은 피해자를 만들 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 기준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다. 또 다른 폭력이 발생된다. 이제라도 물리적 거세와 같이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은 배제하고, 정의롭고 강력한 제도를 신중하게 만들고 제대로 실행하여 성범죄로부터 우리의 가족들을 보호해 주길 바란다.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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