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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산행기 〈상〉
백두산 산행기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2.08.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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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 원장>

노민관 원장
드디어 백두산으로…천지 볼수 있을까 설렘 가득

8월12일. 남서백두의 초입 송강하까지!

2012년 서울의사산악회의 해외산행으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행이 결정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대하던 2개월여가 지나, 드디어 그 날 8월12일이 다음 날로 다가왔다.

산이라곤 앞산도 잘 따라나서지 않던 집사람마저 백두산은 꼭 가보고 싶다며 어떻게든 가겠다고 무모한(?) 참가 요청을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등산용품을 구입하느라 예정에 없던 지출로 부담은 되었으나, 앞으로 홀로산행 횟수는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은 오히려 넉넉해지는 느낌이다. 장기산행으론 첫 산행지가 백두산이라 자칫 오만해질까 걱정이 약간 앞선다. 산 앞에선 항상 겸손해져야 하는데….

꼼꼼히 짐과 옷가지를 챙기고, 거의 비가 온다니 비닐로 다시 포장을 하고, 그간 산행에선 휴대전화기로 만족했던 사진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무겁고 거추장스러워도 사진기도 따로 챙겨넣었다. 이제 3박4일의 여정을 위해 피곤하지 않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잠을 청했다. 과연 천지를 만나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흥분과 걱정에, 약간의 수면장애는 오히려 고마운 불청객이었다.

다행히 집 앞에서 인천공항까지 직행하는 리무진 버스가 있어, 집결 예정시간인 11시에 늦지 않게 일찍 집을 나서 공항에 도착하니, 9시40분! 너무 일찍 도착했나보다. 여유롭게 공항구경을 좀 하다 보니 신동엽 선생님이 따님과 함께 오셨고, 조금 지나니 박병권 회장님 내외분, 연재성 등반대장님과 부친, 조해석 총무님과 가족들, 이민전 선생님, 이관우 선생님, 양종욱 선생님, 백대현 선생님. 박석준 선생님과 아드님, 정익환 선생님, 전윤창 선생님 내외분. 박종섭 부장님과 동서분, 트레킹캠프 주 이사님과 직원분 모두 모여 출국심사를 마치고, 약간의 여유 시간동안 면세점에서 큰 맘 먹고 그간 못해준 집사람 선물로 기분도 내보고….

모노레일에 올라 우리를 장춘공항으로 데려다줄 남방항공의 승선장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기차까지 탈 수 있으니 항공료가 아깝지 않게 느껴질 것 같아, 세계 제일의 공항이라는 평가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흑자경영이라면 외국자본에 굳이 일부라도 넘겨주어야 하나?’ 싶은 주제넘은 생각까지…. 일단 뿌듯한 마음으로 출발!

중국의 남방항공은 겉보기에 아직은 2% 부족해 보였다. 좌석 시트나, 기내식의 포장 상태, 승무원들의 표정이나 태도 등등.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테니 불만은 없다. 2시간이 지나 장춘공항에 도착하니 중국시간으로 2시 20분, 출국 심사를 마치고 우리를 마중 나온 버스에 오르니 3시30분이다. 우리의 3박4일 일정을 도와줄 가이드는 연변 출신의 송 군인데, 강호동과 허각을 반반 섞어놓은 외모에, 말은 일사천리로 매우 예의바르고 유쾌한 청년이었다. 장춘공항에서 목적지인 송강하까지는 장장 6시간!

오는 동안 2시간여에 걸쳐 끝없이 펼쳐져있는 옥수수밭은 중국의 넓은 땅을 선전하는 듯 위압적이었지만, 이 곳이 만주벌판으로 우리 조상들이 말달리던 곳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니, 속이 싸-해오는 아련함을 느끼게 했다.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오전 4시30분부터 시작되는 백두산 산행을 위해 집 떠나면 자연스레 올라오는 흥분감을 살포시 누르며 잠을 청했다.

8월13일. 남백두(남파)와 서백두(서파) 그리고 천지!

