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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4·완〉
Fun in The Alps 〈4·완〉
  • 의사신문
  • 승인 2012.08.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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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이제 낭만적인 알프스 뒤로하고 고국의 설악으로…

서윤석 고문
■7월19일

아침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이 약간 있으나 “오늘은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에귀디미디(3842m)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오늘도 운행을 안한단다. 등산용품을 렌트하였던 오종환 교수도 물건을 반납하고 차로 돌아왔다. 그래서 의논 끝에 몽블랑 등산의 관문인 `니데글'(le Nid d'Aigle 2350m) 전망대까지 가기로 하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우슈'(Les Houches)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로 `벨뷰'(Bellevue 1794m)까지 올라 산악열차로 `니데글'까지 가야 하는데 이 계획마저도 불발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우슈'케이블도 바람으로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다시 차를 돌려 최종적으로 락블랑(Lac Blanc, 2352m)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시내 동쪽에 있는 프라즈(Les Praz)까지 이동하여 이곳에서 다시 케이블 카로 프레제(La Flegere 1894m)까지 오른후 산행을 시작한다,

말 그대로 흰 호수인 락블랑은 작은 호수가 있는 곳으로 `프레제' 전망대에서 약 2시간이면 오를수 있다. 고도를 약 500m 올리는 것으로 현지인들이 청계산 오르듯이 오르는 곳이지만 건너편 경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가는 길은 바위가 듬성듬성 나있는 초원으로, 보이는 야생화마다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리고 싱싱하다. 건조하면서도 차고 신선한 공기덕에 이런 깨끗한 자연을 만들어 놓는 환경이 부럽다. 땀이 날 만하면 쉬면서 음료수도 먹고 건너편에 펼쳐진 장엄한 빙하지대를 감상한다. 만약 내일도 에귀디 미디에 오르지 못한다면 산악열차로 몽탕베르(Montenvers ,1913m) 전망대까지 올라 메르데글라스(Mer de Glace, 얼음의 바다)를 가까이 바라보며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이 빙하는 면적이 약 40제곱km, 길이 약 7km로 얼음의 두께가 약 200m나 된다니… 실로 엄청난 크기의 얼음 덩어리인데 전망대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가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락블랑'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커피를 한잔씩 하고는 다시 `프레제'로 향한다. 호수는 바람으로 출렁이고 작은 물고기들은 먹이를 찾아 유유히 움직인다. 한편의 수채화 같다. 그래서 또 하루가 간다.

◇Lac Blanc. 사진 왼쪽이 필자
■7월20일

아침 8시30분 날씨는 맑고 바람도 잦다. 서울대의 오교수 장비를 빌려 에귀디 미디행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올랐던 브레방, 락블랑을 바라보며 중간 기착지인 쁠랑드 레규(Plan de Aigulle 2317m)에서 갈아타고 다시 오른다. 정상에서 이태리로 가는 케이블카도 있어 패스보드만 준비하면 바로 이태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일단 에귀디 미디 북쪽봉우리에 내려 중앙다리를 지나면 발레블랑쉬 설원으로 나가는 얼음동굴이 나타나며 이곳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동굴을 나서자 마자 약 250m 정도의 칼날능선이 나타나는데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폭 30cm 정도의 눈 덮인 능선길의 양측은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면 생명을 보장할 수가 없다. 세사람이 같이 안자일렌을 하고는 조심스레 한발한발 내딛는다. 50여미터 지점에서 앞의 속도가 빨라져 “천천히”를 외치는 순간, 허리가 당겨지며 제동하려던 스틱이 휘어지며 내가 추락한다. “추락”하고 소리지를 틈도 없이, 좌측으로 떨어지는 순간 권대장이 “우측으로! 피켈”하고 소리친다. 내 앞사람이 우측으로 몸을 날리고 피켈을 박자 제동이 걸린다. 약 7∼8m 추락한 다음 대롱대롱 매달려 위를 보니 권대장이 “OK?”하고 소리 지른다. “OK!”라고 대답하고는 출발사인을 기다린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출발” 복창을 하고는 크램폰 앞날을 찍으며 서서히 올랐다. 칼날 능선에서 안자일렌 동료가 “좌측으로 떨어지면 우측으로 떨어져 균형을 잡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될 줄이야…


7월 20일 드디어 에귀디 미디행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등정 시작
칼날 능선에서 스틱 휘어지며 추락…앞사람의 피켈로 천만 다행
조그만 실수도 용서 않는 산행의 긴장과 드넓은 설원의 평온 교차


