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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돈키호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돈키호테〉
  • 의사신문
  • 승인 2012.08.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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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변주로 장편소설 함축 표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반드시 읽어야 할 서양 풍자문학의 백미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을 풍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그 당시 스페인 왕국은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일각에서는 반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도 정신이나 교회의 권위를 비웃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기사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미치광이 돈키호테를 집어넣고, 그로 하여금 마음껏 세상을 비웃도록 했다. `돈키호테'는 1605년과 1615년 각각 본편과 속편이 출간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언어예술의 본보기로 꼽혔다. 이 작품은 디킨즈, 도스토옙스키, 조이스와 같은 작가뿐만 아니라 작곡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이 주제로 많은 장르의 음악들이 작곡되었다. 그 중 가장 걸작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키호테'다.

교향시 `돈키호테'는 `기사적인 성격에 따른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적 변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교향시로서는 드물게 변주곡 양식으로 작곡되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둘시네아와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주제를 독주 악기들이 연주하는 일종의 협주곡 형태로서 특히 첼로를 위한 협주곡 형태로 10가지 변주를 통해 장편 소설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서주 돈키호테는 몽환적인 소설 속 모험들을 직접 실천에 옮기기로 한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보편적인 중세 기사의 성격을 묘사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속에 돈키호테의 주제가 살짝 들어감으로써 슈트라우스는 중세기사의 반열에 돈키호테를 올려놓았고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귀부인 둘시네아를 묘사한 바이올린 선율을 선보이고 있다. 돈키호테의 주제는 독주 첼로가 연주한다. 이어 산초 판사의 주제가 등장한다. 돈키호테가 섬을 정복하면 그 영주로 삼겠다고 약속한 촌스럽고 아둔한 산초판사의 모습를 베이스 클라리넷과 테너 튜바, 독주 비올라로 경박하고 현실적인 산초 판사의 성격을 그리고 있다. 서주 다음, `왕년의 달리기 선수'라는 뜻의 말라빠진 말 `로시난테'와 함께 돈키호테와 산초판사가 모험의 길을 떠나는 장면부터 변주가 시작된다.

△제1변주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오해한 풍차로 돌진하는 부분에서는 독주 첼로의 역할이 눈부시다. 돈키호테가 추락한 순간 첼로 소리도 멈춘다. △제2변주 돈키호테는 대군의 무리라고 생각한 양떼들을 만났을 때 독주 첼로가 양떼들에게 기세등등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그리고 양치기의 피리 소리도 들린다. △제3변주 돈키호테와 산초판사와의 대화와 갈등을 그린 판타지로 변주곡 중 가장 장대한 규모이다. △제4변주 돈키호테가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참회자들을 만났을 때 돈키호테는 여자 옷으로 감싼 나무상을 보고 귀부인이 납치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구출하려고 한다. 독주 첼로가 눈부신 활약을 한다. △제5변주 둘시네아의 멜로디로 우아하고 매혹적인 하프의 선율이 흐른다. △제6변주 현악기 없이 목관과 작은 북으로 시작하면서 둘시네아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를 독주 첼로가 유머러스하게 그 광경을 묘사한다. △제7변주 슈트라우스 특유의 풍성한 관현악 기법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8변주 물에 흠뻑 젖은 돈키호테의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독주 첼로로, 산초판사는 파곳과 튜바로 묘사하고 있다. △제9변주 빠르게 폭풍처럼 연주하는 비올라와 첼로가 의기양양한 돈키호테의 주제를 연주한다. △제10변주 화려한 관악기로 표현된 돈키호테의 친구 칼라스코와의 결투에서 진 돈키호테는 그에게 명예와 찬사를 보낸 후 쓸쓸히 귀향길에 오른다. 피날레 돈키호테, 꿈에서 깨어나다. 독주 첼로가 쓸쓸하게 과거의 회상을 그리면서 공상을 쫓던 한 인간의 삶이 막을 내리게 된다.

■들을만한 음반: 장 푸르니에(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66];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MI, 1975];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RCA, 1959]; 하인리히 쉬프(첼로), 쿠르트 마주어(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Philips, 1989]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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