원래의 계획은 첫날 백두산의 서파 종주와 둘째날 북파 종주였으나, 중국 공안당국의 종주금지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새로 개발한 남파와 서파, 그리고 북파를 모두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이제 관심사는 과연 천지를 볼 수 있느냐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가이드 말로는 자신의 기가 워낙 세서 항상 천지를 보았다고 하니 한 번 믿어볼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내심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부르지 말고, 한민족이라 불러달라고 했을 때 이미 꽉 믿어주기로 마음먹었던 터!


공안 당국의 종주 금지령에 남·서·북파 관광으로 계획 변경
남경구 입구 장백산 비석, `백두산' 이름 볼 수 없어 서글퍼져
포장된 길을 따라 버스에 내리니 여기저기 `천지다' 함성 들려


남경구 입구에 도착하니 長白山火山國家地質公園이라 적힌 커다란 비석이 살짝 눌러놓았던 흥분감을 한껏 풀어 젖히게 한다. 백두산 입구에 놓일 비석이라면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부터 사진기 셔터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백두산 산행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음을 대신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낯선 이름 장백산! 장백산맥의 주봉을 우리는 백두산이라고 하고, 중국인들은 장백산이라 하니, 이 곳 중국령에선 어쩔 수 없이 장백산이란 이름을 계속 보고 다녀야 한다. 만주와 간도를 우리 민족이 지배한 수 천년간의 역사동안 백두산이었다가, 이제 반만 백두산이라는 사실에 숙연해지면서 미안해진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는 미안함!

다시 버스를 타고 4∼50분 포장도로를 오르는 동안 원시림과 자작나무숲을 지나 수목한계선에 이르면 풀과 야생화만으로 이루어진 녹색의 대평전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흰색과 검은색의 어우러짐이 장관을 이룬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색의 향연이랄까! 백두산 남경구는 북한과 경계가 거의 붙어있고, 천지에서 발원한 압록강 상류의 물줄기가 바로 옆에서 흐르는 것이 보이고, 그 물줄기가 북한과 중국의 경계여서, 남파의 일부는 북한에 임대료를 지불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가 오르는 길가에 쳐진 철조망 저쪽이 북한이라니…. 내 땅 놔둔 채 비싼 입장료내고 천지를 오르는 마음이 씁쓰름할 따름이다.

남파를 오르는 길은 확실히 최근에 포장된 느낌이 든다. 20인승, 10인승 버스와 이스타나가 꼬불꼬불한 길을 꽤나 고속으로 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도로상태가 잘 되어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天池라고 씌인 비석이 서있다. 여기서 5분을 올라야 진짜 천지가 있다며 가이드가 앞선다. 사진기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따라가던 중 “우와” 누군가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천지인가 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 오르니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천지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눈이 시리게 파란, 너무 파래서 짠한 바다같은 천지의 물과, 천지를 둘러싼 녹색과 옅고 짙은 회색의 백두산 분화구와 봉우리들! 구름 한 점 없는 이 날은 액자의 사진으로 보던 그 천지보다 더 파랗고 선명하다. 내가 진짜 천지를 보고 있는 지, 사진 속의 천지를 보고 있는 지 헛갈릴 정도로 눈앞의 정경이 낯설다. 평균깊이 213.3m, 높이 2257m, 최대지름 3.6km, 수량 약 20억톤, 산 정상에 있는 칼데라 호로는 세계 최대 규모.. 천지의 명성과 위용은 정말 대단한데, 왜 이리도 처연한 느낌이 들까? 절세미모의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이럴까?

남파에서 천지와의 첫 만남은 30분 이상 지속되었다. 이제 다시 서파로 향해야 하니, 아쉬움은 없지 않으나 서쪽에서의 또 다른 만남을 위해 하산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하산 중에 아까 살짝 보았던 압록강 대협곡과 목화탄을 보며 백두산 화산폭발의 위력을 가늠해본다.

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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