◇설원으로 내려가는 초입부.
기분이 덤덤하다. 휘어진 스틱을 바로 잡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스틱을 두고 피켈을 렌트했어야 하는데 너무 나 자신을 믿은 것이 잘못이다. 조그만 실수도 용서않는 산행에서 다시금 진리를 깨닫는다. 일단 설원에 도착하면 코스믹 산장까지 내리막길이 계속되다가 다시 높이를 올린다. 여기 저기 숨어있는 크레바스를 피하기 위해 눈자욱이 난 곳만 디디며 조심스레 걷는다. 이곳 설원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은 `몽블랑 뒤 따길'-`꼴모디'-`몽모디'-`브렌바꼴'을 거쳐 몽블랑에 오르려는 사람들도 상당수 된다. 앞서 말한 `몽모디 9명 눈사태 사망사고'가 이 루트와 연결되어 있다. 1997년에 우리가 오른 곳은 Normal 루트로 암벽구간과 칼날능선이 있지만 설벽이 없어 눈사태는 일어나지 않지만, 위험은 항상 예기치 않게 나타남으로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드넓은 설원에 누워 하늘을 본다. 푸른 하늘에 깃털구름이 넓게 퍼져 마치 부채모양으로 보인다. 고향에는 30도가 넘는 무더위로 고생이 많다는데 설원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호강이 아닌지.이태리쪽으로 넘어가는 케이블카가 머리위를 지나며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국경이 없는 우리는 국경의 자유를 느끼지 못하지만 국경이 있는 그네들은 국경의 자유를 느끼니 아이러니하다. 따끈한 커피한잔으로 상념을 지우고 다시 에귀디미디를 향해 한발한발 귀환한다. 오름길은 내리막길보다 훨씬 수월하다.

앞사람과 속도를 잘 조절해 무사히 올라 장비를 정리 한다. 오늘저녁은 오랜만에 한식으로 된장찌개와 돼지불고기를 먹을 예정이다. 배가 고프니 구수한 된장찌개 생각이 간절하다.

■7월21일

◇설원에서
샤모니 날씨는 조금 흐리다. 오늘 제네바에서 출발 비행기 시간이 오후 16시30분으로 레망호수(Lac Leman)를 둘러보고 제네바로 가도 시간이 충분할 것 같다. 아침 일찍 마티니로 이동하여 좌회전하여 시옹성(Chateau du Chillon)이 있는 몽트뢰(Montreux)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탄다. 바다같은 호수의 남쪽은 프랑스땅이고, 북쪽은 스위스땅으로 호형호제하면서 지낸다. 오랫동안 지배했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호숫가에 프랑스 생수의 대명사인 `에비앙(Evian)'이 자리잡고 있다. 고로 이 호수의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상상이 된다. 호숫가에서 제법 큰고기를 낚아놓은 낚시꾼들도 눈에 띄고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일주하는 관광객들도 상당수 있었다. 호수의 작은 바위섬위에 세워진 `시옹`성은 12세기에 처음 지어져 여러세기에 걸친 건축과 보수작업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요새 형태로 지어진 `시옹'성은 요새, 병기창 및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한때는 지역 성주의 처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이곳을 방문한 영국시인 Byron(1788∼1824)이 `시옹의 죄수'라는 서사시를 지으면서 성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마치 물위에 떠있는 성처럼 보이는 `시옹'성은 저녁만찬 및 실내 콘서트 등으로 대여가 되며, 7세내지 12세 자녀의 생일 축하파티도 가능하다고 하니 자녀의 아름다운 생일파티를 계획하고 계신 선생님들도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호숫가 공원에서 점심을 가지고 간 음식으로 해결하고 브베, 로잔, 니옹등을 거쳐 제네바로 향한다. 좌측 저멀리 100m 분수가 물기둥을 올리며 장관을 뽑내고 있다. 넓은 호수, 깨끗한 물, 잘 정돈된 시가지…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아름다운 나라가 되겠지.

이제 아름답고 낭만적인 알프스를 뒤로하고 고국의 설악으로 갑니다. 십이선녀탕에 발을 담구고 이제나 저제나 하늘에서 내려올 선녀를 기다리는 설악의 나뭇군처럼, 나도 그 계곡에 발을 담그러 갑니다.

서윤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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