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들을 정리하기
장난감들을 정리하기
  • 의사신문
  • 승인 2012.09.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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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잊은 장난감에 대한 집착

얼마 전 차들을 정리했다. 도저히 정비할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란치아 카파와 삼성동에 1년 동안 세워두었던 은색의 푸조의 MI16 두 대를 정리했다. 그리고 빨간색의 MI16은 파츠카로 만들기로 했다. 부품들은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이차들은 차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양시켰다. 그래서 아쉬움은 없었다. 이제 처음에 샀던 차량만 남았고 다른 한 대는 친구에게 그냥 기증했다.

두 대의 차량 인도비용은 하루나 이틀의 외래 수입 정도밖에 안 되는 비용으로 전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다. 그러나 차들을 정리하자 주차의 문제와 세금, 검사에 대해 머리를 쓸 일이 없어졌다. 머리는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제 관리하는 차체는 친구와 나의 두 대가 전부다. 개체 수는 2대로 줄었다. 그전에 6대 시절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MTB와 BMX, 어반 자전거들도 대충 정리했다. 다음주에는 자전거 파츠들도 정리하거나 기증을 해야 한다. 오디오들도 대충 정리를 했고 카메라와 렌즈들도 대충 정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로 정리를 해도 장난감들이 아직 끝없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마 끝도 없을 것 같다. 신기한 일은 이렇게 정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는 것이다. 불쌍한 토이들은 갖고 놀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머리는 조금 가벼워졌고 앞으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증가했다. 앞으로 필자는 글을 쓰는 일과 디지털 장난감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프로그래밍에 미쳤을 때의 책들과 읽고 싶었던 책들의 리스트도 다시 만들었다. 조금 머리가 가벼워지면 타보고 싶은 차들의 리스트도 만들어 보았다. 새로 타보고 싶은 자전거의 리스트도 만들어 보았다. PC도 한 대 조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카나 필카들도 많기는 하지만 과연 갖고 놀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지 신비롭기도 하다. 소소한 지름신의 강림으로 이베이를 뒤지거나 문서들을 공부하며 모아 놓기는 했지만 정작 놀지는 못했다. 놀지 못했다면 게임을 잘 못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최고의 원칙을 조금 무시했던 것이다. 놀 때에는 그 놀이에 최고의 수준까지 집중하고 놀이가 끝나면 모두 갖다 버린다는 것이다. 얼리 어댑터는 놀이를 미리 끝내고, 매니아는 끝까지 논다.

문제는 장난감이 아니라 놀이였는데 그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다. 정말 본질적인 이야기다. 자동차의 경우로 돌아가면 정말 즐거운 드라이빙을 몇 번이나 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얼만큼 놀았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는 정도는 실점이 나오겠지만 바보스러울 만큼 장난감에 충실했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놀이 그 자체였는데….

마케팅이 워낙 발달하다보니 사람들은 잡지나 TV를 보고, 요즘은 스마트폰을 보고 어떤 차에 꽂힌다. 아주 비현실적인 차종부터 현실적인 차종까지 선택의 폭은 무진장 많다. 몇 년 동안 용돈을 모아 차를 사기도 한다. 일단 차를 사는 시간까지 차를 구입하는 시간을 계산하고, 그 다음에 차를 유지하는 비용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한다면 돈만이 아니라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만약 자동차에 관한 시간의 경제학에서 승리하려 한다면 많은 노력은 차를 타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필자의 승리는 가끔 타는 차들이었지만 차를 타면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차에 대한 만족이었다. 물론 그런 차들만을 고르긴 했지만 다 타본 것은 아니다. 몇 개의 차종에 집중했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더 경박하게 모델을 바꾸어 타도 지금보다 돈과 시간을 더 썼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차들을 4대나 정리하고도 태연한 것을 보면 예전에는 너무 집착이 강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정리하면서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도 차를 대파시키지 않는 한 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그 때는 또 다른 장난감들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M30엔진을 복원한다던가 다른 엔진들도 많다. 어쩌면 친구에게 카파를 타볼테니 당분간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불교의 4성제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세상에는 고통이 많은데 그 원인은 집착이며 그 집착을 없애는 방법(道)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이라는 집착이라는 것으로부터 모든 마니아들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너무 병적이지 않은 한 즐거움이 없는 것도 참을 수가 없다. 그것도 필자같은 사람들에게는 고통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만족을 찾을 것이고 또 뜯고 만지고 할 것이다. 정리중인 파츠들도 아직 가득히 남아있다. 파츠만이 아니라 다른 토이들도 한참 남아있다.

누구 말대로 다 버리고 나니 스마트폰만 남더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필자같은 사람들은 안심하지 못한다. 스마트 폰에 빠져 해킹하는 경우가 생긴다. 리눅스 기반의 안드로이드 플랫폼 같으면 더 안심하지 못한다. 필자는 예전에 리눅스의 커널 해커였고 디바이스 드라이버 책을 쓴 적도 있다. 장난감을 다 버리고 나서 몇 달 지나면 스마트폰으로 앱을 만들거나 커널을 변경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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